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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권이 곧 복지다

세계 곳곳에 펼쳐져 있는 도시를 마치 내 집처럼 여기며 살아보고 경험해볼 수 있을까? 데비(62)와 마이클(72) 캠벨 부부는 이 꿈 같은 이야기를 실제로 실현하고 있다. 1000일이 넘는 밤을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보내고 있다.

  • 음성원
  • 입력 2017.12.12 09:44
  • 수정 2017.12.12 09:53

세계 곳곳에 펼쳐져 있는 도시를 마치 내 집처럼 여기며 살아보고 경험해볼 수 있을까?

데비(62)와 마이클(72) 캠벨 부부는 이 꿈 같은 이야기를 실제로 실현하고 있다. 지난 7월24일을 기준으로 벌써 1000일이 넘는 밤을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보내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 나가는 세계일주 이야기는 씩씩하게 배낭을 메고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던 청년들의 세계일주와는 결이 다르다. 조용히, 그저 새로운 곳을 찾아, 살아보고 경험하며 삶을 즐긴다.

캠벨 부부는 2012년 이후 5년 동안 스페인 마드리드, 모로코 마라케시, 요르단의 암만, 그리스 아테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등 68개국 500개 이상의 도시에서 살아봤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이나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살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들에 대해 "시니어 노마드"라고 부른다.(이들이 살아본 곳 목록)

데비(오른쪽)와 마이클 캠벨 부부.

이렇게 많은 곳에서 살아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캠벨 부부에게는 커다란 '복지'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이 복지를 만들어 낸 것은 바로 에어비앤비라는 숙박공유 플랫폼과 그 플랫폼이 만들어낸 '접근권'이다. 전통적인 숙박시설과 달리 에어비앤비는 집 자체를 빌리기 때문에 여행가방을 크게 줄일 수 있었고, 지역 특유의 문화를 느낄 수 있게 해줬다. 캠벨 부부는 스마트폰 하나로 어디든 갈 수 있는 접근권을 획득했다. 어느 곳에서든 손에 든 휴대전화의 에어비앤비 앱에 접속하면 전세계에 있는 숙소들의 정보와 사진, 그 숙소를 이용해본 사람들의 평가 등을 볼 수 있다. 모르는 동네에 가더라도 익숙한 방식으로 길을 찾을 수 있다. 구글맵을 열고 가고자 하는 위치를 입력하면, 대중교통으로 가는 방법과 걸어서 가는 방법, 운전해서 가는 방법 등을 자세히 볼 수 있다. 길을 모르는 도시에서도 우버를 이용하면 예약할 때부터 예측 가능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바로 이들 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접근권이야말로 지금 우리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지다.

'시니어' 세대에서는 접근권이라는 새로운 권리를 추구하는 삶이 드물기는 하지만, 젊은 세대로 갈 수록 이런 경향은 짙어진다. 특히 밀레니얼(1980년 초부터 2000년 초 출생한 세대)들은 '소유'보다는 '경험'을 중시하는 대표적인 세대다. 이들은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며, 멜론으로 음악을 듣는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1년 반 동안 에어비앤비만을 이용해 뉴욕 맨해튼 곳곳에서 살아보고 있는 한 신혼부부의 사례를 다루기도 했다. 미국의 이벤트 회사인 이벤트브라이트가 조사업체 해리스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를 보면, 밀레니얼 4명 중 3명은 뭔가를 구입하려 하기보다는 경험이나 이벤트에 돈을 쓰려 한다. 비디오 테이프는 물론이고 DVD를 사는 사람은 이제 크게 줄어 들었다. 음반도 소유하려 들지 않는다. 미국의 공유사무실인 위워크에서 일하면 세계의 다른 스타트업들과 쉽게 교류할 수 있는 접근권을 얻을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위워크가 다른 경쟁사에 비해 우위에 있는 장점 중 하나다.

데비(왼쪽)와 마이클 캠벨 부부.

사실 접근권은 오래 전부터 도시의 중요한 복지 요소였다. "자신이 사는 동네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공원이 있나?" "자녀가 걸어서 다닐 만한 좋은 학교가 있나?" "백화점이나 마트 같은 시설 이용이 편리한가?"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왔던 부동산과 도시에서 말하는 주요사항들은, 따지고 보면 모두 접근권에 관한 이야기다. 서울시 역시 지난해 2월 현대차그룹이 삼성동에 짓겠다는 고층빌딩의 건설계획과 관련해 전망대를 '공공기여'로 인정해주기도 했다. 당시 서울시는 569m에 달하는 꼭대기층에 회장실이 아닌 전망대를 넣어 누구든 돈을 내면 올라올 수 있게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접근권이 있느냐 없느냐가 공공성의 잣대였던 것이다.

우리 도시는 여전히 이 접근권에 대해 인색하다. 수많은 공원들이 '관리의 용이성' 때문인지 높은 담장에 둘러싸여 있다. 입구 바로 옆에 살고 있는 주민 외에는 공원 근처에 살아도 사실상 그렇지 않은 모순적인 상황에 직면한 주민들이 너무도 많다. 서울 용산구의 효창공원은 12만 3307㎡에 달하는 대다수 면적이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파트 개발에 따른 기부채납 방식으로 만든 많은 공원들은 아파트에 둘러싸인 형태로 쉽게 접근할 수 없게 설계돼 있어 아파트 주민 이외의 지역 주민들은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접근권의 차별이 복지의 차별로 이어지는 셈이다. 사방팔방 뚫려 있는 뉴욕 맨해튼의 공원들과는 다르다.

진정한 공유도시를 만드는 첫 단추는 주요 공공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평등하게 만드는 데 있다. 훌륭한 공원을 쉽게 찾아갈 수 있다면, 집에 마당이 있을 필요가 없다. 귀한 작품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이 집 근처에 있다면, 체육관이 근처에 있다면, 자녀를 마음 놓고 보낼 수 있는 좋은 학교가 주변에 있다면...? 접근권이야말로 커다란 복지다. 도시에서 접근성 높은 공공자원의 존재는 개인이 소유하는 공간을 줄이고 공유를 확산시킬 수 있다.

진짜 공유도시의 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좀 더 거대한, 실존의 문제에 대한 답이 되어줄 수도 있다.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정아무개(40)씨는 에어비앤비로 집 전체가 공유될 경우, 자신도 다른 집을 통째로 빌려 떠난다고 한다. 여행을 떠나는 곳은 평소에 "살아보고 싶던 곳"이다. 왜 그렇게 하는지 물어보니, 정씨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 개개인이 각자의 존엄하고 행복한 삶을 지키기 위해서 누구나 여행 다닐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여행은 나조차 몰랐던 또 다른 나를 찾게 해주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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