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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요양시설 노동자의 삶은?

하종강이 '송곳' 주인공 '구고신'의 실제 모델"이라고 알려져 강연 포스터에 그렇게 소개되기도 하고 최규석 작가와 함께 이야기마당(토크쇼)에 몇차례 불려가기도 했지만 정작 '송곳'에 나오는 구고신 이야기 중에 나와 관련된 내용은 몇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다.

  • 하종강
  • 입력 2017.12.13 09:15
  • 수정 2017.12.13 09:16

최규석 작가의 만화 '송곳'이 6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3년9개월 연재를 한 끝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하종강이 '송곳' 주인공 '구고신'의 실제 모델"이라고 알려져 강연 포스터에 그렇게 소개되기도 하고 최규석 작가와 함께 이야기마당(토크쇼)에 몇차례 불려가기도 했지만 정작 '송곳'에 나오는 구고신 이야기 중에 나와 관련된 내용은 몇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송아무개 후배와 관련된 내용이 훨씬 더 많다. 콩팥의 실핏줄이 모두 터질 정도로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그 후유증으로 신부전증을 얻어 하루 4번씩 투석을 하면서도 노동상담소를 지키는 모습이나, 주차장 바닥을 피로 흥건히 물들일 정도로 각혈을 하며 쓰러졌을 때 구고신 소장에게 자신의 간과 콩팥을 내주겠다고 병원에 찾아온 사람이 100명도 넘게 줄을 섰던 장면들은 모두 그 후배가 실제로 겪은 일들이다.

그 후배가 지금 요양원에 들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기어이 그 지경이 되도록 건강을 상했구나.... 그런데 아니었다. 요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너무 열악하다는 것을 알고 요양원에 취업해 노동조합을 조직했다는 것이다. 역시 그 후배답다. 그러면 그렇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소비자가 뽑은 공공서비스 부문 대상, 공공서비스 대한민국 만족도 1위 브랜드, 2년 연속 대한민국 퍼스트 브랜드 대상을 모두 거머쥔 사회정책이 바로 장기요양보험이다. '고령화'와 '저출산' 현상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과중한 노인 부양 의무를 해소하고, 노인 의료 및 요양 체계를 효율화함으로써 노인 삶의 질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하는 그야말로 '신의 한 수'와 같은 성과를 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그런데 장기요양시설에 입소해 있는 당사자들은 이런 얘기를 들으면 거의 '사기'라고 느낀다. 야간에 25명의 어르신을 직원 혼자 감당해야 하고 어르신 100명의 노후를 사회복지사 1명이 책임지는 인력 실태, 대다수 노인들이 낙상 위험 때문에 휠체어에 묶여 있고, 하루 종일 햇볕 한 줌 보지 못하고 누워서 지내는 노인도 부지기수로 많은 등 장기요양보험 시행 10년 동안 서비스의 질은 형편없이 낮아져 많은 요양시설이 '현대판 고려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요양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2007년부터 10년간 공무원 임금이 100% 넘게 오르는 동안 요양시설 노동자의 임금은 20%도 오르지 않았으며, 최저임금이 72% 오르는 동안 장기요양수가 인상은 30%에 그쳤다. 종사자들은 고령화됐고 높은 이직률과 법정 인력의 비현실성 때문에 서비스 품질은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요양시설 노동자의 임금을 최소한 정부보조금 지급 시설 종사자의 80~90% 수준까지는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도 공무원 임금의 50~70% 수준에 불과하다.

장기요양시설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요양수가이다. 지난달 보건복지부 산하 장기요양위원회에서는 평균 11.34%의 요양수가 인상을 결정했다. 그 정도 인상으로는 장기요양기관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조차 지급할 수 없다. 요양시설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터무니없는 결정이다. 그 위원회에는 한국노총·경실련뿐만 아니라 민주노총도 참여한다. 요양시설 노동자들은 민주노총까지 참여한 위원회에서 그러한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요양시설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수준을 억지로 맞추기 위해 기존에 지급하던 복지수당을 최저임금에 산입하라는 지침까지 접하고는 황당해할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통화를 하면서 후배가 말했다. "한국노총·경실련은 운동에 대한 생각과 깊이가 다르기 때문에 탓하고 싶지도 않아. 문제는 민주노총이야. 몇 차례 문제 제기를 했는데도 요양시설 노동자들이나 노동조합과 상의하는 절차도 없이 그런 결정에 편승했어. 내가 민주노총에 대해서 할 말이 참 많아."

후배는 여전히 '운동권 내의 운동권'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그러한 '소수 안의 소수'의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한다.

*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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