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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읽은 그 모든 '아이폰X 원가' 기사는 전부 엉터리다

  • 허완
  • 입력 2017.11.28 13:02
  • 수정 2017.11.28 20:12
TORONTO, ON. November 3, 2017 - Creative Kelly McLaughlin shows off the iPhone X at the Apple store in the  Toronto Eaton Centre.        (Anne-Marie Jackson/Toronto Star via Getty Images)
TORONTO, ON. November 3, 2017 - Creative Kelly McLaughlin shows off the iPhone X at the Apple store in the Toronto Eaton Centre. (Anne-Marie Jackson/Toronto Star via Getty Images) ⓒAnne-Marie Jackson via Getty Images

잊을만 하면 한 번씩 등장하는 '원가 논란'이 이번에는 애플 아이폰X으로 옮겨 붙은 모양이다. '원가가 얼만데 판매가격이 얼마이므로 폭리'라는 식의 논리다. 그동안 우리가 목격한 대부분의 원가 논란에서 본 것처럼 제대로 된 원가 계산은 없는, "무지에 의한 편견"을 조장하는 이야기들이다.

먼저 사례를 살펴보자. 다음은 소위 '아이폰X 원가'를 다룬 한국 언론의 수많은 기사들 중 일부다.

폭리 논란은 최근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 IHS마킷이 애플 아이폰X의 부품 원가(原價)를 산출해 64기가바이트(GB) 모델 제조 원가 추정치를 370.25달러(약 40만2000원)라고 발표하면서 불을 지폈다. 이 제품의 글로벌 출고 가격(999달러)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제품 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37%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11월27일)

서울의 한 대학가에서 시민에게 물어봤습니다.

[이민준/아이폰Ⅹ 구매자 : (제품 원가가 얼마 정도일까요?) 한 50만원 정도?]

[신진아/아이폰 사용자 : 70? 80? 90(만원)까지는 괜찮은 것 같아요.]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인 IHS마킷이 아이폰10의 부품 원가가 약 40만 원이라고 발표하며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JTBC뉴스 11월27일)

'부품단가'가 '원가'로 둔갑하다

많은 한국 언론들이 인용한 IHS마킷의 보고서 원문을 살펴보자. 어디에도 '(제조·제품) 원가'라는 개념은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소요부품명세(BOM ; bill of materials)'라는 개념과 그에 따른 가격이 등장할 뿐이다. 제품을 구성하는 모든 부품을 목록으로 정리한 뒤, 각 부품의 가격을 추적한 것.

이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폰X의 BOM은 370.25달러(약 40만2400원)다. 중요한 점은, 이게 아이폰X의 원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이폰X에 들어간 부품(재료)의 가격을 합한 것일 뿐이다. 아주 약간의 경제 상식으로도 우리는 어떤 제품의 원가가 재료비 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재료비·노무비·경비로 구성되며, 이를 원가의 3요소라고 한다. 그것은 다시 각 제품에 직접 부과할 수 있는 직접비와 여러 제품의 생산에 대하여 공통으로 쓰이는 간접비로 세분된다. 직접비에 제조에 소요된 간접비를 포함한 것을 제조원가라고 하며, 일반적인 상품은 여기에 관리비용과 판매비용을 더하여 총원가라고 한다. (두산백과, '원가')

따라서 아이폰X 원가가 40만원이라는 기사들은 명백히 사실과 다르다. 굳이 쓰려면 '아이폰X 부품단가'라고 해야 맞다. 아이폰X의 진정한 원가는 여기에 수많은 가격들을 더해야 산출될 수 있다. 이를테면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연구·개발비, 판매·관리비(홍보, 재고관리, 유통, 임금 등), 그밖의 각종 영업외비용과 법인세 같은 것들이 더해져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대부분은 내부 기밀사항에 해당하는 항목들이다.)

해외 언론들은 같은 보고서를 어떻게 보도했을까? 블룸버그 기사를 살펴보자.

IHS마킷에 따르면, 애플의 새 아이폰X 부품들은 값비싼 새 스크린과 안면인식 스캐너 때문에 아이폰8의 부품들보다 115달러 더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IHS의 보고서에 의하면 아이폰X 기본 모델(64GB)의 BOM은 370.25달러로 이는 연구 개발, 제조, 소프트웨어 등의 비용이 빠진 것이다. (블룸버그 11월8일)

차이가 보이는가?

'원가 논란'은 왜 늘 이런 식일까

한국에서는 어떤 제품의 원가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커피, 치킨, 삼계탕 같은 소비재는 물론 통신비, 전기 발전, 아파트 분양 등에도 원가 논란이 따라 붙는다.

