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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인터뷰 왜곡, 언제까지 묵인해야 하나?

몇 달 후 홍 위원이 직접 전화를 걸어 블로그 글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홍 위원은 이때 이 교수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거듭 사과했다고 논설에 썼으나 이 교수의 이야기는 다르다. 그는 블로그 글의 내용이 틀렸다고 인정하거나 사과한 적은 일절 없다고 한다. 그 사과는 자신의 글이 2만 회 이상 조회되는 와중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줬을 수도 있다는 데 대한 미안함에 관한 것임을 밝혔다

  • 홍형진
  • 입력 2017.11.30 06:41
  • 수정 2017.11.30 06:42

 홍수용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와 나눈 대화를 발판으로 '어느 진보의 사과'라는 제목의 논설을 냈다. 이 교수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16분에 걸쳐 다섯 차례나 사과했다며 '좌파 진보의 프레임'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한데 이 교수는 해당 논설이 실제 통화내용을 크게 왜곡했다고 주장한다. 논란의 발단은 홍 위원의 이전 글에 담긴 아래 문장이다.

"최순실 게이트를 지켜보면서 기업에 대한 반감이 커진 국민이 적지 않지만 법인세는 기업에 국한된 세금이 아니다. 세 부담의 4분의 1 정도는 가격 인상과 신규 고용 위축의 형태로 소비자와 근로자에게 넘어온다."

- [홍수용의 다른 경제]법인세의 진실, 노무현은 알았다. 동아일보

 이 교수는 블로그 글을 통해 '4분의 1'이라는 숫자를 문제시했다. 법인세 부담의 일부가 소비자와 근로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건 정설이지만 그게 정확히 어느 정도 수준에서 이뤄진다는 데 대한 합의는 없음을 지적했다. 이후에 내놓은 글에선 다양한 연구 결과가 존재하기에 단정적으로 서술하는 게 아니라 '~의 연구에 따르면' 등으로 쓰는 게 옳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는 학계의 관행이다. (내가 알기로는 언론에서도 이게 기본이다.)

 이 글은 2만 회 이상 조회되며 여기저기 공유됐다. 그러다 몇 달 후 홍 위원이 직접 전화를 걸어 블로그 글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홍 위원은 이때 이 교수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거듭 사과했다고 논설에 썼으나 이 교수의 이야기는 다르다. 그는 블로그 글의 내용이 틀렸다고 인정하거나 사과한 적은 일절 없다고 한다. 그 사과는 자신의 글이 2만 회 이상 조회되는 와중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줬을 수도 있다는 데 대한 미안함에 관한 것임을 밝혔다. 해당 대목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대화 끝자락에 가서 내가 상처를 준 것 같아 개인적으로 미안하니 댓글을 달아 그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겠다고 말하는 것으로 전화 통화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끊고 보니 홍 논설위원에 대한 개인적 미안함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조금 과격한 표현을 쓴 것이 더욱 큰 상처를 주었던 것 같아 심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길가에 차를 세우고 전화를 다시 했습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상처를 입힌 것 같아 정말로 미안하다고 몇 번씩 사과를 했습니다. 홍 논설위원의 글에서 여러 번 사과했다는 것은 내가 잘못된 글을 써서 미안하다는 사과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정말이지 그런 의도는 손톱만큼도 없었습니다. 그 전화 통화에서 그런 의미의 말을 단 한 마디도 한 적이 없구요. 그것은 의도하지 않게 어떤 개인에게 상처를 입힌 데 대한 인간적 사과였습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의 표현으로 그 글을 내리겠노라는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 이준구 교수 블로그

 결국 이 교수는 블로그 글을 내렸고 그를 확인한 홍 위원은 문제의 논설을 내놓았다. 이 교수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글을 지웠다며 이젠 프레임을 벗어나 진보, 보수의 편 가르기를 지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교수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명백한 왜곡이자 부당한 저격이다. 타인의 배려를 악용한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가 활용한 지면은 발행부수 91만 부에 달하는 메이저 언론의 논설이다. 파급력 측면에서 개인 블로그 글은 어찌 비길 수 없다.

 언론의 인터뷰 왜곡은 어제오늘 문제시된 사안이 아니다. 역시 기자인 내 지인은 데스크와 갈등을 빚은 적이 몇 차례 있다고 사석에서 내게 전했다. 원하는 논조에 끼워 맞추느라 실제 말한 맥락과 다르게 수정된 것은 물론이고 애초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실제인양 인터뷰를 추가한 적도 있단다.

 나도 일전에 경미한 왜곡을 경험한 바 있다. 어느 언론사의 요청으로 음악시장에 관한 전화 인터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당시 난 "음악 평론가도 음악 칼럼니스트도 아니고 그냥 음악 애호가"라고 확실히 밝혔다. 그러나 방송에 '소설가 겸 음악평론가'로 나가며 다소 난처해졌다. 실제로 난 음악 관련 매체에 글을 기고할 때도 해당 직함을 거부하고 소설가 또는 작가만을 고집하는 입장이다.

 또한 전화로 나눈 대화가 그대로 녹음돼 방송된 것도 조금은 놀랐다. 그러겠다고 사전에 고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녹음이야 응당 예상했지만 목소리가 그대로 나간다는 건 몰랐다. 내가 언론의 관행에 무지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미리 알려주고 인터뷰를 진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하다. 그게 서로에 대한 예의이지 않나.

 내가 겪은 건 사소한 수준이어서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정도가 과해 명예훼손 등에 이르는 경우는 일이 심각해진다. 개인이 언론사를 상대로 실력을 행사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주변인, 네티즌 등의 따가운 시선에도 혼자 끙끙 앓으며 그저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는 게 현실적인 선택지다. 그나마 블로그, SNS 등 양방향 소통 매체를 통해 어찌 항변이야 해볼 수 있겠으나 저명인사가 아닌 한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어찌 개선할 방도가 없을까? 이런 왜곡을 언제까지고 마냥 묵인할 수는 없지 않은가?

* 이 글은 홍형진 님의 페이스북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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