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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이 커플은 더 나은 삶을 찾아 이란을 떠났다. 지금 미국에서 행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 김도훈
  • 입력 2017.11.27 12:01
  • 수정 2017.11.27 12:02

라민 하그주와 니마 니아가 아직 이란에 살고 있었다면, 최상의 경우 그들은 결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부부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마 각자 선을 통해 여성과 결혼했을 것이다. 어쩌면 동성에게 끌리지만 그 사실을 숨기려 하는 여성을 찾았을 수도 있다. 하그주의 친구 중엔 그랬던 사람이 있다. 더 나쁜 경우, 그들은 게이라는 이유로 죽거나 투옥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그주와 니아는 미국에 와서 8월에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었다.

이들은 이란에서 터키로 간 다음, 몇 년 전에 난민 신분으로 미국에 왔다. 미국의 상황이 여러 모로 더 낫고, 그들은 자신들의 경우가 다른 LGBTQ 이란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살아있고, 결혼했고, 게이 남성임을 공개하고 살고 있다.

그러나 하그주와 니아가 온 미국의 대통령은 이란 등 무슬림 국가들의 난민과 이민자들이 미국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하며 입국을 막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공화당 정권하의 미국에서 LGBTQ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이미 일어나고 있다) 우려하고 있다.

그들은 이란이 달라져서 자신 같은 사람들이 게이 커플로 받아들여질 수 있길 바란다. 미국이 달라져서 이란에서 온 게이 난민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길 바란다.

“정말 많은 국경을 넘었다. 오늘밤이 지나면 내 다음 나라는 어디가 될까?” 하그주가 2016년 대선일에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다.

하민 하그주의 이야기

하그주(31)는 테헤란에서 비교적 응원해주는 편인 가족들과 자랐지만 그래도 힘들었다. 그는 19세 때 간호사에게 커밍아웃했고, 간호사는 가족들에게 말하라고 권했다. 가족들은 그를 받아들였다. 형은 모욕적인 말을 했지만, 어머니가 유산을 빼앗겠다고 위협해서 겨우 멈추었다.

모든 이란 남성들은 군 복무를 해야하지만, 하그주는 성적 지향 때문에 면제 받았다. 이란 군은 동성애를 정신적 문제로 본다. 이란은 LGBTQ에겐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그는 정부에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말하는 것이 무척 두려웠다. 동성애는 불법이고, 두 남성이 섹스를 할 경우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키스, 동성애 고백 등 만으로도 처벌 받을 수 있다. LGBTQ를 위한 비밀 네트워크(상당수가 온라인이다)가 존재하긴 하지만, 회원들은 언제나 노출될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

하그주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군 복무를 피하고 싶었다. 정체를 숨긴 게이 남성에게조차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위험도 있었다. 2009년 6월 이란 녹색운동 중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의 사임을 요구하던 시위에서 군복을 입고 무장한 남성이 나이 든 여성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본 하그주는 조심하라고 외쳤다. 그 남성은 하그주를 쏘았다. 총알은 그의 복부 오른쪽을 강타했다. 그는 장의 30cm 가까이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고 일주일 가까이 입원해야 했다.

하그주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총을 맞은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다큐멘터리의 중심이 될 예정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는 관심을 끌 것이 두려워 터키로 도망치기로 했다. 그가 이란을 떠난 뒤 일주일 후에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다. 그는 집에 돌아가고 싶어졌지만, 그의 어머니는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고 걱정하여 “돌아오지 마라.”고 했다.

니마 니아의 이야기

니아(29)는 2006년부터 모르는 번호가 보내는 문자를 받기 시작했다. 첫 문자는 ‘해피 발렌타인 데이’였다. 이란의 이스파한에서 온 문자였다. 그가 전학가기로 한 곳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LGBTQ 채팅 방 사람이 보낸 문자라고 생각하고 처음에는 답을 보냈지만 결국 그만두었다. 이스파한에 가자 다른 문자가 왔다. “우리 도시에 온 걸 환영해.” 그는 답하지 않았다.

곧 집으로 전화하겠다고 위협하는 문자가 왔다. 그리고 집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건 남성은 니아가 게이라는 걸 알고 있다, 자기 집에 와서 다른 게이들의 이름을 대면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니아는 계속해서 나는 게이가 아니라고 부인했고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대지 않았지만, 그 남성은 계속 전화를 걸었다.

