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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반사망원경' 품은 가리비의 비밀

  • 김태성
  • 입력 2017.12.04 09:45
  • 수정 2017.12.04 09:50

가리비의 촉수 일부에 검은 점처럼 보이는 것이 눈이다. 모두 200개에 이르는 이 눈이 합쳐 반사망원경처럼 작동하는 사실이 밝혀졌다.

세계 전역에 분포하는 가리비는 조개 가운데 특별하다. 다른 조개들이 땅속에 묻혀 있거나 바위 등에 들러붙어 거의 움직이지 않는 데 반해 대부분의 가리비는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자유로운 존재다. 불가사리 같은 포식자가 접근하면 물을 일시에 뿜어내 그 반동으로 재빨리 움직인다. 종종 포식자가 닿기도 전에 알아차리고 달아난다.

가리비에 다른 조개와 달리 눈이 있다는 사실은 200년 전부터 알려졌다. 가리비가 위·아래 조가비를 살짝 벌리면 외투막에 수많은 촉수가 달린 것이 보인다. 일부 촉수에는 1㎜ 이하의 작은 점 같은 눈이 달려 있는데, 그 수는 약 200개에 이른다. 이 눈으로 포식자를 감지한다는 사실은 알려졌지만, 그 구조와 원리는 수수께끼였다.

가리비 눈을 확대한 모습.

벤저민 팔머 이스라엘 바이즈만 과학연구소 박사 등 이스라엘 연구자들은 저온전자현미경이란 첨단 장비를 이용해 가리비 눈의 미세구조를 분석해 작동원리를 찾아냈다고 과학저널 ‘사이언스’ 1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조사 결과 가리비의 눈에는 렌즈 대신 거울이 있었다. 나노미터 크기의 사각형 거울 수백만개가 타일을 발라놓은 것처럼 배치된 눈은 “반사망원경과 놀랍게 비슷했다”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우리 눈이 들어오는 빛을 수정체로 조절해 눈 뒤 망막에 상이 맺히도록 하는 카메라라면, 가리비는 빛을 수많은 거울에서 반사해 통합된 전체상을 얻는 반사망원경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가리비 눈의 확대 모습(왼쪽). (ⅰ) 각막 (ⅱ) 수정체 (ⅲ) 바깥망막 (ⅳ) 안쪽망막 (ⅴ) 오목거울. 오른쪽은 붉은 네모 부분을 확대한 타일 모습.

연구자들은 좁쌀 크기인 가리비의 눈을 얼려 잘게 썰어 가면서 그 원리를 찾아냈다. 눈은 각막, 렌즈, 그리고 뜻밖에 이중 망막으로 이뤄졌다. 눈 뒤에는 오목거울이 있는데, 이를 확대해 보니 구아닌 결정이 20∼30층으로 쌓인 모습이었다. 구아닌 결정은 투명하지만, 타일과 타일 사이가 유체로 둘러싸여 있어 타일을 통과한 빛이 굴절되면서 전체적으로는 빛의 방향이 바뀌어 거울 구실을 하는 얼개였다. 두 개의 망막은 각각 피사체의 중앙과 테두리를 감지하는데, 모든 눈에서 얻은 정보는 한 묶음의 뉴런으로 전달돼 전체적인 상을 감지하게 된다.

그렇다면 가리비는 왜 200개나 되는 눈을 약 250도 각도로 배치할 필요가 있을까. 연구자들은 “개별 눈의 상에서 초점이 잘 맞는 부위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수의 눈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아마도 가리비는 눈앞의 포식자를 더 잘 파악하고 주변에 있는 바다 밑바닥의 먹이를 탐색하느라 이들 눈을 활용할 것이다. 하지만 가리비가 어떻게 이런 첨단 우주기술을 구사하게 됐는지는 앞으로 규명할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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