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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꼽은 올해의 국내서적 10선 + 번역서 10선

  • 김성환
  • 입력 2017.12.22 12:28
  • 수정 2017.12.22 12:36

지난해 가을부터 타오른 촛불은 겨우내 밝게 빛났고, 올해 끝내 어두운 권력을 끌어내렸다. ‘책이 촛불의 불쏘시개였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민주주의를 실천해낸 우리 시민 역량의 상당 부분은 책으로부터 왔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앞으로도 책은 우리의 정신을 살찌우고 민주주의란 나무를 키워가는 데 더욱 중요한 식량이 될 터다.

<한겨레>는 올해도 어김없이 국내서 10권, 번역서 10권을 ‘올해의 책’으로 꼽는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도서평론가 이권우,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과학저술가 정인경, 문학평론가 양경언 등 5명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한겨레 책지성팀 구성원들 이 선정했다.

올해의 책 국내서

1. 최고령 현역 작가 득의의 문체

국화 밑에서

최일남 지음/문학과지성사·1만3000원

미수(88살)를 두 해 앞둔 최일남은 한국 문단의 최고령 현역 소설가에 속한다. 그런 그가 신작 소설집을 냈다는 것만도 반가운데, 수록된 작품들이 여전한 생기와 활력을 뿜어낸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최일남의 노년 소설들은 에세이풍 소설의 전형적 면모를 보인다.

대체로 작가 자신과 비슷한 노인들을 등장시키는데, 특별한 사건이 소설을 끌어가기보다는 여러 사안에 대한 인물들의 품평과 견해가 주를 이룬다. 최일남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이라 할 골계와 해학도 여전하지만, 낡은 감각을 고수하지 않고 변화하는 세태에 맞춰 ‘진화’하는 면모가 또한 감탄스럽다. “네가 필자면 나도 저자인 세상” “노회는 소년의 클릭 한 방만 못하고, 경륜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치여 별무소용이다” 같은 대목들을 보라. 저자 이름을 가리고 읽어도 누구 작품인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고유한 문체를 지닌 작가가 희소한 상황에서, 최일남 득의의 문체를 맛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책이다. - 최재봉 선임기자

2. 온몸으로 부닥쳐 일군 문학

수인 1, 2

황석영 지음/문학동네·각 권 1만6500원

황석영의 자전 에세이 수인은 비록 소설은 아니지만 소설 이상으로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책이다. 여기 기록된 작가 자신의 삶이 흥미롭고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문학에 눈뜨고 그것을 삶의 지향점으로 삼았지만, 황석영이 문학을 품어 안는 방식은 문자와 책에 머물지 않고 사람과 세계로 나아가는 행동을 통해서였다.

청소년기의 숱한 가출과 노동 체험, 베트남전 참전과 ‘귀농’, 밀입북과 해외의 문화 및 통일운동 등은 그가 삶과 문학을 일치시키고자 몸부림친 결과들이었다. 한반도와 세계의 곳곳을 어지럽게 누빈 발자취 속에서도 그는 “결국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문학이라는 집”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고, 자신이 온몸으로 겪고 깨달은 것들을 차근차근 문학 안으로 끌어들였다. ‘객지’와 ‘몰개월의 새’, 무기의 그늘 같은 그의 소설 배경에 얽힌 이야기들, 그가 만난 문인과 문화인들, 그리고 월북 문인들의 뒷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 최재봉 선임기자

3. 우리를 위로한 젊은 ‘사회의사’

아픔이 길이 되려면-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동아시아·1만8000원

올해 의사와 관련된 사건 사고가 잦다. 문재인 케어 반발, 세가와병 오진 사건,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여기에 ‘과잉진료로 환자를 등쳐먹고, 그 돈으로 보수기득권층을 형성한 이들’이란 일반인들의 관념이 결합돼 의사에 대한 여론이 어느때보다 싸늘했다. 그렇기에 그의 존재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 것 아닐까.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부교수가 한겨레21에 연재했던 글을 묶어낸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주요 일간지와 인터넷서점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렸다. 첫 책으로 이 정도의 전문가들의 일관된 호응을 받은 저자도 오랜만이다. 의대를 나와 경제적으로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함에도 그는 사회역학자가 돼 쌍용차 해고자, 세월호 생존학생, 성소수자처럼 마음이 아픈 이들 곁을 지켰다. 그리고 말해줬다. 당신은 지금 아프다고, 그 아픔은 당신이 잘못해서가 아니라고, 이 사회가 당신을 아프게 했다고, 미안하다고. - 김지훈 기자

