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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고발 새역사 쓴 아니타 힐, 할리우드 개혁 위원장에

  • 김성환
  • 입력 2017.12.17 13:01
  • 수정 2017.12.17 19:11

1991년 미국 상원에서 열린 클라렌스 토머스 연방대법관 인준 청문회에 한 흑인 여성 변호사가 증인으로 나섰다. 미국 역사상 두번째 흑인 대법관을 검증하는 역사적인 자리에서, 힐 변호사는 또다른 역사를 썼다. 미국 사회에서 아직 직장 내 성희롱·성추행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기도 전인 이 때, 힐은 교육부와 고용 평등 기회위원회에서 직장 상사인 토머스 대법관 후보로부터 당한 성희롱을 전세계에 알렸다.

토머스는 “흑인이라 민주당으로부터 공격당했다”는 카드를 내세우며 혐의를 부인한 끝에 52대 48로 대법관에 임명됐다. 힐은 그의 임명을 막지 못했지만 청문회 이후 세상은 진일보했다. 힐의 증언 이후 고용 평등 기회 위원회에 성추행 고발이 두배로 늘었고, 법원의 보상금 지급 판결도 늘었다. 기업의 성폭력 예방 프로그램도 활성화 됐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성희롱 사건이면서, 성폭력과 양성 평등에 있어서 분수령을 이룬 사건으로 평가된다. 힐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아니타 힐'(2013)영화 '컨퍼메이션'(2016) 등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이 폭로된 것을 계기로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 Too)’ 캠페인이 거대한 흐름을 이루고 있는 지금, 아니타 힐이 다시 전면에 나섰다. '엔비시'(NBC) 뉴스 등 현지 언론은 15일 미 엔터테인업계 거물들이 예산을 지원해 세운 ‘할리우드 성폭력 척결과 직장 성평등 진작을 위한 위원회’ 위원장에 아니타 힐이 선임됐다고 16일 보도했다.

힐은 변호사이자 보스턴 브랜디스대학의 사회 정책 및 법학, 여성학 교수이기도 하다. 위원회는 힐에게 키를 맡긴 배경을 설명하면서, 법 전문가로서 경력과 더불어 “전세계에 자신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공유한 불굴의 용기”를 강조했다. 위원회는 할리우드의 성폭력 현실을 드러내고, 업계의 권력불균형, 불평등 문제 해결, 성폭력 가이드라인 마련에도 나설 예정이다.

힐은 첫 일성으로 “이제는 침묵의 문화를 끝낼 때가 됐다”며 “나는 26년간 이 일을 해왔다. 이 순간은 우리에게 진짜 변화를 만들 전례없는 기회”라고 말했다. 또 “업계 전반에 인간에 대한 존중과 존엄의 문화를 배양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최상의 (양성 평등) 실천을 채택할 수 있는, 진작에 만들어졌어야 할 새로운 위원회를 이끌게 되어 자랑스럽다”는 소감을 밝혔다.

한편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피터 잭슨 감독도 와인스틴이 성폭력 피해자인 배우들의 출연을 가로막았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침묵을 깨트린 사람들’ 대열에 동참했다. '반지의 제왕'은 와인스틴의 미라맥스에서 제작 논의를 하다가 뉴라인 시네마에서 제작됐다. 잭슨 감독은 배우 애슐리 저드와 미라 소르비노 캐스팅에 관심이 있었으나, 미라맥스가 이를 막았다고 밝혔다.

잭슨 감독은 14일 뉴질랜드 언론과 인터뷰에서 “1998년께 미라맥스가 우리에게 그 두 배우와 일하는 건 악몽이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그 결과 그들의 이름을 캐스팅 명단에서 삭제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두 재능있는 여성에 대한 거짓 정보를 받았었다”고 밝혔다. 소르비노는 트위터에 “울음을 터트렸다”며 “하비 와인스틴이 내 커리어를 망쳤다”고 적었다. 애슐리 저드는 “제작진이 나에게 두 역할 중 어느 쪽을 원하는지를 물었는데, 이후 갑자기 소식이 끊겼다. 잭슨 감독이 진실을 밝혀준 데 감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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