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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 찍힌 블랙박스 영상, SNS에 퍼뜨리는 보배드림

Front car video recorder
Front car video recorder ⓒToa55 via Getty Images

직장인 서아무개(33)씨는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한 동영상을 무심코 눌렀다 화들짝 놀랐다. 동영상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이었다. 영상 속에는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다 차량에 부딪혀 넘어지는 아이들의 얼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부모는 물론, 지인들도 충분히 아이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한 화질이었다.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도 놀랄 일이었는데 해당 계정은 동영상을 올리며 “아이들에게 (부모들은) 코너 주행방법을 가르쳐라. 블박(블랙박스) 차량은 새 차인데 파손되었다”고 써 차량 운전자에 기운 듯한 주장을 그대로 싣기까지 했다.

중고차 쇼핑몰 ‘보배드림’이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영상. 얼굴이 그대로 노출된 것을 모자이크 처리했다.

누가 이런 영상을 SNS에 올리나 하고 계정을 확인해 봤더니 한 중고차 쇼핑몰이었다. 계정 소개 글에는 “국내 1위 자동차 쇼핑몰 보배드림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누리집 주소가 적혀 있었다.

서씨는 “안 그래도 유튜브 등에서 개인이 무차별적으로 업로드한 블랙박스 영상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왜 중고차 쇼핑몰에서까지 이런 영상을 퍼 나르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서씨는 “이런 식으로 차량 블랙박스에 찍힌 내 얼굴이 나도 모르게 에스앤에스에 올라올 수 있겠다”며 불안해했다.

중고차 쇼핑몰 ‘보배드림’이 운영하는 유튜브 계정에 최근 올라온 영상들.

중고차 쇼핑몰이면서 국내 최대 자동차 관련 커뮤니티로 운영되고 있는 ‘보배드림’이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여러 개의 에스앤에스 공식 채널을 운영하면서 누리집에 가입한 회원들이 ‘교통사고/사건/블박’ 게시판에 올린 블랙박스 영상을 무분별하게 유통하고 있다.

보배드림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 게시판에는 하루 평균 200건 정도의 블랙박스 영상이 올라온다. 국내에서 가장 활발한 블랙박스 관련 커뮤니티 가운데 하나다.

여기서 보배드림 쪽이 선별한 영상이 에스앤에스 채널을 통해 다시 업로드되는데, 유튜브 기준으로 11월1일부터 28일까지 모두 90여개의 블랙박스 영상이 올라왔다. 하루 평균 3.4건꼴이다. 같은 영상이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동시에 업로드되므로 전체 업로드 횟수는 몇 배로 올라간다.

문제는 에스앤에스 채널에 올라온 영상 중 일부가 개인정보 침해 및 명예훼손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얼굴이나 음성, 차량번호 등 개인정보를 전혀 가리지 않은 ‘노 모자이크’ 영상, ‘단순 흥미 자극용’ 영상과 여성 운전자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이른바 ‘김여사’ 영상 등이다.

‘노 모자이크’로 개인정보 그대로 노출

가장 우려되는 사례는 개인정보가 그대로 노출된 ‘노 모자이크’ 영상이다. 보배드림 에스앤에스 공식 채널에는 얼굴뿐 아니라 차량번호가 가려지지 않은 영상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이 영상들은 잠금장치가 풀려 컨테이너 문이 열린 화물차량, 길거리에 쓰레기를 던진 차량 등을 ‘제보’한다면서 차량번호를 고스란히 노출했다. 번호를 가린다면서 글자 하나만 가린 경우도 있었다.

중고차 쇼핑몰 ‘보배드림’이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영상. 차량번호가 그대로 노출된 것을 모자이크 처리했다.

차량번호는 얼굴처럼 바로 개인을 식별할 수는 없지만 다른 정보와 결합했을 때 개인을 특정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로 본다. 최근 법원 판결을 보면, 휴대전화의 유심(USIM) 정보, 전화번호 뒷자리 4자리도 마찬가지 이유로 개인정보로 인정되고 있다.

중고차 쇼핑몰 ‘보배드림’이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사진. 인물 부분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얼굴이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행인의 뒷모습이 찍힌 블랙박스 영상 갈무리 사진도 올라왔다. 마트 카트를 외부로 끌고 나온 여성의 뒷모습이 잡힌 사진이었다. 보배드림은 인스타그램에 이 사진을 올리며 “(마트) 직원들이 회수하러 다니느라 고생하고 분실도 된다”며 “카드 바퀴가 균일하지 못한 외부 길에 손상을 입어 무빙워크에서 고정되지 않아 카트에 다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고 썼다. 카트에 대한 마트 규정을 위반한 안전사고 우려 때문에 올린 글이라고 해도, 댓글에서는 취지와 달리 사진에 나온 여성의 외모를 두고 모욕적인 언사가 이어졌다.

