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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구 1 에릭남이 필요하다" 농담이 유행처럼 번지는 이유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식목일입니다. 여러분의 댁에도 한 그루의 에릭 남을 심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친구가 올해 4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에 올린 농담은 날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평소 골격 구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설악산 암벽 같은 얼굴들을 향해 배타적인 애정을 피력하던 사람이었는데, 에릭 남의 얼굴은 각진 구석 없이 섬세하고 둥근 선으로 매끈하게 이어지는 것이 좀처럼 친구의 미감에 부합할 만한 상은 아니었으니까. 웃으며 의구심을 표한 내게 친구는 말했다. “아마 눈 처진 남자를 마음에 담은 건 에릭 남이 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예요.” 암벽 같은 얼굴을 좋아하는 이조차 제 미감을 극복하고 끝내 사랑에 빠지도록 만드는 남자라니. 친구의 에릭 남을 향한 애정을 보며 나는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거짓말> 속 대사를 떠올렸다.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거야. 길 가다 교통사고처럼 아무랑이나 부딪칠 수 있는 게 사랑이야. 사고 나는 데 유부남이, 할아버지가, 홀아비가 무슨 상관이 돼, 나면 나는 거지.” 그래. 얼굴의 윤곽이야 아무러면 어떤가. 그걸 셈하고 빠질 수 있다면 그게 사랑이겠는가.

‘사람을 올바르게 대하는 법’을 아는 남자

에릭 남과 사랑에 빠진 게 내 친구 하나만은 아니다. 취향으로만 따지면 에릭 남을 좋아할 일이 없을 사람들이, 하나둘 에릭 남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사람인지 간증하기 시작했다. 문화방송 <섹션티브이 연예통신>이나 콘텐츠업체 피키캐스트에서 인터뷰어로 활약하는 에릭 남을 보며, 인터뷰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자연스러운 대화의 기술과 늘 미소를 잃지 않는 얼굴에 매료되었노라 말하는 그들의 고백은 달달하고도 절절했다. 심지어는 인터뷰를 위해 에릭 남을 만난 월드스타들조차 에릭 남을 사랑했다. 평상시 씹기 좋은 군것질거리를 즐긴다는 어맨다 사이프리드를 위해 버터 오징어를 준비해 가고, 보스턴 출신인 맷 데이먼과 보스턴 레드삭스 이야기로 공감대를 쌓아가는 에릭 남은 확실히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심지어 제이미 폭스는 “인터뷰를 하려고 만났는데, 알고 보니 진짜 스타는 내 앞에 앉은 이 청년이네요!”라고 공공연하게 애정을 고백했다. “1가구 1에릭남 보급이 시급하다”는 인터넷 농담이 유행어가 된 상황, 이쯤 되면 에릭 남을 사랑하는 일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 같다.

왜 모두가 에릭 남을 사랑하는 걸까? 물론 위에서 한참 설명한 것처럼 에릭 남은 상대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세심한 구석까지 신경 쓰는 섬세한 사람이다. 그는 늘 미소를 잃지 않는 귀여운 얼굴의 소유자이고, 노래하는 그의 음색은 곱고 가늘면서도 까슬한 질감을 가지고 있어 듣는 이의 귀를 잡아당긴다. 그러나 냉정하게 얘기하면 연예계에 그 정도의 매력을 가진 이들은 많다. 섬세한 남자는 많고, 노래를 잘하는 남자는 더 많으며, 그러면서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남자도 적지 않다. 단순하게 이와 같은 매력들만 가지고 사람들이 “1가구 1에릭남”이라 외치며 그를 향한 사랑을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모든 매력을 지니고도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연예인의 이름들을, 앉은자리에서 두 개 이상 떠올리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에릭 남을 향한 사람들의 사랑에는, 분명 그런 단순한 매력을 훌쩍 뛰어넘는 요소가 있다. 에릭 남은 한국 사회뿐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덕목을 지녔다. 바로 “사람을 올바르게 대하는 법”에 대한 확고한 자기 기준이다.

