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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는 '이 지침' 이후 자살률이 감소했다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이 있다. 괴테는 1774년,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했고 출판 직후 청년들은 소설 속 주인공이 입던 노란색 바지와 청색 자켓을 입으며 주인공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베르테르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사회학자 마이어스는 그의 서적에서 청년들이 그의 죽음까지도 모방하기 시작했고 서적이 출간된 이후 자살이 늘었다고 밝혔다.

이후 미디어의 자살 보도에 대한 연구가 이어졌다. 1988년 발표된 해프너 박사의 논문에서는 "가상의 이야기보다 실제의 이야기가 더 영향력이 크다"며 "사망자를 찬미하고 이를 낭만적이거나 감각적으로 보도하는 경우, 고인에 대해 많은 이목이 집중되고 애도의 물결이 흐르며 삶의 흔적 하나하나가 언급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살을 매력적으로 느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2년 스택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명인의 자살 보도에 노출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모방 자살을 할 확률이 14.3배 높다고 설명한다. 그는 EBS 다큐프라임에서 "마릴린 먼로가 자살했을 때 313명이 그를 따라 자살했지만 미국 마피아 조직원 두 명이 자살했을 때는 유의미한 수치 변화가 없었다"며 "모든 유명인이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영화배우처럼 자신의 삶과 동일 시 할 수 있는 대상이 죽었을 경우 모방한다"고 밝힌다.

한국에서도 이와 관련한 조사가 있다. 한나라당 이애주 전 의원이 2010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명 연예인의 자살 사건 다섯 건을 분석한 결과 사건 이후 자살자는 동일 기간에 비해 평균 23% 정도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다. 2003년부터 15년 동안 이어진 불명예의 기록이다. 자살에 대한 보도지침이 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 시민의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괄목할만한 사례가 하나 있다. 바로 오스트리아다.

오스트리아도 한때 우리나라처럼 자살자가 급증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1980년대 중반 오스트리아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 당 26명에 이르렀다. (한국은 2015년 기준 25.6명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1978년 지하철이 처음 개통된 이후 지하철에 뛰어드는 자살 방법이 유행처럼 번졌다. 미디어는 지하철 자살을 세세하고 자극적으로 보도했고 그 빈도도 점점더 잦아졌다.

지하철 자살에 대해서 처음으로 나온 대책은 '스크린 도어'였다. 하지만 이는 난관에 부딪혔다. 비엔나의 지하철 구조가 스크린도어를 설치에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는 다른 해법을 고민한다. 바로 '자살자에 대한 보도 방식'이었다. EBS와 인터뷰한 현지 전문가들은 "1980년대만 해도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살했는지 미디어가 상세하게 보도했고 보도 직후에는 자살자의 수가 증가했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1960년대 말 미국 신문사의 파업 이후 자살자가 줄었다는 연구에 주목한다.

그들은 지하철에서 일어나는 자살 사건을 절대 보도하지 말자는 방침을 세웠다. 오스트리아 자살예방센터가 제시한 방침은 이렇다

- 가능하다면 자살에 대해서 보도하지 않는다.

- 보도해야 한다면 자살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 헤드라인에는 자살이란 단어를 노출시켜서는 안된다.

- 자살의 상세한 방법에 대해 묘사하지 않는다

- 보도 방향은 자살의 해결방안으로 잡아야 하고 자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서는 안된다

1987년 당시 오스트리아 미디어는 대부분 이 권고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지하철 자살자 수는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 현재 오스트리아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당 11.7명까지 떨어졌다.

당시 이 내용을 취재한 EBS 김우철 PD는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오스트리아의 해법이 성공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덧붙인다.

"(오스트리아 기자들은) 기자로서의 가열찬 취재의욕과 함께 ‘이건 하지 말아야 한다’는 탄탄한 학문적, 이론적 뒷받침이 같은 수준에 와 있었다. 오스트리아 <디프레스> 기자는 타블로이드의 자살보도 기사를 스크랩하면서 반면교사 삼고 있었다. 데스크와 기자들, 학자들이 직접 협의해 질문하고 토론하다 보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해답이 나왔고, 그래서 이런 일도 가능한 게 아닐까 싶었다”

한국기자협회는 자살보도와 관련해 자체적인 윤리강령을 마련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자살보도를 위한 실천 요강

이것은 피해라

△ 자살을 영웅적 행위나 낭만적 해결책처럼 포장하기

△ (새로운) 자살 방법을 소개하고 세세하게 설명하기

△ 작은 사실에 근거하여 일반화하거나, 자살의 원인을 단순화하기

△ 자살이 아무런 예고나 이유 없이 일어났다고 서술하기

△ 자살한 사람의 매력이나 명성에 누가 될까봐 정신건강 상태나 약물중독과 같은 문제를 쉬쉬하기

△ '자살'이란 용어를 헤드라인에 쓰거나, 사인(死因)을 자살로 밝히기

△ 자살한 사람의 사진 넣기

△ 유명인의 자살을 주요기사로 싣기

이것을 넣어라

△ 자살률의 최근 경향

△ 최근의 치료 및 상담의 발전 양상

△ 치료 및 상담을 받고 자살위기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사례

△ 자살하지 않고도 절망에서 일어선 사람들의 사례

△ 자살의 신화(잘못된 상식)

△ 자살 징후들 소개

△ 자살위기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방법

언론이 자살과 관련한 보도를 자제하고 신중하게 접근함으로써 자살을 예방하는 효과를 두고 파파게노 효과라고 한다. 파파게노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인물로 이별에 대한 슬픔 때문에 자살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세 요정이 불러주는 사랑의 노래 때문에 다시 삶을 선택한다. 전문가들은 언론의 보도형태에 따라 자살을 조장할 수도, 막을 수도 있다고 전한다.

백종우 한국자살예방협회 사무총장은 허프포스트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는 자살에 특히 취약한 대상들이 자살을 결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며 "외국에는 언론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자살을 보도하는 기사 하단에 자살과 관련하여 구조를 받거나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연락처를 같이 기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국 언론은)예전에는 삽화까지 넣어가며 자살 방식을 묘사했고 최근에도 여전히 자살 수단을 명시하는 등 여전히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고 있다"며 "분명 개선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고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자살 관련 보도에 대한 모니터링과 분석을 담당하고 있는 신은정 중앙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은 "미디어의 속보 경쟁이 심하다 보니 한쪽에서 자살 수단을 언급하면 그걸 똑같이 찍어내듯 기사를 양산하고 있고 일부 매체들은 고인의 죽음을 키워드로 어뷰징 기사를 양산하고 있다"며 모니터링 결과를 설명했다. 신 부센터장은 이어 "그러나 과거와는 확실히 다르다. 언론사에 수정을 요청하면 예전보다 빠르게 문제되는 부분이 삭제되고 기사의 톤이 다운되고 언론사의 자성 목소리가 담긴 기사도 예전보다 자주 나오고 있다"며 "그래도 시민들이 보기엔 여전히 쏟아지는 기사들에 피로감을 느낄 수 있으니 더욱더 자제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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