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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를 통한 북한 굴복', 희망고문일 뿐이다

우리 정부는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겠다고 한다. 북한이 제재에 굴복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 말은 공염불에 가깝다. 북한 도발 때마다 반복되는 '강력한 압박과 제재' 천명이 분노한 국민의 감정 배출구 이상의 역할을 한 적이 있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 이종석
  • 입력 2017.12.04 09:17
  • 수정 2017.12.04 09:18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의 시험발사에 대응해서 들려오는 소식은 온통 제재 얘기다.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늘 그랬지만 이번에는 더 심하다. 게다가 제재가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 사회에 어느 때보다도 널리 퍼져 있다. 그동안 대북제재가 번번이 실패로 끝났건만 '이번에는 다르다'는 기대가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미국의 강압적 대북정책의 영향 때문이다.

그럼 이번에는 제재를 통해 북한의 핵 보유 의지를 꺾을 수 있을까? 단언하건대 희망고문으로 끝날 것이다. 정부 정책과 사회 분위기가 한쪽으로 기운 상황에서 그에 반하는 단정적인 표현을 쓰는 것이 부담스러우나, 미국 주장이나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는 것이 국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에, 객관적 시야에서 분명한 주장을 펼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의 고강도 경제제재는 북한 경제와 북한 주민의 삶에 전보다 큰 고통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제재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제재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핵 포기는커녕 오히려 반발하며 더 강한 핵무기를 만들었다. 초강경 제재로 평가되고 있는 지난 9월의 유엔 안보리 제재안도 북한이 '화성-15형'을 발사하면서 벌써 그 효과에 의문부호가 달렸다. 따라서 제재가 효과가 있다고 말하려면 북한이 고통을 못 이겨 핵 포기를 위한 일련의 행동을 보여야 한다.

우리는 흔히 북한 김정은의 도발을 '무모한 미친 짓' 정도로 평가하지만, 댄 코츠 미 국가정보국장의 말대로 그는 미치지 않았으며 자신과 국가의 생존방식으로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그는 도발 이면에서 제재에 대비해 냉철하게 준비를 해온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 경제 상황이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무엇보다도 김정은 정권은 농업개혁을 통해 식량을 어느 정도 자급하는 단계로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정형화된 이미지 속에서 식량난은 북한의 상징적 특징이었다. 그래서 대북제재가 강화되면 북한이 먹는 문제에서 심각한 곤궁에 빠질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북한은 외부로부터 이렇다 할 규모의 곡물을 수입하지도 않았고 국제사회의 무상지원은 크게 줄었는데도 내부 식량 사정은 전보다 조금씩 나아져 왔다. 식량을 자급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최근 공산품의 국산화 비율이 급속히 증대했으며 내수시장도 활성화되었다. 특히 시장의 활성화를 통해 국내유통경제가 비약적으로 커졌다. 이러한 북한 경제의 변화는 제재로 인해 대외경제가 극단적으로 위축되어도 근근이라도 견딜 수 있는 기초체력이 강화되었음을 뜻한다.

제재의 한계는 북-중 교역에서도 찾을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북한 경제의 명줄을 잡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실상 중국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북-중 교역이 획기적으로 증가한 것은 2010년부터였다. 그해에 양국 교역은 전년 대비 2배 증가하였으며 2011년에도 60% 이상 증가하였다(총액 56.3억달러). 그러나 양국 교역은 이후 5년간 대북제재의 여파로 등락을 거듭하며 사실상 정체상태를 보였다.(2016년 총액 60.5억달러) 그런데 이 북-중 교역의 정체시기에 북한 경제는 질적으로 발전하고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북-중 교역을 줄이는 것으로 북한 경제의 명줄을 죄기 어렵다는 반증이다.

사실 중국의 대북제재는 이러한 교역 수치와 상관없이 세계적 수준에서 미-중 갈등 구도가 해소되지 않는 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미국이 한-미-일 군사동맹을 추구하고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며 공공연히 중국을 견제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왜 미국의 바람대로 북한 붕괴를 불사한 제재를 하려 하겠는가?

이처럼 제재의 한계가 명확한데도 우리 정부는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겠다고 한다. 북한이 제재에 굴복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 말은 공염불에 가깝다. 정부가 달리 상황 타개의 출구를 찾기 어려운 국면이라는 점을 이해하지만, 그렇더라도 이것은 답이 아니다. 이제 북한 도발 때마다 반복되는 '강력한 압박과 제재' 천명이 분노한 국민의 감정 배출구 이상의 역할을 한 적이 있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실효성 있는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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