대학을 다닐 때 경비원은 한 남성이 찾아와 니아의 일정을 물었다고 니아에게 말했다. 니아는 거리에서 자신을 미행하는 사람을 본 것 같았다.

하루는 그 남성이 전화를 걸어 니아 집 근처라고 말했다. 전화로, 그리고 집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니아는 겁에 질렸다.

몇 달 동안 시달리던 니아는 은행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남성을 만나 그간의 일을 이야기했다. 경비원이 니아를 위협하던 남성에게 연락하자 마침내 전화 연락은 끊겼다.

그러나 니아와 그 경비원이 사귀게 되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경비원이 적대적으로 변해, 니아와 부모를 위협했다. 니아는 아바데에서 군 복무를 하게 되어 이 상황에서 탈출했다(그는 당국에 성적 지향을 말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니아의 아버지는 참전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의 군 복무 기간은 불과 두 달이었다. 니아는 이스파한으로 돌아와 새로운 아파트를 구하고 전화번호도 바꾸었다. 대학으로 돌아가 예술을 공부했다. 하지만 안전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잘못 걸려온 전화가 올 때마다 그는 불편해졌고, 누군가 아파트 창문으로 무언가를 던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계속 들었다.

졸업을 불과 한 학기 남겨두었을 때 니아는 결국 이란에 있을 수 없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자신의 삶과 예술을 남겨두고 터키로 피신했다.

난민의 삶

터키에 먼저 도착한 것은 하그주였다. 그는 2010년에 터키에 갔다. 이란에서 두 사람은 친구였지만, 니아도 고국을 떠난 다음에야 사귀기 시작했다.

여덟 달 동안 하그주는 성적 지향, 정치적 믿음, 종교에 의한 박해를 이유로 미국에 난민으로 갈 수 있을 지 알아보았다. 그는 이란 정부의 표적이 되는 수피교도이다. 한편 니아는 게이 남성으로서 경험한 박해를 이유로 미국에 난민 지위를 신청했다.

고국을 떠나 터키에 눌러앉게 된 사람들 중에는 니아와 하그주가 게이여서 형편이 더 좋았다, 정치적 난민보다 더 빨리 난민 인정 절차를 마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이란에서 게이로 살아왔다는 것이 ‘감옥’이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고 니아는 말한다.

터키에서의 생활도 힘들었다. 돈이 거의 없었고, 송금을 기다리며 며칠씩 굶을 때도 있었다. 건물주가 집을 팔아서, 니아는 임대했던 집에서 한겨울에 갑자기 쫓겨난 적도 있다.

그래도 그들에겐 서로가 있었다. 하그주가 니아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니아는 자신도 사랑한다고 말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하그주의 난민 지위 신청이 받아들여지고,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던 2011년에야 니아는 하그주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니아의 난민 신청 통과는 그로부터 1년 뒤에야 이루어졌다. 그는 2012년 11월에 필라델피아에서 하그주와 재회했다.

미국으로 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고국의 시민권을 빼앗겼다. 그들은 가족들이 병에 걸리고 죽어도 이란에 돌아가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나는 자유를 찾아서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모두 버리고 왔다. 이건 공정하지 못하다.” 니아의 말이다.

미국에서의 삶

미국 적응도 힘들었다. 필라델피아에서 니아는 월마트 창고 등 몇 군데서 일을 했지만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예술 학교에서 배운 기술들을 사용할 수 없었다. 미국에 처음 온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들 중에서 골라야했다. 그는 미국의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2014년에 이들은 풀타임 일자리를 찾아 워싱턴 D.C.로 이사했다. 니아는 드디어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비영리단체의 아트워크 디자인과 팟캐스트 제작을 맡은 것이다. 하지만 이 단체의 처우가 좋지 못해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는 고양이가 화자인 만화책을 작업하고 있다. 하그주는 다른 비영리단체의 인권 연구자로 들어갔다.

이들은 미국에서 친구들을 많이 만들었다. 그들은 인기가 많은 페이스북 페이지인 ‘뉴욕 사람들(Humans of New York )’ 페이지에 등장했다. 눈이 덮인 오솔길에 서 있는 그들의 사진 아래에는 짧은 설명이 달렸다. “우리는 이란에서 온 게이 난민들입니다.” 24만 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렀다.

