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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언부터 사과까지...문재인과 박근혜, 이것이 달랐다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데, 그렇게 찾기 어렵습니까?”

2014년 4월16일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찾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처음으로 꺼낸 말입니다. 첫 보고를 받은 지 7시간 만입니다. 수백 명이 배 안에 갇혀 바닷속에 가라앉은 상황에서 대통령은 심각성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지시가 아닌 질문을 던졌습니다.

안타까운 사고가 또 발생했습니다. 3일 아침 6시5분께 인천 옹진군 영흥도 영흥대교 인근 해상에서 승객 20명과 선원 2명 등 모두 22명이 타고 있던 낚싯배(9.77t)가 336t급 급유선과 충돌해 뒤집히면서 15명이 숨지고, 7명이 살아남았습니다. 그 규모와 성격은 다를지라도 해상 사고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세월호를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응은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전혀 달랐습니다. 사고 이후 첫 발언부터 사과까지, 빠르고 명확했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달랐는지 하나씩 따져봤습니다.

■ 첫 발언: 첫 보고 뒤 2시간 vs 첫 보고 뒤 7시간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아침 7시1분 위기관리 비서관으로부터 낚싯배 전복사고에 대해 1차 보고를 받고 “해경 현장 지휘관의 지휘 하에 해경, 해군, 현장에 도착한 어선이 합심하여 구조 작전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지시했습니다. 낚싯배 전복사고가 발생하고 56분이 지난 시점입니다. 두 차례의 전화보고와 한 차례의 서면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은 오전 9시25분 국가위기관리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사고 발생 뒤 3시간, 첫 보고 이후 2시간이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해경과 행정안전부, 세종상황실 등을 화상으로 연결해 보고받은 뒤 9시31분 “현장의 모든 전력은 해경 현장지휘관을 중심으로 실종 인원에 대한 구조작전에 만전을 기하고, 현재 의식 불명 인원에는 적시에 필요한 모든 의료 조처를 취하길 당부한다”고 지시했습니다. 특히 문 대통령은 “현장 구조작전과 관련하여 국민들이 한치의 의구심이 들지 않도록 필요한 사항에 대해 적극적으로 언론에 공개하여 추측성 보도로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는데요. 언론 보도와 별도로 청와대는 오전 10시8분 페이스북에 문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위기관리센터 현장 동영상과 함께 공개한 바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어땠을까요. 세월호 참사 당일 중대본 방문 이전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은 3년 반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대통령 쪽 대리인단은 ‘세월호 7시간’의 행적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한 바 있습니다. 이 답변서에서 박 전 대통령은 오전 10시께 국가안보실로부터 세월호 사고 첫 보고를 받고 오전 10시15분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해 “단 한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구조에 만전을 기)할 것, 여객선 내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하여 누락 인원이 없도록 할 것”을 지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10시30분께는 해경청장에게 전화해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을 지시했다고도 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주장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통화 기록을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헌법재판소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은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문 보충의견서에서 “통화가 실제로 있었다거나 그러한 지시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관련 첫 발언은 오전 10시께 첫 보고 뒤 7시간이 지난 오후 5시15분께 중대본 방문 당시 발언으로 봐야 합니다.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데, 그렇게 찾기 어렵습니까?”는 그 질문 말입니다.

심지어 첫 보고가 30분 더 빨랐지만 이를 오전 10시로 고친 정황까지 나왔습니다. 지난 10월12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청와대 안보실 공유폴더에서 발견된 박근혜 정권 전산 파일을 근거로 “위기관리센터는 (박 전 대통령에게) 최초 보고서를 오전 9시30분에 보고한 것으로 돼 있는데, 6개월 뒤인 10월23일 작성된 수정보고서엔 최초 보고 시점이 오전 10시로 작성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박 전 대통령이 탄핵심판 당시 주장했던 10시15분 지시는 첫 보고 뒤 45분이 지난 뒤에야 내려진 셈입니다. 그 지시가 ‘진실’이라는 가정 하에 말입니다. (▶관련 기사: 세월호 보고시점 30분 조작, 박근혜 늑장지시 숨겼다)

■ 사과: 사고 하루 만에 VS 사과 한달여 만에

문재인 대통령은 사고 하루 만인 4일 오후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낚싯배 사고 희생자들에게 조의를 표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 같은 사고를 막지 못한 것과 또 구조하지 못한 것은 결국은 국가의 책임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국가의 책임은 무한책임이라고 여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음은 문 대통령 모두 발언 중 낚싯배 전복사고 관련 부분입니다.

