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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최 검사, 2017 윤 검사

박근혜 청와대에서 김기춘-우병우 조합의 등장은 '정치검찰'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검찰은 대통령은 물론, 인사권을 '목줄' 삼아 쥐고 흔든 민정수석의 '충견' 노릇까지 마다지 않았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데도 통화기록 조회 시늉조차 않고 '우병우 수사를 우병우에게 보고'하며 진행했다.

  • 김이택
  • 입력 2017.12.26 06:46
  • 수정 2017.12.26 06:47

물고문으로 대학생을 죽여놓고도 단지 "보따리 하나 터졌을 뿐"이라며 화장해 증거를 없애라는 대공경찰 수뇌부. 경찰을 앞에 놓고 전화기 깨부수는 기개로 이에 맞서며 부검을 강행하려는 검찰 공안부장. 영화 <1987> 시사회 뒤 누군가 공안부장 최 검사를 윤석열 검사(현 서울중앙지검장)에 비유했다.

그러나 30년 전 취재 경험으로는 영화에 그려진 최 검사의 용기는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최환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장과 안상수 부검지휘 검사를 합쳐놓은 캐릭터로 보이는데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고문 경찰이 2명이 아니라 3명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전두환 정권은 장세동 안기부장과 검경 수뇌부 등이 참석하는 관계기관대책회의를 열어 이를 은폐하기로 결정했다. 안기부 파견검사 정형근은 대학 동기 안상수를 만나 '정권 차원의 결정이니 덮으라'고 요구했다. 진실을 폭로한 것은 수감 중이던 재야 지도자 이부영과 교도관들, 재야 인사 김정남, 김승훈·함세웅 등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었다. 검찰은 폭로 뒤 구속된 박처원 등 대공경찰이나 강민창 치안본부장과 함께 사실상 은폐의 공범이었다. 안 검사는 훗날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간부들을 설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상을 알고 난 뒤에도 한달 이상 침묵한 걸 보면, 검찰은 사제단 폭로가 없었다면 끝까지 진실을 덮었을 것이다.

6월항쟁은 결국 '절반의 승리'로 끝났고, 검찰 역시 정권과 영욕을 함께했다. 유신 이래 신직수-김기춘-박철언 등 정치검사 계보가 이어지는 동안 검찰은 청와대의 '법무참모' 노릇을 해왔다. 정치 민주화 뒤 '법치'가 강조되면서 안기부나 경찰이 퇴조하자 사실상 권력기관으로 독주하면서도 정권의 굴레에선 벗어나지 못했다. 참여정부 시절 '국민의 검찰'로 칭송받기도 했으나 이내 '정치검찰'로 돌아갔다.

이명박 정권 말기,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은 어느 지방검찰에 한 야당 의원 관련 사건 기록을 모두 올려보내라고 지시했다. 주변을 샅샅이 뒤져 모은 자료를 수사팀에 보내 오랜 '표적수사' 끝에 결국 그를 법원에 넘겼다. 결과는 '무죄'. '디제이 비자금'이라며 100억원짜리 양도성예금증서 사본을 2006년 야당에 넘긴 박주원 전 국민의당 최고위원도 범죄정보기획관실(범정실)에서 자료를 들고 나왔다. 명예훼손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자료 출처가 범정실이었음을 알았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 박근혜 정권 초기 '정윤회 게이트'가 처음 터진 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문건을 들고 나온 경찰과 관련자들이 구속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것과도 대비된다.

박근혜 청와대에서 김기춘-우병우 조합의 등장은 '정치검찰'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검찰은 대통령은 물론, 인사권을 '목줄' 삼아 쥐고 흔든 민정수석의 '충견' 노릇까지 마다지 않았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데도 통화기록 조회 시늉조차 않고 '우병우 수사를 우병우에게 보고'하며 진행했다. 청와대 행정관이 들고 나온 문건 700여건에 담긴 불법사찰·공작의 범죄증거를 보고도 수사는커녕 그대로 청와대에 상납한 검사도 있었다.

30년 전처럼 다시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정권을 바꾼 데 이어 나라를 바꿔가고 있다. 검찰은 적폐 수사의 주체이면서 제1의 개혁 대상이다. 우여곡절 끝에 조직 창설 이래 처음으로 검찰과거사위원회를 꾸렸다. 최근의 직권남용·직무유기까지 스스로 드러내고, 공수처법도 수용해 권한을 내려놓겠다는 자세로 나와야 국민의 신뢰도 되찾을 수 있다.

<1987>의 최 검사는 30년 만에 윤 검사로 환생했다. 또 한명의 전직 대통령 수사를 앞두고 있다. 군·정보기관을 선거에 개입시키는 등 구속된 후임자보다 죄질이 더 나쁘다. '문화방송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등 문화예술·언론 탄압과 우익단체 동원 정치공작 수사가 이뤄지면 당시의 청와대 참모들까지 김기춘·우병우처럼 감옥에 가야 한다. '정치보복' 운운하며 대통령을 방패로 앞세우는 것도 '다 자기들 살아보려 발버둥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만하다.

국민들은 다스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밝히라고 한다. 박근혜-최순실 '경제적 공동체'의 실체, 당시 법무장관 황교안의 '검찰 농단' 책임은 없는지도 궁금해한다. 대부분 적폐청산 수사에 박수를 보낸다.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거의 적폐의 당사자나 그 부역자들에게서 나온다. 윤 검사가 여기에 흔들려선 안 된다.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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