4. 이 땅에서 살아간 사람들은 무슨 글을 썼을까

한국 산문선(전 9권)

안대회·이종묵·정민·이현일·이홍식·장유승 편역/민음사·전권 16만원

동문선은 조선 성종 때인 1478년 서거정이 신라 시대부터 당대의 글까지 망라해 편찬한 시문선집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540년이 지나 민음사에서 올해 펴낸 한국산문선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산문선집이라고 하니 그 기획의 야심만만함을 짐작해볼 만하다.

삼국시대 원효부터 20세기 정인보까지 1300여년에 걸친 작가 229명의 산문 618편, 원고지 1만8000매에 달하는 산문이 실렸다. 당대의 문장가부터 노비까지, 논설·상소문부터 일기·묘비명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형식의 글들을 담았다. 국내서 가장 이름 높은 중견 한문학자 안대회, 이종묵, 정민 교수와 이현일, 이홍식, 장유승 등 신진학자들이 세 팀으로 나누어 번역·해설해 완성도를 높였다. 번역 기간만도 8년이 걸렸다.

이 땅에서 살아온 민족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당대 최고의 문장가들은 어떻게 글을 썼는지 궁금했던 이들의 호기심을 부족함 없이 채워줄 법하다. - 김지훈 기자

5. 춘추전국 500년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들

춘추전국이야기 1-11

공원국 지음/위즈덤하우스·전권 13만2000원

두 발로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오지를 탐사해온, ‘여행하는 인문학자’ 공원국(43)이 지난 7년 동안 꾸준하게 써내려온 야심작 춘추전국이야기를 11권으로 완간했다.

춘추시대의 질서를 설계한 관중의 등장으로 시작하는 그의 이야기는, 춘추전국시대의 중요한 역사와 사건들을 두루 꿰어가며 진나라의 천하통일에 이르고, 한걸음 더 나아가 ‘초한쟁패’를 겪고 중국 ‘최초의 제국’인 한나라가 탄생하는 데까지 닿는다. ‘오월쟁패’, ‘백가쟁명’ 등 그가 펼쳐내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에는, 중국 지리와 사회경제적 구조의 천착과 죽간, 명문, 석비 등 온갖 자료들을 파고들어 최신의 연구 성과를 담으려 한 노력이 담겼다.

영웅이 아닌 ‘보통 사람’의 눈높이로 역사를 바라보려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보통 사람’의 욕망을 긍정하는 시대의 질서를 세운 관중이 전체 이야기의 문을 열고, 인민의 마음을 얻어 제국을 세운 유방이 이를 마무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 최원형 기자

6.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먹이는 ‘강펀치’

이상한 정상가족-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지음/동아시아·1만5000원

이 책의 사정없는 포화를 맞고도 흔들리지 않을 가부장주의자가 있을까?

18년간 일간지 기자를 하고 6년간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한 김희경의 글엔 막연한 구석이라곤 하나 없다. 사례와 통계, 연구 결과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아동학대와 저출산, 미혼모 문제의 공통원인인 ‘가부장주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정확하게 타격한다. 가정 내 체벌금지법을 제정하지 않는 이상 아동학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말한다. “체벌을 해도 된다고 보는 태도가 뿌연 안개처럼 사회에 깔려 있는 상황에서 아동학대를 뿌리 뽑을 방법이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그의 논리는 지구상에 없는 이상향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의 대안들은 지구 어딘가에서 현실로 존재한다. 1979년 스웨덴을 위시해 가정 내 체벌을 금지한 나라는 전세계 52개국. 개인-가족 관계를 중시하는 미국 모델에서 개인-국가 관계를 중시하는 노르딕 모델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갈 길이다. - 김지훈 기자

