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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을 위한 변명

삼성 반도체 공장이 정말 위험한 걸까? 그 많은 사람이 병들고 죽은 게 정말 공장 때문인거야? 반도체 직업병 문제는 '삼성전자 뉴스룸' 단골 사안이다. 올해 '이슈와 팩트' 코너에 올린 보도자료 중 60% 이상이 이 문제를 다루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정말 아는 게 없다.

  • 임자운
  • 입력 2017.12.14 11:04
  • 수정 2018.02.07 10:07

최근 JTBC, 한겨레 등이 삼성 직업병 문제에 관한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자 삼성전자 홍보팀이 분주해졌다. '삼성전자 뉴스룸' 홈페이지에 반박 보도자료를 계속 올린다. 반박하는 수준은 점점 더 떨어지는 것 같지만, 그들 처지도 이해가는 면이 없지 않다. 이참에 그들이 되어 보자.

11월 28일, 한겨레에 또 기사가 떴다. 젠장. 한겨레랑 JTBC 요즘 너무하네. 광고를 끊었더니 더 난리다. 암튼 우리 회사 최고 골칫거리인 직업병 문제에 관한 기사가 떴으니, 오늘도 열일해 보자.

팩트쳌... 아니, 흠집체크 부터 해보자. 잘 찾아보면 흠잡을 구석이 보인다. 소소한 흠이라도 상관없다. 없으면 만들면 그만이고. 흠을 찾아 부풀리자. 그래서 기사 전체가 거짓인 냥, 여론을 만들자. 여전히 우리가 하는 말은 무엇이건 넙죽넙죽 받아적는 언론들이 있다. 그렇게 보도자료를 내면 그렇게 여론이 만들어진다.

자자, 그러한 자세로 한겨레 기사를 뜯어보자. 무슨 얘기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반도체 공장에서 쓰이는 '감광액'이라는 화학제품이 굉장히 위험한 물질이란다. 그런데 우리 회사가 그 물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근로자들이 계속 위험에 처해 있단다.

일단 "감광액은 중대 유해물질이 아니다", 라고 반박하자. 그냥 '유해물질'이 아니라고 하면 너무 거짓말이 되니까, 앞에 '중대'를 붙이자. 그리고 '중대' 유해물질이 아니게끔 회사가 잘 관리하고 있으니 '중대' 유해물질이 아니라고 하자. 잘 들여다보면 이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린가 싶겠지만, 그냥 그렇다고 하자. 어차피

이거 받아적는 기자들은 잘 들여다보지도 않을테니까.

법 얘기도 하나 넣자. 있어 보이게. 한겨레가 감광액은 구성성분이 영업비밀로 감추어져 더 위험하다고 했으니, "산업안전법에 의거해 중대 건강장해를 유발시키는 물질은 영업비밀이 될 수조차 없다"고 반박하자, 기자가 법도 모른다는 욕을 먹게끔. 실제 산업안전보건법 41조 1항 단서가 그러하니까. 우리 공장에서 그 법이 잘 안 지켜져 문제지만, 사람들이 그건 잘 모르니, 일단 그렇게 쓰자. 고용노동부 진단에서 해당 조항 위반 사실(중대 건강장해를 유발시키는 물질이 영업비밀로 감추어진 사실)이 적발됐었고, 해당 조항 준수여부 조사에 협조하지 않은 문제까지 지적받았었지만, 역시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일단 그렇게 쓰자.

그리고 "감광액에 벤젠이 들어있지 않다"고 하자. 한겨레가 감광액이 위험하다는 근거로 제시한 '2009년 서울대 조사', 그 조사가 잘못된 거라 쓰자. 백혈병 소송에서 붙어 보았던 쟁점이니, 당시 우리 변호사들이 쓴 서면을 받아 복(사)·붙(여넣기) 하자. 결과적으로는 그 소송에서 우리 변호사들 주장 다 깨지고 감광액에 벤젠이 들어 있는 걸로 판결이 나왔지만, 역시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그냥 그렇게 쓰자. 감광액으로부터 벤젠이 노출될 수 있다는 건 2012년 산보연 조사를 통해서도 거듭 확인되었지만, 그냥 그렇게쓰자.