사람들은 종종 타인을 바라볼 때 선입견을 동원하곤 한다. 딱히 어떠한 악의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 편이 상대에 대한 판단을 빨리 내리기에 편한 탓이다. 모든 정보가 빠르게 유통되는 탓에 판단도 빨라야 하는 시대,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상대를 파악하는 것은 능력으로 간주되지 않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상대의 출신 지역을 근거로 성격을 짐작하고, 상대의 출신 학교를 근거로 지적 수준이나 관심사를 예상하며, 옷차림과 외모를 기준으로 재정상태나 문화적 자본 수준을 가늠한다. 어느 채널의 뉴스를 보고 무슨 신문을 구독하는가를 기반으로 상대의 이념적 좌표를 넘겨짚는 일들은 얼마나 잦은가. 그러나 에릭 남은 상대를 그를 구성하는 조건이 아니라 그의 언행으로 판단하고, 상대가 유명한 연예인이든 자신의 매니저이든 상관없이 상대를 있는 그대로의 사람으로 대한다. 패리스 힐튼과 전에 없는 깊이의 인터뷰를 끌어낼 수 있었던 것도, 흔한 프레임인 ‘유명하다는 이유로 유명해진 셀러브리티’나 ‘괴짜 상속녀’ 대신 ‘자기 이름을 건 사업을 이끌고 있는 사업가’로 대한 에릭 남이 아니었다면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상대를 넘겨짚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면,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 만큼 조심스레 경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에릭 남은 늘 상대에게 다가갈 때 신중하다. 심지어 그가 부르는 구애의 노래조차 그를 닮아서, 또래의 다른 가수들의 노래와는 가사의 결이 사뭇 다르다. 데뷔곡인 ‘천국의 문’에서 에릭 남은 상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거나 제 세계로 초대하겠다고 말하는 대신 “너에게 속한 세상이란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하고, ‘인터뷰’에서는 상대에게 무턱대고 제 진심을 알아 달라고 하는 대신 “우선 먼저 편하게 앉으”라고 권한다. 제 마음을 조심스레 말한 뒤 덧붙이는 말이 “실례가 아니었다면 좋을 텐데. 불편하지 않았다면 좋을 텐데”인 건,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에릭 남이기 때문이리라.

만화 캐릭터 ‘크리링’ 분장을 한 속사정

그렇다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는 말이 ‘상대가 뭘 하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마냥 웃는다’는 의미로 읽혀선 안 된다. 에릭 남은 자신의 기준으로 옳지 않다고 믿는 일 앞에서는 분명하게 제 목소리를 낸다. 티브이엔(tvN) <에스엔엘>(SNL)에 출연했을 때 간디를 희화화하는 분장을 제안받자 단호하게 “다른 인종을 희화화하는 분장을 할 수는 없다”고 거절하고, 제작진이 인도 식당을 운영하는 홍석천 분장을 하자고 제안하자 “한국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대표적인 인물인 홍석천을 희화화할 수 없다”고 거절한 끝에 만화 캐릭터 ‘크리링’ 분장으로 내용을 바꿨다는 일화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런 순간은 어떤가? 팬들과 실시간 소통을 위해 라이브 방송을 하던 중, 누군가 차 뒷자리에 타고 있는 여자 코디네이터의 얼굴이 궁금하다는 댓글을 올렸다. 에릭 남은 자기 얼굴이 못생겼다며 얼굴을 가리는 코디네이터에게 다정하게 “뭐가 못생겨,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고 말하다가, 동행 중이던 남자 스타일리스트가 웃으며 “못생기긴 했지?”라고 말하자 급하게 정색하며 잘라 말한다. “야! 그러지 좀 마셔” 농담을 빙자해 타인의 외모를 함부로 평가하고 놀리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려 할 때, 에릭 남은 단호하게 ‘노’라 외친다. 상대를 존중하고, 남을 함부로 깔아내리거나 비하하지 않으며, 아닌 건 아니라고 외치는 사람.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을 뿐이지만 사람들은 그런 모습 때문에 에릭 남과 사랑에 빠졌다.

이런 이야기를 좀더 일찍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에릭 남은 하루아침에 괜찮은 남자가 된 게 아니고 데뷔 이래 늘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그러나 요즘 세상에 겉으로 보이는 매력이나 재능이 아니라 사람 자체에 호평을 내리는 건 얼마나 망설여지는 일인가. 좋은 사람인 줄 알고 지면 가득 칭찬을 하고 보면 몇 개월 뒤 그 사람이 잔뜩 물의를 빚는 광경을 보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오랫동안 망설여왔던 말을, 이제는 조심스레 해보려 한다. 직장 내 성폭력 문제를 주제로 방영되는 이번주 에스비에스(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에릭 남은 “성폭력은 여성만의 일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말하는 릴레이 멘트에 참여한다. 정말, 1가구 1에릭남 보급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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