그들로선 2016년 대선을 지켜보기가 힘들었다. 그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이후 반 LGBTQ 정서가 더 노골적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는 트랜스젠더의 입대를 막으려 시도했으며, 법무부는 1964년 공민권법이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그주는 미국에서 트럼프 지지도가 높은 지역에 가면 위험에 처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아주 생생히’ 느껴진다고 한다. 그는 그런 곳들은 되도록 피한다.

이란을 비롯한 무슬림이 다수인 국가 국민들을 미국에 오지 못하게 하려는 트럼프의 시도 역시 그들에겐 큰 타격이 되었다. 자기 정부의 행동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그주는 생각한다. 특히 난민 입국 금지가 그에겐 잔인하게 느껴진다. 미국인들은 난민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그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고려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나는 도널드 트럼프가 두렵지는 않지만, 그가 대표하는 이념은 두렵다. 그 이념은 친절하지도, 친인권적이지도, 다양성 친화적이지도 않다.” 니아의 말이다.

하그주는 “인권을 위해 싸우는 게 지겹다”고 하며, 이란처럼 미국에서도 게이들이 자유를 잃는 시기가 온다면 떠나겠다고 말한다.

“내가 받아들여지고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갈 것이다. 지구에 그런 곳이 없을 수도 있으니, 우리는 싸워야 한다.”

“다른 행성으로 옮길 게 아니라면 말이다.” 니아의 말이다.

축하의 시간

하지만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1월에 니아는 보스턴에서 하그주에게 청혼했다. 깜짝 이벤트였다. 하그주는 자기 생일 때문에 전국의 친구들이 모이는 것이라 생각했다. 니아는 레너드 코헨의 ‘댄스 미 투 디 엔드 옵 러브’를 배경음악으로 깐, 두 사람의 사진을 모은 영상을 틀었다. 그리고 사진과 ‘결혼해줘’라는 문구로 장식한 케이크를 하그주에게 주었다.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몇 가지 면에서는 서로가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니아는 자신과 똑같은 사람과 있으면 지겨울 것이라 말한다. 그는 자기 남편이 모두에게 친절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좋다. “나는 안타깝게도 그 모든 것과 사랑에 빠졌다.” 니아의 농담이다. 하그주는 니아가 정직하고 예술과 창조성에 헌신하는 것이 좋다.

그들은 메릴랜드 주 말보로의 에어리 산 맨션에서 8월 26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워싱턴에서 가까운 곳이다. 참석한 가족은 미국에 사는 니아의 자매 한 명 뿐이었다. 하그주의 가족들은 전반적으로 하그주의 섹슈얼리티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만, 친지들은 대부분 이 결혼을 찬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란에 사는 가족이 참석하고 싶었다 해도 비자 문제 때문에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트럼프가 이란인들의 입국을 막는 행정 명령을 두 번 내리기 전부터도 이란인들이 미국 비자를 받기란 쉽지 않았다(두 명령 모두 사법부가 막았다).

그러나 하그주와 니아는 축하를 올렸다. 그들은 노르웨이에 살고 있는 이란의 정치 난민 세예드 메디 무사비의 노래에 맞춰 첫 춤을 추었다. 그가 그들을 위해 특별히 쓴 노래였다.

“더 이상 울고 싶어하지 않는 당신을 위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봐요. 당신이 꿈에서 본 사람, 당신의 고통의 깊이를 이해하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과는 다른 사람, 삶이 힘들다는 걸 아는 사람, 자신의 문제도 있지만, 당신 옆에 앉아 있으면 행복해 하는 사람!” 페르시아어로 된 가사 내용은 이렇다.

그들은 공포 속에 살고 있는 전세계 게이들에게 커밍아웃하고 살아가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려 했다. 비록 그러기 위해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떠나야 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나는 돈, 차, 집, 친구들을 버려두고 왔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하그주의 말이다.

“이제 사랑으로 멋진 새 삶을 만들고 싶다. 가끔 나는 말한다. 니아는 내 돈, 내 부모, 내 형제, 내 옛 친구, 내 가족이라고. 그는 나의 전부다.”

허핑턴포스트US의 This Gay Couple Left Iran For A Better Life. Now They Wonder If It Can Last In America.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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