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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에는 왜 굳이 반전이 필요했을까?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아주 많습니다.

친구 사이에 꺼내지 말아야 할 단어가 있다면 첫 번째가 ‘빚보증’이고, 두 번째가 ‘우정’이다. 연인들의 ‘사랑’과 달리 친구들의 ‘우정’은 입 밖으로 꺼낼 때 더 난감하다. 14년에 걸친 두 여자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인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또한 어색함과 낯간지러움을 각오해야 할 것 같은 제목을 가졌다. 하지만 영화는 ‘우정’이란 단어의 장벽에 멈칫하지 않는다. 영화는 두 여자 사이의 우정을 아예 ‘사랑’으로 치환시키고, 증폭시킨다. ‘너와 나 우리 우정 영원히!’라는 구호는 없다. 사랑하다 못해 서로를 할퀴고, 그래서 후회하고,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이야기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두 여자, 칠월(마사순)과 안생(주동우)은 13살에 처음 만난다. 학교와 거리, 숲을 오가며 놀던 아이들은 책에서 “누군가의 그림자를 잡을 수 있으면 그 사람과 평생 이별하지 않는다”는 문장을 읽고는 정말 그 문장처럼 지낸다. 영화가 이들의 우정을 보여주는 방식은 13살 아이다운 동시에 나이만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내밀하다. 함께 비를 맞은 아이들은 칠월의 엄마가 받아놓은 목욕물에 함께 들어간다. 그때 두 소녀는 서로의 벗은 몸을 처음 보면서 막 성장하기 시작한 서로의 가슴에 대해 궁금해한다. 칠월과 안생은 그처럼 서로를 통해 자신의 현재를 자각하면서 서로가 다르다는 걸 인식하는 관계다. 이후 14년간, 이들이 서로를 경험하는 방식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칠월은 착실히 공부를 하며 안정적인 미래를 꿈꾸는 반면, 안생은 일찍부터 학교 밖으로 나가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자신을 맡긴다. 두 사람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사는 동시에 서로의 삶을 선망한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삶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도 모르고 있다. 두 사람에게 이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건, 칠월의 연인 가명(이정빈)이다. 그에게 끌리는 마음을 다잡은 안생은 칠월을 잃지 않기 위해 칠월을 떠난다. 칠월 또한 안생과 가명을 잃고 싶지 않아서 안생의 선택을 막지 못한다. 두 소녀는 그렇게 다른 세계에서 어른이 되어간다.

“언제든 내 집은 바로 너의 집이야”

13살 때부터 욕실을 함께 쓴 칠월과 안생은 10대 후반의 숙녀가 되어서도 공간을 공유한다. 화장실도 없는 작은 단칸방을 마련한 안생이 그곳에 칠월을 초대하는 상황은 영락없는 연인의 모습이다. 그들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한 침대에 누워 이 방안에서 함께 만들어 갈 미래를 상상한다. “내가 너를 위해서 엄청나게 큰 옷장을 살 거야.”, “책을 좋아하는 너를 위해 저기에는 큰 책장을 둘거야.” “언제든 내 집은 바로 너의 집이야”라고 말하며 칠월에게 열쇠를 건네는 안생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이다. 둘만의 세상을 상상하는 소녀들을 보며 피터 잭슨의 영화 ‘천상의 피조물들’ 속 소녀들이 연상되는 것도 뜬금없는 게 아니다. 그 영화의 폴린과 줄리엣 또한 서로에게 운명을 느꼈고 두 사람만이 숨쉴 수 있는 세계를 창조했다. (물론 목욕도 함께 한다.) 단, 폴린과 줄리엣의 사랑은 그들을 갈라놓으려는 사람에 대한 공격성으로 발전됐지만, 칠월과 안생의 사랑은 서로를 향한 애증이 된다. 시간이 흘러 대학 진학과 취업, 이별 등의 인생을 살아온 칠월과 거리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온 안생은 23살이 되어 재회한다. 틈이 난 관계에 사소한 신경질이 더해져 서로를 갉아먹는 가시 돋힌 말들로 폭발하는 과정은 생생한 연기 덕분에 더 아프다. 4명의 여성 작가가 2명씩 편을 짜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는 두 여자의 팽팽한 감정선은 어느 한 쪽으로 쉽게 기울지 않는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천상의 피조물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홍콩 배우 증지위의 아들이자, 배우이기도 한 증국상이 연출한 작품이다. 그는 ‘첨밀밀’ 등을 연출한 진가신 감독을 통해 이 영화의 원작소설을 알게 됐고, 원작에는 없던 ‘인터넷 소설’이라는 구성을 더했다. 영화가 전하는 칠월과 안생의 이야기는 극중에서 칠월에 의해 인터넷에 연재 중인 소설의 내용이다. 그리고 자신이 소설 속 안생이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소설도 읽지 않는 편이라고 말힌 안생은 어느 날 연락 끊긴 친구가 보내온 편지처럼 이 소설을 읽는다. 사실상 영화가 처음부터 반전의 존재를 예고하는 셈이다. 안생은 왜 이 소설 속의 안생이 자신이 아니라고 부정하는가, 안생은 왜 칠월과 멀어졌는 가란 질문이 뒤따르는 이상, 그에 따른 대답을 기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시 후반부에 연이어 등장하는 반전들은 상당히 무리수다. 하지만 칠월과 안생의 관계에서 이러한 반전의 형식은 상당히 필연적이다. 살아서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헤어진 안생과 칠월은 서로를 계기 삼아 지금까지 와는 또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칠월은 과거 안생이 엽서와 편지로 설명해주었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그렇게 떠돌며 흔들리는 삶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이었다고 깨닫는다. 반대로 수천 번을 흔들리며 살았던 안생은 이제 뿌리를 내릴 공간을 만들려고 애쓴다. 그들은 그렇게 선망하던 서로의 삶을 살아보게 된다.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여배우의 ‘투샷’

이에 대해 증국상 감독은 영화전문매체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안생과 칠월의 모습이 우리 내면에 있는 양극단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나이에는 안생에 더 가까웠다가 자라면서 칠월에 가까워지는 거다. 여성이 자신과 싸우는 이야기, 이를 통해 자신이 누군지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보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그처럼 끊임없이 서로의 그림자를 밟는 칠월과 안생을 통해 어느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여성’을 구성한다. 속옷 취향으로 구분하면 “고리타분한” 색깔의 속옷을 입는 칠월과 짙은 색깔의 속옷을 입는 안생을 각각 마사순과 주동우에게 맡긴 것 또한 같은 맥락의 선택으로 보인다. 주동우는 데뷔작인 장예모 감독의 ‘산사나무 아래’에서 때묻지 않은 순수한 소녀의 캐릭터를 연기한 이후, 사실 ‘칠월’과 같은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 반대로 ‘마사순’은 주로 안생과 비슷한 성격의 여성을 맡아왔다. 이전과 다른 성격과 표정을 드러내는 두 배우, 그리고 여기에 이야기와 반전의 형식이 엮이면서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관객 또한 시선의 경계를 넘어서도록 만들고 있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근래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여성의 투샷’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여배우들의 모습을 한 프레임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어느 나라의 영회에나 많지만 이들이 웃고, 울고 싸우면서 만들어내는 격정적인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금마장 영화제에서 53년 만에 최초로 공동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주동우와 마사순의 투샷은 기억에 오래 남기고 싶을 만큼 강렬하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가 만약 한국에서 리메이크된다면, 어떤 배우가 안생과 칠월에 어울릴까? 그들은 또 어떤 투샷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한국의 영화관객이라면 분명 이 질문을 먼저 던져보게 될 거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지난 12월 7일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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