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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의 미술감상이 궁금하시다면!

시각장애인에게는 보이는 것을 보이는만큼만 알려주면 되고 청각장애인에게는 들리는 것을 들리는대로만 알려주면 된다. 그들이 어떻게 느낄 것인지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더 자세히 더 아름답게 꾸미고 덧붙이는 것은 당신 스스로에게도 힘든일이겠지만 상대방을 더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 안승준
  • 입력 2017.11.27 07:28
  • 수정 2017.11.27 08:59

"시각장애인들은 예술작품을 감상하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연구 깨나 하신 어떤 분께서 이번주 내게 건넨 인터뷰의 첫 질문이었다.

"그럼 정안인(눈이 보이는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받으시나요?"

곧바로 이어진 나의 반사적이고 도발적인 질문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장애인을 같은 특징 같은 욕구 같은 습성을 가진 뭔가 자기네들과는 다른 종족의 무리라고 본능적인 착각을 하는듯 하다.

연애 못하는 녀석들이 "남자는 말이야..." 혹은 "여성들에게는 말이야..." 하며 이분법적인 엉터리 분류를 그럴듯한 경험담에 비추어 확신하는것처럼 말이다.

시각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라고는 눈이 안 보인다는 것 그것 단 하나 밖에는 없다.

혹시나 당신이 본 시각장애인들에게서 다른 공통의 특성들을 발견했다면 그것은 매우 우연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자라온 환경이나 지역 따위에 기인한 다른 요인으로 인한 것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보통의 사람들의 말투나 식성이 그 가족이나 친한친구들을 닮을 확률과 비슷한만큼 말이다.

별것 아닌 새삼스런 사실에 처음부터 충격을 받으신 그 분의 이어지는 질문은 회화같은 2차원 작품은 어떻게 하면 시각을 잃은 사람들에게 보다 정확히 설명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색은 어떻게? 선은 어떻게? 구도는 어떻게로 이어지는 질문들을 받으면서 나는 점점 더 삐딱해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예술 특히 미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이 피카소의 작품을 보면서 색채가 어떻고 선의 경계가 어떻고 하지 않는것 정도는 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볼때 가장 중요한 것이 그녀의 생김이었다면 사람들은 굳이 큰 돈 들여가며 먼 나라까지 날아가는 수고로움을 택하지 않았을거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림이 가지고 있는 형태의 묘사는 사실을 공감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유로 충분하다.

내게 멋진 그림의 감상을 함께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기계적으로 완벽한 묘사 보다는 감상에 푹 빠진 누군가의 탄성과 목소리 떨리는 두서 없는 설명일 가능성이 높다.

나의 기억 속 가장 깊은 감명으로 남아있는 회화감상은 작품을 그려낸 작가와 함께한 어느날의 미술관 경험이었다.

간단한 그림의 묘사가 없지는 않았지만 작가분께서 할애한 대부분의 시간은 작품을 구상하고 만들어간 시간들에 대한 스스로의 감정들과 이야기들이었다.

밝아지기도 하고 어두워지기도 했다가 우울해지기도 하고 즐거워지기도 하는 감정의 변화를 느꼈던 그 시간들은 내게 미술작품이 인간에게 필요한 근본적 의미를 느끼게 해 준 시간이었다.

작가는 본인이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부분에 대해 최대한의 방법으로 내게 전달했고 그것은 또렷하거나 세세하지 않았어도 내겐 최고의 묘사가 되었다.

그 날의 내 감상은 작가의 의도와 달랐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그것들과는 더더욱이 많이 달랐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보통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확신한다.

사람들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안 보이는 사람 앞에만 서면 보이는 사실부터 감상의 끝자락까지 도와주고 이끌어 주고 마무리 해주려는 걱정까지 한다.

보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스스로가 보고 있는 사실과 느끼고 있는 느낌에 대한 그대로의 전달로 충분하다.

당신이 대략적으로 그림을 보고 있다면 그 이상의 자세한 묘사는 시각장애인들에게도 그다지 필요 없을 가능성이 높다.

당신이 그냥 시원하다고 느꼈다면 그냥 그렇게만 전달하면 나도 그것을 공감할 수 있다.

그 이후의 깊은 감상은 그냥 각자의 몫인 것이다.

클래식 음악의 감상을 자세한 악보와 악상기호로 청각장애인에게 전달하지 않는것처럼 말이다.

누구든지 상대방의 입장을 완벽하게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상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사람의 입장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 필요한 것이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 사람이 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하고 있는 만큼만 내가 하는 모양대로 도와주면 된다.

시각장애인에게는 보이는 것을 보이는만큼만 알려주면 되고 청각장애인에게는 들리는 것을 들리는대로만 알려주면 된다.

그들이 어떻게 느낄 것인지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더 자세히 더 아름답게 꾸미고 덧붙이는 것은 당신 스스로에게도 힘든일이겠지만 상대방을 더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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