“어제 낚싯배 충돌 사고로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께 삼가 조의를 표하고, 유족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직 찾지 못한 두 분에 대해서도 기적 같은 무사귀환을 기원합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 같은 사고를 막지 못한 것과 또 구조하지 못한 것은 결국은 국가의 책임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국가의 책임은 무한책임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이번 사건의 수습이 끝나면 늘어나는 낚시 인구의 안전 관리에 관해 제도와 시스템에서 개선하거나 보완할 점이 없는지 점검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 사과는 사고 발생 한 달여가 지난 뒤인 2014년 5월19일 나왔습니다. 그 한 달여 간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들을 비난하고 공무원들을 질타했지만 정작 정부와 대통령인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참사 다음 날인 4월17일부터 감지됐습니다. 이날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르고 있던 진도실내체육관(전남 진도군 진도읍)을 찾은 박 전 대통령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라고 말했다. 희망을 잃지 말고 구조 소식을 기다려달라”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여기 있는 분들 다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4월21일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의 행위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용납될 수 없는 살인과도 행태”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단계별로 책임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여기에 사고를 발생시킨 구조적 문제를 미리 개선했어야 하고 재난 대처 컨트롤타워를 대표했어야 하는 대통령 본인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사과를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4월2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사전에 사고를 예방하지 못하고 초동대응과 수습이 미흡했던 데 대해 뭐라 사죄를 드려야 그 아픔과 고통이 잠시라도 위로를 받으실 수 있을지 가슴이 아프다”고 했지만 유가족대책위원회는 이 ‘간접 사과’를 두고 “사과도 아니다”며 평가절하했습니다. 5월19일 눈물을 흘리며 했던 대국민 사과는 이러한 과정에 ‘떠밀려’ 우여곡절 끝에 차려진 자리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해경 ‘늑장 출동’은 아쉬워

물론 이번 사고에서도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청와대의 빠른 대처와는 별도로 현장에서 해경의 ‘늑장 출동’으로 인해 구조가 늦어진 점입니다. 비교적 가까운 연안 해역이었음에도 선내 진입이 가능한 특수구조대가 도착하기까지 72분이 걸린 것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해경이 밝힌 이유는 장비 고장과 항로 제약입니다. 아침 6시13분께 사고 상황이 전파됐고 평택구조대와 인천구조대에 이동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인천구조대 2척의 구조정 중 낮은 수심과 야간에도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신형은 고장 난 상태였습니다. 기상 상황 등으로 구형 구조정 역시 운항이 어렵다는 판단으로 구조대는 육상에서 이동한 뒤 민간 선박을 타고 사고지점까지 이동했습니다. 여기에 꼬박 91분이 걸렸습니다.

평택구조대는 어땠을까요. 해경은 지난해 출동 대응 시간 단축을 위해 평택항에서 제부도로 위치를 옮긴 구조대가 제부도 연안 양식장과 어망 등을 피해 남쪽으로 우회하면서 직항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평택구조대는 72분 만에야 사고지점에 도착했습니다. (▶관련 기사: 특수구조대 왜 늦었나 했더니…장비·항로 제약)

‘늑장 출동’이 아찔한 것은 뒤집힌 낚싯배 아래 ‘에어포켓’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 때문입니다. 에어포켓 생존자 3명 중 1명인 이아무개(33)씨는 4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탈출하고 시계를 보니 8시30분쯤이었다”고 말했는데요. 이미 사고 발생 뒤 두 시간이 훌쩍 지난 시점입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해경이) 왔을 때 숨이 안 쉬어졌다. 공기가 모자라서 다들 헥헥대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때마침 썰물로 물이 빠지면서 모자랐던 공기가 에어포켓 안으로 유입되지 않았다면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관련 기사: [단독] 에어포켓 생존자 “공기 모자랐지만 썰물 덕에 살았다”)

■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의 역할은

문 대통령의 말마따나 “현장의 모든 전력은 현장지휘관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하지만 현장지휘관과 별도로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의 역할은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헌법재판소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문 보충의견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규모 재난과 같은 국가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그 상황을 지휘하고 통솔하는 것은 실질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효과까지 갖는다. 실질적으로는, 국가 원수이자 행정수반이며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위기 상황을 지휘, 감독함으로써 경찰력, 행정력, 군사력 등 국가의 모든 역량을 집중적으로 발휘할 수 있고, 인력과 물적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으므로, 구조 및 위기 수습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척될 수 있다. 상징적으로는,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재난 상황의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 자체로 구조 작업자들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할 수 있고, 피해자나 그 가족들에게 구조에 대한 희망을 갖게하며, 그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정부가 위기 상황의 해결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 하였음을 알 수 있어 최소한의 위로를 받고 그 재난을 딛고 일어설 힘을 갖게 한다.

비록 최종 파면 사유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헌법재판소는 보충의견서에서 박 전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위반’을 분명하게 짚었습니다. “국가최고지도자가 국가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하여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우리의 유산으로 남겨져서는 안 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박 전 대통령의 ‘그릇된 인식’이 우리의 유산이 되지 않아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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