7. 이동휘·김사국·김재봉·이재유… 이들을 아십니까

조선공산당평전-알려지지 않은 별, 역사가 된 사람들

최백순 지음/서해문집·1만9000원

이 지구 어느 곳에서든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이 평탄한 활동을 벌일 수 있었겠는가. 제국주의의 식민통치 아래에 있던 곳이라면, 이념 때문에 끝내 조국이 분단된 곳이라면, 그 괴로움은 몇 곱절 더했을 터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오늘날 정의당까지, 꾸준히 진보정당 운동에 몸 담아온 최백순 레디앙 기획위원이 5년에 걸쳐 우리나라 사회주의 운동의 잊혀졌던 계보를 써냈다.

조선공산당평전이라는 제목은 단지 1925년 창당했던 ‘조선공산당’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이 아니다. 그 앞뒤로도 면면히 흘렀던 사회주의 운동의 거대한 흐름 그 자체가, ‘평전’을 자처하는 이 책의 주인공이다. 1860년대 러시아로 이주한 한인들과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 등 ‘뿌리’를 더듬어 거슬러 올라가는 작업이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젠 남북이 모두 잊은, “조선 독립을 목적”할 뿐 아니라 “사회주의를 희망”했던 사람들의 치열한 역사를 다시 읽는다. - 최원형 기자

8. 김훈·고종석을 잇는 문학적 기사쓰기의 계보

웅크린 말들-말해지지 않는 말들의 한국어사전

이문영 지음/후마니타스·2만원

“이문영의 기사(글쓰기)는 김훈, 고종석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문학적 기사 쓰기의 계보를 창의적으로 일구어 나가고 있다. (…) 이 책은 이 시대 문학과 예술이 충분히 조명하지 못한 한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 인생, 가장 낮은 곳의 실존, 가장 짙은 그늘을 단아한 문장으로 담담하게 응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2017년판 난쏘공이라 할 수 있겠다.”(문학평론가 권성우)

기자로서 이보다 더 큰 찬사를 받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문영 한겨레 기자의 웅크린 말들은 글의 무게로 찬사에 값한다. 폐허가 된 폐광에서 살아가는 전직 광부와 구로공단 여성노동자, 알바생을 지나 에어컨 수리기사에 이르면 더이상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어질 정도로 고통이 찾아온다. 그들의 비참한 삶의 무게가 고양된 문장을 통해 영혼 깊은 곳에 내려앉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은 이후에 보는 그들의 모습, 세상의 모습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 김지훈 기자

9. 한동안 뛰어넘기 어려울 리얼리즘 만화

송곳(전6권)

최규석 지음/창비·전권 6만6000원

그동안 나온 국내외 만화 중에 이 정도로 노동운동을 현실감 있고 완성도 높게 그려낸 만화가 또 있을까. 대중문화에서 노동조합은 전혀 흥미로운 소재가 아니었고, 노조를 소재로 삼더라도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하기 위해 평면적으로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최규석 작가의 송곳엔 노조 활동을 하느라 일상이 무너져버린 노조 간부, 사측과 투쟁 끝에 가압류를 당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노동자, 파업한 노조원들에게 ‘자본주의 체제와의 전쟁의 일부’라고 말하는 노조 활동가가 나온다. “어쨌든 나는 모든 곳에서 누군가의 걸림돌이었다”이라고 말하던 송곳 같은 사람으로 인해 주변의 동료가 일터를 지켜낼 수 있었고, 지기만 하던 노동자가 작은 승리를 맛본다. 송곳은 이야기에 음영을 넣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거기서 더욱 빛나는 서사가 탄생했다. 이 작품을 뛰어넘을 리얼리즘 만화가 나오기는 앞으로 꽤 오랫동안 쉽지 않을 것이다. - 김지훈 기자

10. 왜 생명체만이 지능을 가질 수 있는가?