보배드림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에스앤에스 채널 운영을 하는 이유에 대해 “운전에 대해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 이런 사진은 운전에 대한 공부와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근거 없는 ‘여성 혐오’ 영상도 유통

여성 운전자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이른바 ‘김여사’가 등장하는 블랙박스 영상도 단골 소재다. 보배드림은 한 회원이 게시판에 ‘김여사 왜 이러죠??’라는 제목으로 올린 영상을 보배드림 에스엔에스 운영자가 ‘아주머니 파란불에 왜 안가세요? 후방추돌 유발?’이라는 제목으로 바꿔 유튜브 등에 올렸다. ‘운전자가 남편분께 엄청 혼났다’ 등의 불필요한 글을 덧붙인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김여사’라고 지목된 운전자가 여성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중고차 쇼핑몰 ‘보배드림’이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영상.

이 때문에 보배드림 에스앤에스 채널에도 “왜 저런 영상만 보이면 김여사인가? 블박 차주는 저 차주가 여성인지 확인했나”, “운전자가 김아재가 아니라 김여사인 기준은? 보배드림은 여성 고객 없나” 등의 비판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일차적으로는 회원들이 단정적으로 블랙박스 영상을 올린 책임이 있지만 이를 아무런 확인 없이 재생산하는 보배드림 역시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국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수라 사무국장은 “한국사회 전반에 너무 많은 혐오 표현이 아무렇지 않게 유통되는 상황에서 보배드림 등 운영자들은 자신들이 혐오·비하 표현을 확산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에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상업적 목적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보배드림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에스앤에스를 통한 웹사이트 유입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보배드림이 중고차 쇼핑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블랙박스 영상 유통에 ‘공익적 목적’을 내세우기도 힘들다는 지적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보배드림 쪽은 블랙박스 영상을 통한 ‘학습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보배드림 관계자는 “에스앤에스 채널은 회원이 아니거나 누리집에 직접 안 들어오는 대중들도 블랙박스 영상을 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운영한다”며 “이 영상만 봐도 운전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된다는 목소리가 컸다”고 주장했다.

보배드림이 회원들에게 공지한 내용.

그러면서도 보배드림 쪽은 “공지사항 등을 통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게시물은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알리고 있다. 영상 속 당사자가 문제를 제기할 경우 바로 삭제한다”고 강조했다. 블랙박스 영상의 특성상 촬영자와 영상 속 당사자가 일치하지 않고 당사자 동의 없이 영상이 유통되는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법률 전문가 “블랙박스 영상 유통 명예훼손 책임”

법률 전문가는 보배드림의 무분별한 블랙박스 영상 유통이 명예훼손 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법조계의 한 박사급 연구관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개인정보 유포로 인한 민형사상 명예훼손 소송에서 최초로 블랙박스 영상을 올린 회원뿐 아니라 이를 에스앤에스 채널에 올리고 유통한 보배드림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직접 영상을 선별해 올리는 등 에스앤에스 이용자로서 적극적인 행위를 했기 때문에 보배드림이 명예훼손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근본적으로는 차량용 블랙박스처럼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법의 사각지대를 서둘러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크다.

차량용 블랙박스는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늘어 2014년 12월 기준 643만대로 집계(행정안전부 발표)됐다. 같은 해 자동차 등록 대수가 약 2011만대인 것을 고려하면 블랙박스 설치율은 약 30%로 볼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은 연간 블랙박스 판매량을 200~250만대 정도로 보고 있다.

그러나 현행 개인정보보호법 제25조에서 설치와 운영을 제한하는 영상정보처리기기에는 폐회로텔레비전(CCTV) 같은 고정형 기기만 포함되어 있다. 차량용 블랙박스 등 이동형 영상정보처리기기는 현재 규제의 틀 안에 제제 규정이 아예 없는 셈이다.

규제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며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개인영상정보보호법’ 제정안을 마련했지만 진보네트워크센터, 오픈넷,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현행 개인정보보호법보다도 보호 수준이 후퇴했다”며 제정안 폐기와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의견서에서 “(행정안전부 제정안은) 이동형 영상 촬영기기를 통한 개인 영상정보 촬영에 목적 제한을 두지 않고 사전 동의 의무 예외 규정도 폭넓게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 이지은 씨는 “국민은 차량용 블랙박스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찍히는 현실에 대한 우려가 큰데 제정안은 이 우려를 해소하기보다는 경찰이 상주하면서 CCTV를 살펴보고 있어 위헌·위법 논란이 일고 있는 지자체별 CCTV 통합관제시스템의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만 치중하고 있다.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기회에 블랙박스 영상에 대한 규범과 보호 조처를 세우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장여경 씨는 “블랙박스 영상에 신중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나중에 드론은 어떻게 할 건가. 사실 블랙박스보다 드론의 부작용이 더 심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무규범 상태를 지속할지 말지 결정을 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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