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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올해가 가기 전에 꼭 봐야 할 웹툰 5

  • 김성환
  • 입력 2017.12.21 09:17
  • 수정 2017.12.21 09:27

다사다난함의 정도가 폭풍이란 말로도 비유할 수 없을 만큼 격했던 올 한 해도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유난히 추운 날씨, 거실에 앉아 차 한잔 마시면서 1년 내내 고생했던 우리의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줄 볼만한 다섯개의 웹툰을 골랐다. 젠더 차별 등 다양한 사회적인 이슈와 인간에 대한 연민 등에 대한 ‘생각의 환기’를 불러일으킬 만한 작품들이다.

1. 핑크빛 무드 가득한, ‘우리 집에 왜 왔니’

대학교수이자 유명 저술가로서 거의 매일 집을 비우는 아빠 때문에 큰 집에서 혼자 자취하다시피 살아온 28살 회사원 서재희. 재희는 엄마가 돌아가셨던 아홉살 무렵 한달간 아빠와 중국 항저우(항주)에서 살았는데, 그때 신세를 졌던 아빠 친구의 아들이 한국으로 유학을 온다는 소식을 전해 받는다. 문제는 도착일이 오늘, 그리고 그 친구 아들이 묵을 장소는 다름 아닌 재희네.

아무리 서로 아는 사이라지만 다 큰 처자가 혼자 사는 집에 한창때 남자를 들이라는 아빠의 무신경함에 어이가 없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그야말로 20년 가까이 지난 후 만난 아이는 낯설어도 너무나 낯설다. 범상치 않은 상황에 맞닥뜨린 재희와 추억 속 ‘버들이’ 류연. 과연 이 둘은 무사히 잘 지낼 수 있을까?

'우리 집에 왜 왔니'는 국적도 성격도 문화도 완전히 다른 두 남녀가 한집에 살면서 벌어지는 본격 정통파 순정 로맨스 코미디다. 진지함과 알콩달콩 로맨스와 개그감을 잘 버무리면서도, 뻔해질 듯할 때마다 한국과 중국의 문화 차이에서 오는 생소함을 곁들여 균형을 잘 맞춘 게 특징이다. 경직되었던 한-중 관계도 풀리고 있는 지금 보면 딱 좋을 법한 작품.(이윤희/미디어다음 만화속세상/2017년 11월 완결)

2. 인권이 소중함을 알려주는, ‘HANA’

유전자 조작을 통해 나온 돌연변이 쥐 ‘하나’(HANA)는 불치병 치료를 위한 연구의 일환이다. 칼에 찔리고 화상을 입어도 흉터 없이 낫고 목숨이 질겨서 웬만해선 죽지도 않는다는 이 슈퍼 실험용 쥐는 3년 전 세상에 알려져 유명해졌다. 하지만 연구소에 갇혀 있는 하나의 실제 정체는 쥐가 아닌 어린 소년. 하나는 다름 아닌 인체 실험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작품 '하나(HANA)'는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른 입장들을 놓고 대립하는 어른들과 그 어른들이 만들어낸 실험용 인간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웹툰이다. 아무 연고가 없는 고아로 모종의 능력을 지니게끔 인체 실험을 당한 하나. 불치병 치료라는 명분이라면 고아는 희생당해도 되는 걸까, 그리고 실험쥐로서 능력을 얻었으나 제어도 못 하는 꼬마는 괴물인가 인간인가. 작가는 이와 같은 질문을 하나를 비롯한 실험 대상인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던진다.