지능의 탄생-RNA에서 인공지능까지

이대열 지음/바다출판사·1만8000원 

나날이 발전하는 인공지능은 끝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게 될까? 특이점이 온다를 쓴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께 인공지능이 인간의 정신을 복제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뇌과학자로 꼽히는 이대열 미국 예일대 신경과학과 석좌교수(51)는 자신의 책 지능의 탄생을 읽고 나면 “오직 생명체만이 지능을 가진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지은이는 ‘지능’을 “인간의 사고 과정의 한 부분으로서, 특히 문제 해결 능력에 초점을 맞추는 개념”이라고 말하며, 진화의 관점에서 왜 지능이 등장했고 그 지능이 생명체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파헤친다.

생명체에 견줘 인공지능의 문제풀이 능력은 극히 제한적이며, 그 능력조차 그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날카롭다. 특히 지은이는 다른 동물보다 더 두드러진, 인간의 ‘사회적 지능’과 ‘메타인지 능력’에 주목하는데, 이는 인간 존재에 대한 본질적 고민과 연결된다. - 최원형 기자

올해의 책 번역서

1. 인공지능과 인간이 공생할 수 있을까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

맥스 테그마크 지음, 백우진 옮김/동아시아·2만6000원

기계가 모든 방면에서 인간을 능가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인간은 인공지능(AI)을 통제할 수 있을까? 스웨덴 출신 물리학자 맥스 테그마크는 이런 질문에 낙관론도 비관론도 펼치지 않는다. 그는 진화의 족쇄를 벗어나 스스로 하드웨어까지 설계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동물(라이프 1.0), 인간(라이프 2.0)에 이어 출현할 ‘라이프 3.0’으로 규정한 뒤 이를 둘러싼 기본 개념과 논쟁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정치·경제·군사·법률 등 여러 분야에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그 와중에도 미래에 살아남는 직업이 무엇일지(교사·성직자·미용사·안마사 등) 예측하는 등 구체적이고 친절한 설명을 내놓는다. 동료 과학자·기업인들과 함께 ‘이로운 인공지능 운동’을 펼치고 있는 테그마크는 “인공지능은 방향 없는 지능이 아니라 유용한 지능이 돼야 한다”며 인공지능으로 인한 재난을 막기 위해선 모든 사람들이 대화와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 이주현 기자

2. 반지성주의의 뿌리를 탐구하는 고전

미국의 반지성주의

리처드 호프스태터 지음, 유강은 옮김/교유서가·3만5000원

1964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인 미국의 대표적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가 올해에서야 비로소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50여년 만에 소개된 책인데도, ‘반지성주의’라는 제목과 이를 열쇳말로 삼아 책이 다루고 있는 50년대 미국 사회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지은이는 미국에는 반지성주의 전통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고 보는데, 그 가장 강한 근원으로 애초 미국이란 나라를 건설하는 밑바탕이 됐던 복음주의를 지적한다.

“반지성주의가 정치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평등을 향한 열정과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낳은 특유의 기업 세계 역시 반지성주의를 확대시키는 중요한 동력이었다. 추천사를 쓴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반지성주의는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20세기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나타났다”며, 오늘날 전세계에 만연한 반지성주의의 흐름을 제대로 성찰하기 위해 이 책을 볼 필요가 있다고 추천한다. - 최원형 기자

3. 편견과 두려움 없는 ‘자본주의’ 북한 보고서

조선자본주의공화국

다니엘 튜더·제임스 피어슨 지음, 전병근 옮김/비아북·1만7000원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북한을 전방위로 압박하면 스스로 무너져내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평양 시내에선 고층빌딩이 속속 올라가고, 태블릿 피시를 들고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바로 장마당(시장) 때문이었다.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과 제임스 피어슨 로이터 서울 주재 특파원은 수많은 북한인, 탈북자, 전문가를 만나고, 북한을 방문한 경험을 토대로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을 썼다.