원가를 언급하며 논란을 만들어내는 쪽은 해당 제품의 가격이 비싸다는 점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제품의 원가를 구성하는 일부분을 떼어내 그게 전부인 것처럼 부풀린 뒤, '(다른 것까지 세세하게 따질 수는 없지만) 하여튼 마진이 너무 높아 논란이다'라는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식이다. 대부분의 원가 논란이 비합리적으로 흘러가는 이유다.

소위 아이폰X '원가 논란'을 다룬 아래 기사들이 좋은 사례다.

아이폰X의 높은 마진도 논란이다. 냉장고 한 대 값의 아이폰X 부품원가가 출고가의 3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미국에서 999달러에 판매되는 아이폰X 부품 원가를 계산했을 때,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은 357.25달러(약 39만 7500원)로 나타났다. (CBS노컷뉴스 11월13일)

업계에서는 아이폰X 부품원가가 41만원쯤으로 전망하는데, 한국에서 아이폰X(64GB 기준 142만원) 한 대 팔 때 70만원 이상의 마진을 챙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애플코리아가 미국보다 더 많은 마진을 챙김으로써 한국 고객을 '호갱'으로 취급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IT조선 11월9일)

여기에서도 결국 핵심은 '아이폰X이 너무 비싸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 부품원가는 쉽고 간명한, 말하자면 즉각적 분노를 자아내기에 만만한 소재로 동원될 뿐이다.

애플은 어떻게 원가를 절감하는가

주제를 살짝 바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원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모든 기업들은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만큼 이익을 높이기 위해서다. 당연한 이치다.

이 당연한 이치를 위해 기업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경쟁입찰·대량구매 등으로 원자재 조달 비용을 낮추고 생산 공정을 표준화·대형화·자동화 하며 플랫폼 통합 및 혁신을 통해 연구·개발비를 절감하는가하면 유통·물류 최적화를 모색한다. 물론 단가 후려치기, 협력업체 쥐어짜기, 임금 억제 같은 탈법적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애플의 경우를 보자. 애플은 제품의 설계와 디자인을 뺀 나머지 거의 모든 공정을 협력업체들에게 맡긴다. 부품 공급과 조립·생산을 담당하는 협력업체는 전 세계에 700개가 넘는다. (이 중 200개 업체가 부품, 제조, 조립 등 전체 조달의 97%를 담당한다. 한국에 소재한 기업도 29개다.)

애플은 똑같은 부품을 여러 업체로부터 납품 받아 단가인하 경쟁을 유도한다.* 대체 불가능한 일부 핵심 부품을 뺀 나머지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납품단가 후려치기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복수의 공급업체를 두면 특정 회사에 크게 의존하지 않으면서 부품 수급을 안정화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애플처럼 막대한 양의 부품을 주문하는 고객사는 그리 많지 않다. 협력업체들 입장에서는 그만큼 애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애플과 부품 공급 계약이 해지된 후 파산하는 경우도 있다.

애플에게서 납품계약을 따내는 것 자체가 자사 제품(부품)의 성능을 보증하는 일종의 '인증마크'로 기능하는 면도 있다. 자연스레 투자자들의 주목도 뒤따른다. 모두 애플이 '갑오브갑'으로 행세할 수 있는 배경이다.

애플은 중국 등에 위치한 협력업체에 생산을 맡겨 임금을 절감하고** 생산 유연성과 속도를 확보하기도 한다. 2012년 보도된 장문의 뉴욕타임스 기사에는 애플이 자체 생산라인 따위 없어도 얼마나 효율적으로 부품을 조달해 얼마나 빠르고 저렴하게 제품을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지 잘 드러난다.

** 전직 애플 고위 관계자가 뉴욕타임스에 밝힌 내용에 따르면, 임금 절감 목적은 그리 크지 않다. 아시아에서는 "생산물량을 빠르게 늘이고 줄이는" 게 가능하고, "미국을 뛰어 넘는 부품 공급망"이 존재한다는 것.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애플 특유의 가격 정책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애플 제품은 공급가격과 제품판매가격 차이가 매우 작다고 알려져 있다. 소매업체들이 재량껏 가격 할인에 나설 여지가 적다는 뜻이다. 덕분에 애플은 과도한 할인 경쟁이나 대형 소매업체들의 '단가 후려치기'를 피해 판매가격을 늘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건 '고가 정책'과는 또다른 이야기다.

누군가는 '경영혁신'이라며 이런 애플에 찬사를 보낼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애플이 너무 많은 몫을 챙겨간다'고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쟁할 만한 주제일지 모른다.

이에 비하면 '아이폰X 부품원가, 알고보니 고작 40만원' 따위의 논란은 얼마나 단편적이고 소모적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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