'어서오세요 305호에'로 동성애 소재를 발랄하면서도 신랄하게 표현했던 와난 작가의 신작으로, 이번 작품에서도 묵직한 메시지를 가볍고 재밌게 전달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얼마 전 포항 지진 당시 “한 지역 사람들 때문에 이날(수능)만을 기다려온 다른 지역의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게 말이 되느냐”며 교과서에서 막 배웠음직한 공리주의를 들먹였다던 못난 학생들에게 꼭 읽혀주고 싶은 작품.(와난/네이버 웹툰 연재/2017년 1월 완결)

3. 두가지 색이 섞여 빚어내는 감동 드라마, ‘나빌레라’

나이 일흔, 인생의 황혼기에 다다른 심덕출씨는 평소 조용히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살던 마음 착한 할아버지다. 그러던 할아버지가 느닷없이 던진 선언은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는다. “나, 발레를 하려고 한다.”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갔던 러시아의 한 학교에서 발레 수업을 잠시 보았던 적이 있는데, 처음엔 호기심이었던 것이 미련처럼 박혔던 것이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진지하게 발레를 배우고자 발레단을 찾고, 그곳에서 부상 이후 방황하는 청년 채록이를 만난다. 도전을 시작하는 일흔과 방황을 시작하고 만 스물셋 청년,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둘은 점차 발레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채록이는 할아버지가 발레를 시작한 이유에는, 단지 꿈이나 미련만이 아닌 뭔가 절박함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만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훈(Hun) 작가가 스토리를 쓰고 한국과 일본에서 소년, 액션 만화를 그려온 지민 작가가 그림을 맡은 '나빌레라'는 발레를 소재로 청년과 노인 간의 교감과 성장을 그려낸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건 심득출이라는 인물이 다름 아닌 치매로 기억이 사라져가는 노인이라는 점이다. 그야말로 남은 인생을 전부 걸고 도전하는 할아버지와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모습은 읽는 이의 감정을 강렬하게 뒤흔드는 힘이 있다.(Hun 글, 지민 그림/미디어다음 만화속세상/2017년 10월 완결)

4. 30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며느라기’

2017년 ‘오늘의 우리 만화’ 수상작 다섯 가운데 하나로 뽑힌 웹툰. 주인공 민사린의 혼인 공지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혼인 뒤 나 개인이 아닌 남편의 부인이자 며느리로서 살아가게 된 여성의 삶에 관해 담담한 듯 신랄하게 고발하며 많은 독자의 공감을 샀다.

'며느라기'는 표면적으로는 시가와 며느리의 갈등을 소재로 한 듯하지만, 사실은 혼인으로 얽힌 관계에서 모두에게 아무렇지 않게 적용돼온 암묵적인 룰에 대해 얘기하는 웹툰이다. 그 룰이 사실은 어떤 형태와 어떤 모습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지난해 이후 여성혐오의 실체에 대한 각성과 충돌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모두 한 번은 읽고 토론해야 할 법한 텍스트를 제공해주는 작품.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작가 개인이 캐릭터 계정이란 형태로 연재했다는 점도 특이. 근래 웹툰 플랫폼들이 일으키고 있는 잡음 한가운데에서 많은 시사점을 준다.(수신지/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현재 연재 중)

5. 한국판 어벤져스, ‘브릿지

'무빙'에 이어 ‘강풀 액션 만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작품으로 전작인 '타이밍'의 시간 능력자들과

'무빙' 속 신체 능력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펼치는 액션이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다.

강풀 특유의 치밀하게 설계된 이야기 구조는 이번에도 빛을 발하는데, 그 이야기 속에서 빛나는 건 초능력자들의 호쾌한 능력이 아니라 움직이는 이유에 닿아 있는 ‘우리’ 각자의 이야기다. 특히 이 작품 '브릿지'에서는 어느 한 시점 우리 사회가 억지로 끌어안아야 했던 아픔 앞에서 어른의 역할, 부모의 역할, 그리고 사회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한층 더 강한 은유로 묻고 있다.

이 작품이 한국형 히어로물로 불려야 할 까닭은, 단지 초능력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어서가 아니라 지극히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감정 위에서 우리를 구하려고 움직이는 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마침 연말에 맞춰 종료된 이 작품을 읽으며 지난 한 시기를 위로받으면 좋겠다.(강풀/미디어다음 만화속세상/2017년 12월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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