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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정규직화 토론회'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가 서로에게 고함을 쳤다

  • 허완
  • 입력 2017.11.25 09:56

2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공사 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방안 공청회’에서 발표자와 토론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지금 (토론) 분위기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어느 한 분이 발언할 때마다 강당이 반쪽으로 나뉘어서…” “(웅성웅성)무슨 소리야? “좀 들으세요!”…“뭐하시는 거예요, 사과하세요!!”

23일 오후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방안 공청회’가 열린 인천공항공사 대강당에선 격앙된 고성과 막말, 야유가 터져나왔다. 토론자로 나선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가 질의 응답 중 방청석 일부의 노골적인 분열과 편가르기 행태를 지적하자 정규직 쪽에서 강하게 항의하고 나선 것이다. 비정규직 쪽에서도 정규직 방청석을 향해 “왜 이리 매너가 없느냐”는 맞고함이 나왔다.

정부가 추진중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화’ 1호 사업장인 인천공항의 이날 첫 공청회는 정규직 전환 방안을 놓고 한국능률협회컨설팅(컨설팅)과 한국노동사회연구소(한노사연)가 각각 수행 중인 연구용역의 중간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500석 규모의 강당에 발디딜 틈이 없고 중계 모니터가 설치된 바깥 복도까지 사람들로 가득 찰만큼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에서 직접 고용의 규모와 범위, 전환 방식을 놓고 양쪽이 워낙 큰 차이를 보인데다, 기존 정규직과 비정규직도 시각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서 갈등의 골만 더 깊어지고 말았다.

2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공사 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방안 공청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토론을 듣고 있다. 전국공공운수노조 제공

컨설팅 쪽은 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대상자를 9838명으로 보고 직접고용 규모를 854명(9%)으로 제시했다. 나머지는 독립법인 자회사 고용을 권했다. 반면. 한노사연은 전환 대상자를 9492명으로 보고 모두 4개안을 설계했는데, 그 중 ‘직접고용 4504명,자회사 고용 3589명(보안방재)’을 가장 바람직한 방안으로 제시했다. 이처럼 현격한 차이는 정부의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의 핵심인 '생명·안전 업무’의 범위를 컨설팅 쪽이 매우 협소하게 해석한 반면, 한노사연은 훨씬 폭넓게 봤기 때문이다.

정규직 전환 방식에서도 컨설팅 쪽은 ‘직무별 공개채용(서류평가 면제, 가점 제공)’의 제한경쟁을, 한노사연은 원칙적으로 ‘전원 고용승계(부적격자만 탈락)’를 제안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시각 차이는 각각 준비한 손팻말의 구호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정규직-비정규직 손잡고 같이 가요”(비정규직),라는 호소는 “결과의 평등 노, 기회의 평등 예스”, “무임승차 웬말이냐 공정사회 공개채용”(정규직)이라는 주장 앞에서 무력하기만 했다.

23일 오후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방안 공청회’가 열린 인천국제공항공사 서관 대강당의 출입문 옆벽에 인천공항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직접고용에 반대하는 표어를 붙여놓았다. 전국공공운수노조 제공

정규직의 한 직원은 한노사연 발표자인 김유선 연구위원에게 “직접고용의 부작용은 왜 연구하지 않느나”며 집요하게 답변을 요구했다. 정규직 신입사원 양아무개씨는 “우린 공개경쟁이라는 힘든 사투를 벌였다. 경쟁을 받아들이는 게 정의로운 사회인데 비정규직의 정규직 최대 전환이 정의로운 일인지 의문”이라고 반박했다. 또다른 정규직 여성 직원은 “비정규직 환경미화 노동자들이 어렵게 일한다는 건 잘 알지만 여러분만 힘든 게 아니다. 그래서 비정규직에게 해외 여행도 보내주고 선물도 주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때마다 양쪽에선 환호와 박수, 탄식과 한숨이 엇갈렸다.

비정규직 쪽에선 “청소, 경비, 수하물 하역 같은 일은 ‘청년선호 일자리’가 아니다”고 항변했다. 환경미화 11년차 여성 노동자는 “우린 여러분(정규 사무직)들이 쉴 때 못쉬고 궂은 일 한다. 화장실에서 출산하던 승객을 응급 구호하고, 대형화재가 날 뻔한 것을 미리 발견해 막기도 했는데, 사람 살리는 것보다 중요한 ‘생명·안전업무’가 어디 있느냐”고 따져물었다. 그는 “우리가 정규직의 몫을 빼앗자는 게 아닌데, 같은 일터에서 일하는 정규직이 우리 가슴에 대못을 박지 말아달라”고 말해 장내가 숙연해지기도 했다.

토론 사회자인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다른 분들 가슴 아프게 하는 말은 하지 않으면 좋겠다”며 “양쪽 입장이 많이 다르다는 걸 확인했다. 그 차이를 충분히 반영해서 향후 더 좁혀진 대안으로 모범적 모델이 나오길 기대한다”며 토론을 마무리했다.

3시간에 걸친 공청회가 끝난 뒤 인천공항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의 상급 산별노조들도 각각 상반된 성명과 논평을 내놨다.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조연맹(정규직)은 “일부세력의 개입으로 정규직화 정책 취지가 훼손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정부가 정규직화의 명확한 원칙과 기준, 예산과 정원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2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공사 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방안 공청회’가 끝난뒤 전국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부(비정규직)의 박대성 지부장이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일준 기자

반면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비정규직)는 “(일부 정규직 직원들이) 정규직 전환 규모를 크게 제시한 연구진의 답변에 큰 소리로 야유를 보내고 고함을 지르는 무례함을 보이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질의를 소리를 지르며 방해하기도 한 것에 충격을 받았고 참담하다”며 집단행동에 유감을 표시했다. “정규직이 먼저 비정규직에 손을 내밀고 연대하는 정신을 외면하지 않을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한편, 인천공항공사가 공공기관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공시한 자료(올해 3/4분기)를 보면, 인천공항 인력은 정규직 1252명, 용역 8060명으로 외주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기형적 구조다. 정규직원의 평균근속연수는 13.7년, 직원 1인당 평균 보수(연봉)는 8056만원이었으며 신입사원 초임은 4335만원이었다.

인천국제공항 전경. 인천국제공항공사 제공

반면 공시 대상이 아닌 비정규직은 박봉조차도 부당하게 떼이기 일쑤다. 공항공사(원청)는 60개 용역업체와 하도급 계약 형식으로 인력을 아웃소싱하면서 용역업체에 이윤과 일반관리비, 인건비를 총액으로만 구분해 지급한다. 그런데 용역업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원청과 하청의 계약과 금전 지급의 내역을 알 수 없는 점을 악용해 임금을 덜 지급하는 착취구조가 일반화되는 것이다. 실제로 2013년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가 간접고용 현장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조사해 공항공사가 용역업체에 지급했다는 인건비와 비교해봤더니 400만~700만원이나 차이가 났다. 예컨대, 경비보안과 보안검색 업무 노동자의 경우 공항공사에서 주장하는 임금은 연봉 2900만원이었는데, 실제 받는 임금은 2500만원 수준이었다. 400만원이 다른 곳으로 새고 있었던 셈이다.

김유선 한노사연 선임연구위원은 “정규직 전환에서 직접고용이 많을수록 용역업체의 이윤과 일반관리비 절감분도 커지므로 그 재원을 직원 복리·후생비로 돌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천공항 노사전협의회(노동자, 회사, 전문가 3자 기구)는 올해 안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완료한다는 계획이지만 전환 방식을 둘러싼 이견 탓에 전망이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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