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을 은폐한 불명예를 안고 버나드 로 추기경이 숨졌다고 교황청이 20일(현지시간) 밝혔다. 향년 86세.
로 추기경은 미국 가톨릭계를 충격에 빠뜨린 아동 성추행 파문의 진앙지인 보스턴 대교구 책임자 출신이다.
CNN 등에 따르면 로 추기경은 최근 로마의 한 병원에 입원했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구체적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보스턴 대교구장이던 당시 관할 사제들이 무려 30년 동안이나 아동들을 성추행한 사실을 알고도 이에 수 년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로 추기경의 은폐 사실이 드러나자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동요했다. 그는 이전까지 가톨릭 교리의 충실한 수호자로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로 추기경은 1984년 보스턴 대교구장에 오른 이래 17년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성직자였다. 당시 교황이던 요한 바오로 2세의 최측근으로 손꼽혔으며 심지어 로 추기경이 향후 첫 미국인 교황으로 등극할 것이라고 관측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2002년 1월 이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당시 로 추기경 관할이던 보스턴 대교구 사제들이 교구를 옮겨다니며 아동들을 성추행하고 다녔다는 스캔들이 터져나온 것이다.
특히 추문의 장본인 중 하나인 존 지오니 전직 신부가 30년 넘게 130명 이상의 남자 아이들을 학대해 온 것으로 드러나면서 여론은 들끓었다.
스캔들에 대한 법정 공방과 수사가 시작됐지만 로 추기경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변호사를 통해 피해자와 은밀히 합의하고 문제의 사제는 다른 교구로 보내는 미봉책을 체계화했다.
2002년 12월 로 추기경이 오히려 성추문을 키웠다는 비판은 고조됐다. 그가 피해자 보호 대신 사제 감싸기에 급급했다는 내용의 내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이러한 여론은 폭발했다. 그는 결국 사임을 결정했다.
로 추기경은 이후 추기경 자리를 유지했으나 관할 교구는 혼란에 빠졌다. 500여건의 소송과 1억달러(약 1081억원) 상당의 손해보상청구, 이에 따른 파산 위기까지 이어졌다.
자진 사임으로 스캔들에서 한 발 물러난 듯 보였던 추기경이지만, 가톨릭계의 분노와 배신감은 이후에도 그에게로 집중됐다.
보스턴 대교구 사제 성추문은 2015년 개봉된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을 흐르는 소재이기도 하다. 영화는 보스턴 지역 신문 '보스턴 글로브' 언론인들이 로 추기경의 스캔들 은폐 방식을 어떻게 폭로했는지를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