"감광액 교체하는 경우 방독마스크 쓰고 배기장치를 사용하는 등 안전보건 작업절차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고 쓰자. 알아서 다 잘하고 있으니 문제없다! 이것이 직업병 사안을 대하는 삼성의 가장 기본적인 대응 논리 아니던가. 특히 마스크와 배기장치 문제는 노동부 안전보건진단(망할!)과 여러 산재소송 판결에서 수차례 지적됐지만, 누가 알겠어, 그냥 그렇다고 하자.

"물질안전보건자료 게시를 통해 작업자들의 알권리를 보호하고 있다"는 얘기도 하자. 그 물질안전보건자료가 영업비밀 투성이고, 삼성 스스로 그 자료에 기재되지 않은 유해물질 노출을 확인했다가 소송에서 들켜버리기까지 했지만, 역시 누가 알겠나. 그냥 그렇다고 하자.

심지어 "작업자들은 온오프라인 통해 자유롭게 본인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말도 쓰자. 음 ... "자유로운 의견개진"이라, 이건 좀 고난이도다. 과연 나부터 그럴 수 있는지 자괴감이 들지만, 지금 그런 생각에 빠질 때가 아니다. 아마추어도 아니고.

한겨레가 삼성 보상위원회까지 들먹였으니 그 위원회는 "외부 전문가들을 위원으로 위촉해 독립적으로 구성한 것"이라고 하자. 회사가 전부 골라서 임명한 사람들에게 "외부"니 "독립"이니 하는 게 좀 우습지만, 어쨌거나 회사 소속 인사들은 아니니 그렇게 쓰자. 그 "외부 전문가" 중 한명이 우리 사장한테 고가의 공연티켓 받아오다 적발되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다 잊어버렸을 테니, 그냥 그렇게 쓰자.

끝에는 "옴부즈만 위원회" 얘기를 꼭 넣자. 반올림(망할!)까지 합의한 옴부즈만 위원회라는 사실을 꼭 강조하며, "반도체 근무환경의 안전성을 철저히 조사하고 있다"고 쓰자. 삼성이 직업병 관련 보도자료 낼 때 항상 말미에 '옴부즈만 위원회'를 거론하는거, 다 이유가 있다. 이 문제에 관한 모든 의혹이 옴부즈만 조사 결과를 통해 전부 규명될 것처럼 분위기를 만들려는 거다. 일단 그 자체로 해결 국면인 것처럼 보이니까. 그리고 그 조사 결과가 회사 입맛에 맞게 나오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 최근 옴부즈만 위원장이라는 사람도 우리가 늘 해오던 말이랑 비슷한 얘기를 언론에 했더라. "비과학적인 반도체 안전환경 비판 안타깝다"고.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니까.

그러나 저러나 이 문제 정말 뭘까? 삼성 반도체 공장이 정말 위험한 걸까? 그 많은 사람이 병들고 죽은 게 정말 공장 때문인거야? 반도체 직업병 문제는 '삼성전자 뉴스룸' 단골 사안이다. 올해 '이슈와 팩트' 코너에 올린 보도자료 중 60% 이상이 이 문제를 다루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정말 아는 게 없다.

그런데 뭐, 꼭 알아야 하나. 나처럼 모르는 사람들한테 대응을 맡기는 것도 다 전략일거다. 반도체를 모르고 직업병은 더 모르는 기자 출신 간부들한테, 이 문제 '교섭'까지 맡겼던 회사다. 그들이 기자들에게 당당하게 내질렀던 얼척없는 거짓말들이 다 그래서 나왔던 것 아니겠나. 모르니까 용감하고. 모르니까 가책도 없고.

잊지 말자. 회사 입장에서 이 문제가 잘 해결되는 것은 중요치 않다. 잘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중요할 뿐.

아무튼 그렇게 보도자료를 냈으니 언론이 넙죽넙죽 받아줘야 할텐데... 옳지, 옳지. 보도자료 올린지 40분만에 받아쓴 언론이 있다. 기억해 두자. 근데 이 기사는 내가 봐도 좀 민망하네. 우리 보도자료 그냥 다 받아적기만 했네.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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