북한이 1990년대 대기근을 겪으며 ‘고난의 행군’을 할 때, 식량 보급 체계가 무너져 북한 민중들은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해야 했다. 여기서 장마당이 생겨났다. 북한이 장마당을 확대해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완전히 이동하더라도 체제는 붕괴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 싱가포르가 그랬던 것처럼. 답은 명확하다. 체제 적대 행위를 지양하고 경제 협력과 문화 교류를 넓혀가는 것. - 김지훈 기자

4. 국경을 넘어선 여성들의 뜨거운 연대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창비·1만5000원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2015년 국내 출간)로 ‘페미니즘 바람’에 한 몫 단단히 했던 리베카 솔닛이 지난 8월 방한했다. 그가 가는 강연장은 국경을 넘은 여성들의 뜨거운 연대의 자리였다.

솔닛은 “한국의 ‘강남역 살인사건’ 등에 관해 들었다. 남성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우리의 적들이 페미니즘에 위협을 느끼고 있고, 페미니스트들이 하는 일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라고 응원했다.

신작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맨스플레인’이란 기존의 용어를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전작 이후에 페미니즘에 관해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책에서 솔닛은 2014년을 미국 페미니즘의 분수령으로 규정한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메갈리안이 만들어진 2015년을 한국 페미니즘의 새로운 분수령이라고 한다면, 거의 동시에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정신이 이 책에 있다. - 김지훈 기자

5. 분배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정치경제

분배정치의 시대-기본소득과 현금지급이라는 혁명적 실험

제임스 퍼거슨 지음, 조문영 옮김/여문책·2만원

남아프리카에서 유럽, 캐나다,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까지, 전 세계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펼쳐지고 있다. 제임스 퍼거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지난 30여년 동안 남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광범위한 현지 조사와 이론 작업을 바탕으로, 기본소득 논의를 깊이 발전시켜 온 인류학자다.

국내에 처음 소개된 그의 책 분배정치의 시대는 오늘날 다수의 빈민 대중이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기존의 생산 중심 정치경제에 속해 있지 않으며, 되레 “물고기를 직접 주는” 분배 중심 정치경제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임금노동과 전통적 가족제도가 빠르게 형해화하는 오늘날, ‘경제적 고아’들은 과연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어떤 권리를 주장하고 또 요구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일에 대한 보상도, 도움을 구하는 호소도 아닌, 노동이나 어떤 종류의 장애, 무능력에 상관없이 소득에 대해 누구나 정당한 자격을 갖는다는 주장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정치”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 최원형 기자

6. 10년의 각고 끝에 찾아온 정치학 고전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김재홍 옮김/길·4만원

20여년 전부터 국내에서도 서양 문명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 고전의 체계적인 원전 번역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학자 개개인의 분투뿐 아니라 여러 공부 공동체의 활성화가 밑거름이 됐다.

그런 흐름 속에서 학술·출판계의 기대를 모았던 작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의 우리말 번역이다. 10년 동안 여기에 공을 들인 김재홍 정암학당 연구원이 올해에서야 비로소 그 작업을 완성해냈다. 3200여개에 달하는 깨알같은 역주,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와 사상, 전체 저작물 체계를 종합적으로 해설해주는 해제 속에서, 정확한 번역을 위해 거쳐야 했을 부단한 고민과 절차탁마를 읽을 수 있다.

광화문 촛불이 ‘진정한 정치란 무엇인가’ 물음을 던진 직후이니, 출간 시기마저 절묘하다고 할까.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덕성(arete)과 실천적 지혜(phronesis)는 과연 어떤 것인가? - 최원형 기자

7. 가슴 아닌 머리가 인간 진보의 동력

계몽주의 2.0-감정의 정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조지프 히스 지음, 김승진 옮김/이마·2만2000원

‘계몽주의’란 말은 자칫 듣는 이의 반감을 살지도 모를 말임에도, 이를 굳이 제목에 넣은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진보를 바란다면, 결코 ‘합리적 사고’를 두려워하거나 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혁명을 팝니다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 등으로 국내에도 알려진 조지프 히스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계몽주의 2.0에서 ‘합리적 사고’를 외면하는 대신 감정과 직관을 정치 문화의 중심에 두려 하는 최근의 흐름에 날카로운 비판의 칼끝을 겨눈다.

