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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비트'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7년 전부터 있었다

  • 김성환
  • 입력 2017.12.22 09:45
  • 수정 2017.12.22 09:57
ⓒ뉴스1

21일 충북 제천시 하소동에 있는 9층짜리 복합스포츠시설 ‘두손스포리움’에서 난 화재로 29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당시 목격자들은 1층 주차장에서 시작된 불길이 순식간에 9층 건물 전체로 번졌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화재의 주요 원인으로 건물 외벽에 사용한 '드라이비트(drivit)' 마감재가 지목되고 있다.

드라이비트는 단열재 시공에 쓰이는 소재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드라이비트는 건물 외벽에 스티로폼 등 상대적으로 불에 타기 쉬운 ‘가연성’ 소재를 붙이고 석고나 시멘트 등을 덧붙이는 마감 방식이다. 드라이비트(drivit)가 ‘빨리 마른다’는 뜻으로, 단열성이 뛰어나고 공사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널리 사용돼왔다. 무엇보다 석재를 사용할 때에 견줘 비용이 50% 이상 저렴하다.

제천 두손스포리움 화재로 제기되고 있는 드라이비트의 위험성은 사실 새로운 지적은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발생한 대형 화재에서 드라이비트가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부 당국은 화재가 발생한 뒤 후속 조처로 단열재 사용 기준을 강화해왔지만, 또다른 참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문가들의 비판은 계속돼 왔지만, 일시적인 처방만 반복됐던 것이다.

우선, 제천 두손스포리움 화재가 벌어지기 전에 드라이비트 때문에 큰 불이 번졌던 사건부터 살펴보자.

1. 부산 해운대 우신골든스위트 화재(2010년)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 안에 있는 우신골든스위트 아파트는 황금빛 외관의 쌍둥이 빌딩이다. 38층 높이에 독특한 외관까지 더하면서 당시 해운대 마린시티를 대표하는 건물처럼 여겨져 왔다.

이 건물에 화재가 발생한 것은 2010년 10월 1일 오전이었다. 4층에서 시작한 불은 계단을 통해 20분 만에 옥상까지 번졌다. 건물 안으로 연기가 크게 번졌으나, 2시간30여분만에 진화됐으며 사망자도 없었다. 입주민 3명이 유독가스에 질식해 치료를 받았고 소방관 1명도 진화하다가 부상했다.

당시 연합뉴스 보도를 보면, 외관을 살리려 쓴 외벽 마감재 때문에 화재가 급격하게 번진 것으로 나타났다. 알루미늄패널과 단열재를 쓴 드라이비트 공법이었다.

화재 이후 정부는 2010년 12월 12일 '고층건축물 안전관리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이 대책에는 준 초고층(30~49층) 이상 건축물에 피난전용승강기를 설치해 비상시 피난안전층(구역) 또는 15층마다 직통으로 운행하도록 하고 건축물 외벽에 준불연 이상의 마감재(심재, 접착제, 단열재 포함) 사용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2.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2015년)

그러나 5년 뒤 더 큰 화재가 벌어졌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2015년 1월 10일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에 있는 10층짜리 대봉그린아파트 1층에서 불이 났다.

이날 화재는 한 입주민이 4륜 오토바이의 키박스를 녹이기 위해 사용한 라이터에서 발화돼 옆 오토바이와 차로 옮겨 붙으면서 건물 전체로 순식간에 불이 퍼져나났다. 요즘 신축빌라처럼 지상 1층을 개방형으로 뚫어 주차장으로 쓰는 이른바 '필로티' 구조였다. 큰 불이 번지면서 5명이 숨졌고, 125명이 다쳤다.

소방당국의 조사 결과 ‘대봉그린아파트’도 양쪽 외벽은 불에 잘 타는 소재인 스티로폼에 시멘트를 바른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마감했다. 2010년 정부가 발표한 종합대책에는 준 초고층(30~49층) 이상 건축물에만 난연성 재료를 사용하도록 의무화했다. ‘대봉그린아파트’는 대상이 아니었다.

세계일보 보도를 보면, 국민안전처는 사고 이틀 뒤인 2015년 1월 12일, 국회 안전행정위 긴급 현안보고를 통해 "의정부 화재 피해 건물처럼 외벽에 단열재를 시공하는 공법(드라이비트 공법)으로 건설하는 건축물은 높이나 용도와 상관없이 외부 마감재료는 불연재·준불연재료의 사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 뒤 건축물기본법이 개정돼 6층 이상의 모든 신축건물의 외장재로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성’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의무화 됐다.

3. 분당 수내동 학원상가 화재(2015년)

의정부 화재가 1년도 지나지 않은 2015년 12월 11일 저녁, 분당 수내동의 대형 상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며, 이날 화재로 2층 학원에 있던 학생 등 290여 명이 급히 대피했고, 40여 분만에 화재는 진화됐다. 화재로 인한 대피 과정에서 40여 명이 연기를 마셔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불이 난 건물은 12층짜리 필로티 구조의 상가로 1층은 주차장, 2층은 학원, 나머지 층에는 사무실이 입주해있었다. 또 건물 외벽에는 스티로폼에 시멘트를 바른 단열재(드라이비트 공법)가 일부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2년 뒤, 제천 두손스포리움 화재가 발생했다.

12월 22일 한겨레 보도를 보면, 당시 10층 고층 건물임에도 살수기(스프링클러)가 전혀 설치되지 않았고, 양쪽 외벽은 불에 잘 타는 소재인 스티로폼에 시멘트를 바른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마감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제기됐다.

그러나 두손스포리움은 강화된 건축물기본법 적용 대상을 비껴갔다. 새로 개정된 법에서는 2015년 말부터 6층 이상 건물도 외벽에 불연재나 난연재를 쓰도록 법령이 개정됐다. 이 건물은 2010년 7월 완공됐다.

전문가들의 비판도 반복되고 있다.

“드라이비트 공법은 단열이 우선이다. 건물에 ‘기름’을 부어놓은 것과 마찬가지다. 에너지 절약도 중요하지만 안전이 우선돼야 한다. 기존 건물들 가운데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시공된 저층부와 고층부, 창문 쪽은 지금이라도 교체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민세홍 가천대 소방방재공학과 교수(2015.1.12. 한겨레)

“ 필로티 구조는 사실 지진 때도 우리가 취약하다는 게 밝혀졌지만, 이런 구조가 문제가 계속되고 있고요. 다른 하나는, 우리가 비용절감 때문에 드라이비트라는 걸 계속 써왔지 않습니까. 이 부분은 대형 건물 화재에 커다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입니다.” - 정상만 공주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2017.12.22. 신율의 출발 새아침)

그러나 '안전 불감증'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특히 큰 화마를 겪은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가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다시 공사를 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대봉그린아파트는 화재 이후 강화된 건축물기본법 적용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봉그린 등의 외벽은 스티로폼을 붙이고 그 위에 시멘트를 덧 바르는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마감됐다. 단열이 우수하고 값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화재에 취약하다는 것이 단점으로 꼽혔다. -머니투데이(201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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