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투. 원."
모두가 숨직이던 그 순간, 수십 번의 거친 폭발음이 연거푸 울렸다. 희뿌연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먼지는 곧 가라앉았다. 폭파 되었어야 할 경기장은 어찌된 일인지 멀쩡했다. 일요일 오전(현지시각), 미국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의 교외도시 폰티액에서 벌어진 일이다.
폭파해체 시도가 진행된 이곳은 1975년 문을 연 '폰티액 실버돔(Pontiac Silverdome)'이다. 사상 최초의 공기부양형 돔구장이자 한때 미국 미식축구(NFL) 경기장 중 최대규모(8만2000석)를 자랑했던 이곳은 NFL 역사상 최약체 팀 중 하나로 꼽히는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의 홈구장이었다.
2001년 12월16일.
이곳은 1994년 미국 월드컵 경기장으로도 사용됐다. 조별예선 4경기가 치러졌다. 월드컵 역사상 돔구장에서 경기가 펼쳐진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미국 프로농구(NBA)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도 한때 이 곳을 홈으로 썼으며, 1979년에는 NBA 올스타전도 열렸다.
그 뿐만이 아니다. 9만3000여명의 인파 속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에서 미사를 집전했고, 마이클 잭슨, 엘비스 프레슬리, 레드 재플린, 롤링 스톤스, 비지스, 마돈나, 메탈리카, 핑크 플로이드 등 당대의 내로라 하는 뮤지션들이 이곳에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 슬라이드쇼 하단에 기사 계속됩니다.
그러나 실버돔은 화려한 역사를 뒤로한 채 2002년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주인'이었던 디트로이트 라이언스가 디트로이트 시내에 최신식 돔구장 '포드 필드(Ford Field)'를 지어 옮겨가면서다. 폐장 이후 몇 차례 재개발이 시도됐으나 무산됐고, 2009년에는 '집 한 채' 값에 경매로 팔렸다. 개장과 폐장을 반복하다가 끝내 마땅한 쓸모를 찾지 못하고 해체될 운명을 맞이했다. 물론, 이날 폭파해체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조금 더 생명을 연장하긴 했지만 말이다.
2000년대 들어 이 경기장은 '미국 경제의 몰락'을 상징하는 아이콘이기도 했다. 미국 경제를 이끌어왔던 자동차 공업의 중심도시 디트로이트가 쓸쓸히 유령도시로 변해간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지않아도 황폐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실버돔은 2013년 더 을씨년스럽게 변했다. 거대한 경기장의 지붕을 이뤘던 유리섬유 조각이 폭풍으로 찢겨나간 것. 천조각은 아무렇게나 나뒹굴었고, 이곳은 곧 세기말 폐허 같은 풍경으로 유명세를 탔다. 이 곳을 답사한 이들이 남긴 영상도 여럿이다. 영화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에도 등장했다.
창단 이래 단 한 번도 슈퍼볼에 올라가보지 못한 디트로이트 라이언스를 응원하는 팬들에게, 이날의 폭파해체 실패는 일종의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Perfect metaphor for the Lions franchise history https://t.co/EHxDgRUcnw
— Jemele Hill (@jemelehill) December 3, 2017
라이언스 구단의 역사에 대한 완벽한 비유다.
They tried to implode the Pontiac Silverdome. It didn't work, like most game plans in there on Sundays. https://t.co/lqHurKlRhS
— Dan Wetzel (@DanWetzel) December 3, 2017
그들은 폰티액 실버돔을 폭파하려고 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NFL 경기가 열리던) 일요일 그곳에서의 게임 플랜이 그랬던 것처럼.
Watching the implosion of the #silverdome is like watching every lions game for the last 50 years. Expect excitement, get nothing.
— Erica Bergstrom (@theswedepastry) December 3, 2017
실버돔 폭파해체를 보는 건 지난 50년 간의 모든 디트로이트 라이언스 경기를 보는 것과 같다. 신나는 걸 기대했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Once again angry people leave the Silverdome after a disappointing ending pic.twitter.com/6zvEXU8lGz
— Drew & Mike Podcast (@DrewMikePodcast) December 3, 2017
다시 한번, 실망스러운 결과에 화가 난 사람들이 실버돔을 떠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폭파해체를 담당한 회사 측은 실패 원인을 조사한 뒤 추후에 다시 폭파를 시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