전공 분야인 철학뿐 아니라 인지과학, 심리학 등의 성과들을 두루 살펴본 그는, 애초 우리의 뇌가 ‘합리적 사고’에 적합하도록 진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지적한다. 그럼에도 가슴이 아닌 머리를 써서 이룩해온 것이 인간 진보의 역사라는 것. 느리고 까다롭더라도 합리적 사고에 기반한 집단행동이 여전한 진보의 동력이며, 이것이 작동할 수 있는 환경 자체를 구축하는 것이 ‘계몽주의 2.0’의 핵심이라고 선언한다. - 최원형 기자

8. 피케티 자신을 넘어선 21세기 자본 연구

애프터 피케티-<21세기 자본> 이후 3년

토마 피케티 외 지음, 유엔제이 옮김/율리시즈·3만8000원

절실한 물음이 ‘신드롬’으로 끝나선 안 된다. 3년 전 자본주의 체제의 장기적 불평등 추세를 지적한 토마 피케티의 저작 21세기 자본은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관심을 끌었다. 21세기 자본 영문판을 출간했던 미국 하버드대 출판부는 이 책에 대해 다른 여러 전문가들에게 검증과 평가를 요청했고, 폴 크루그먼, 로버트 솔로, 마이클 스펜스, 브랑코 밀라노비치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 21명이 피케티가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생산적인 비판’에 나섰다.

애프터 피케티는 이런 공동의 지적인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책이다. 학자들은 피케티의 책에서 바로잡아야 할 부분, 빠져 있어서 채워야 할 부분 등을 지적하며 오늘날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 불평등의 문제를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지 더욱 구체적인 물음들을 이어간다. 피케티 본인도 이들의 지적을 반기며, 자신의 책이 “21세기 자본 연구의 입문서”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더욱 깊은 연구와 고민, 그리고 실천이 남아 있다. - 최원형 기자

9. 러시아혁명 100년, 그리고 예술

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다산책방·1만4000원

올해는 러시아혁명 100주년의 해였다.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이 그것을 기념하려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그런 맥락에서 이 작품을 읽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거나 엉뚱하지는 않을 듯하다.

작가는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75)가 스탈린 치하 소련에서 겪었던 억압과 공포, 좌절과 타협을 그의 삶의 세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자신이 작곡한 음악이 최고 지도자 스탈린의 심기를 거슬렸다는 생각에, 언제라도 조용히 잡혀갈 수 있도록 여행가방을 꾸려 놓은 채 아파트 층계참에서 대기하던 시절,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예술 자체를 위한 예술”을 신봉한 동료 음악가들을 비판해야 했던 일, 그에게 권력을 주고 그것을 선전에 이용하려는 당국의 뜻에 따라 억지로 공산당에 가입해야 했던 일이 그것. 길지 않은 분량에 스탈린 시대 사회 분위기와 예술과 권력의 긴장 관계를 두루 담아낸 작가의 대가적 필치가 돋보인다. - 최재봉 선임기자

10.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우뚝선 여성과학자

랩 걸-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호프 자런 지음, 김희정 옮김/알마·1만7500원

“세상은 조용히 무너져내리고 있다.”

랩 걸의 저자 호프 자런은 인간이 나무를 오직 식량과 의약품, 목재로만 인식하고 급속도로 파괴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지난 10년간 인간은 500억 그루가 넘는 나무를 베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가면 600년이 못 돼 나무들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나무를 연구하는 자런은 여성 과학자로는 유일하게 풀브라이트상을 세 차례나 받았다. 이 책엔 나무, 숲, 씨앗, 토양에 대한 첨단의 연구들과 함께 지은이가 유망한 식물학 연구자로 단련되기까지 파란만장한 사연들이 박진감 있게 쓰여져 있다. 성차별이 여전한 과학계를 좌충우돌 돌파해가는 자런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은 잘 쓰인 페미니즘 도서로도 읽힌다.

자런은 지구상 생물종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지구 생태계와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며 “자손들을 황폐한 폐허에 남겨두고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을 토로한다. -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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