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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맞으면 그때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 및 제안'이라는 난에 '청와대에 상주하는 기자단을 해체해 달라'는 청원이 있다. 추천을 많이 받은 순서로 열 손가락 안에 든다. 5만명 가까운 이들의 추천을 받고 있다. 왜 이리 많은 추천을 받고 있을까?

  • 이정렬
  • 입력 2017.12.05 05:40
  • 수정 2017.12.05 06:26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 및 제안'이라는 난이 있다. 어떤 청원을 해서 일정 수 이상 추천받으면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의 답을 받을 수 있다. 최고권력자와 국민이 직접 소통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좋은 제도다.

'청와대에 상주하는 기자단을 해체해 달라'는 청원이 있다. 추천을 많이 받은 순서로 열 손가락 안에 든다. 5만명 가까운 이들의 추천을 받고 있다. 왜 이리 많은 추천을 받고 있을까?

주장의 취지는 이렇다. '청와대가 대통령 일정을 페이스북에서 생중계했다. 이에 대해 기자들은 자신들에게 공지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청와대가 기자들 영역을 침범했다고 항의했다. 대통령 일정을 생중계하는데 왜 기자들 허락을 받아야 하나? 기자들이 박근혜 정부 때는 아무 말 못 했는데, 이런 항의를 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를 만만하게 보기 때문이다. 이런 청와대 기자단의 갑질을 막을 방편으로 청와대 기자단을 폐쇄해야 한다'고 한다.

청와대 기자단이 이른바 '갑질'을 한다는 데 대해 언론사와 기자들은 억울해하는 눈치다. 청와대와 국민이 직접 권력기관이 내보내는 일방적인 주장만 국민에게 전달되어 언론의 비판기능이 작동되지 않는다고 한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언론사의 존재 의의가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비판이니만큼 언론사의 검증은 필요하다.

문제는 이런 주장을 하는 언론사들이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 때는 대통령에게 질문을 하기는커녕, 대통령이 말하는 내용을 받아쓰는 데 급급했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일부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예전 정부 때 출입기자와 현재 출입기자가 다르다고. 예전에는 잘못했다는 말로 들리기는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단지 출입기자가 달라져서인가? 그 기자들이 소속된 언론사는 그대로인데? 이래서는 곤란하다. 예전 정권 때는 기자들이 잘못했다. 그 점에 대해 통렬하게 반성하고 국민께 사죄를 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의 맞는 행동을 이해받을 수 있다.

또 하나의 장면.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와 영장전담판사들이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정도다. '적폐 판사', '꼴판'이라는 말까지 등장할 정도다. 반면에, 비판을 넘어서 판사 개인의 신상을 터는 것은 과도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맞는 말이다. 주권자가 비판할 대상은 잘못된 권력행사이지 사람 자체는 아니다. 신상털기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에는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예전 모습을 보자. 2004년. 한 판사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판결을 했다. 많은 언론들이 이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전했다. 그랬던 언론사 중 한 곳이 보도 태도를 바꾼다. 그 판사가 특정한 연구회 소속인데, 그 연구회는 진보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법원이 좌파에 의해 점령당했다는 내용이었다. 명백한 왜곡·날조 보도다.

재미있는 것은, 판사 신상털기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언론사와 특정 판사에 대해 좌파라고 신상털기를 하며 왜곡보도를 한 언론사가 동일하다는 점이다. 물론 기사를 쓴 기자는 다르다. 하지만 그 언론사는 과거에 자신들이 자행했던 판사 신상털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아무런 사과나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 아니, 입장이 바뀐 경위를 밝히지도 않고 있다.

기자가 바뀌었다는 변명은 가당치 않다. 지금의 모습이 맞으면, 그때의 모습은 틀렸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기레기'라는 경멸적인 용어가 왜 나왔는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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