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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정말 슬기로운 시도의 드라마가 될까?

공간은 더 좁아졌고, 인물은 더 다양해졌다. ‘응답하라’ 시리즈와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단순 비교한 게 아니다. ‘응답하라 1997’에서 ‘1994’와 ’1988’을 거쳐 ‘슬기로운 감빵생활’로 이어진 흐름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1997’은 학교를 제외하면 중심적인 공간이 없는 이야기였다. 같은 학교 친구들로 연결된 캐릭터들은 부산으로 설정된 지역을 돌아다녔다. ‘1994’에 이르면 하숙집과 캠퍼스를 놓고 전국에서 서울로 온 대학생들이 이야기를 펼친다. 그리고 ‘1988’에서는 모든 인물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들의 과거까지 한 동네에서 이루어진다. 심지어 1988’에서는 주요 인물들의 부모 세대까지 각자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렇게 공간은 더 좁아졌고, 인물들은 확장했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만들어 온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가 차기작으로 ’감옥’을 떠올린 건, 어쩌면 필연적인 선택일 지 모른다. 쌍문동 보광당 골목보다 더 좁은 곳. 하지만 그곳보다 더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선택한 건 ‘교도소’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1화는 주인공 김제혁과 교도소라는 2개의 캐릭터를 소개하는 이야기였다. 한국 최고의 마무리 투수이자, 메이저리그 입성을 앞두고 있던 김제혁(박해수)은 여동생을 성폭행하려한 남성과 싸우다가 그에게 중상을 입힌다. 법원은 과잉방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도 없는 징역 1년을 선고한다. 드라마는 김제혁의 재판을 “지나는데 1시간도 더 걸릴지 모르는 서울에서 가장 긴 터널”을 오고가는 장면만으로 요약하지만, 그가 야구 빼고 다른 일은 잘 못한다는 건 여러 차례에 걸쳐서 강조했다.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하는 바둑천재’를 닮았다.) 추운 날씨에도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제혁에게 변호사는 ‘곰’같다고 말한다. 제혁은 분명 말도 느리고, 반응도 느린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팬들은 다 알고 있는 제혁의 별명은 “목동 또라이”다.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슈퍼스타가 교도소라는 공간을 거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릴 이 드라마에서 제혁의 캐릭터는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해 보인다. 1화에서 이미 제혁은 누군가를 때릴 수도 있고, 누군가를 위해 돈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줬다. 또한 “여기서는 아무도 믿지 말라”는 극중 준호(정경호)의 대사도 의미심장하다. 사람 좋아보이는 조주임(성동일)과 맨날 당하고 살지만, 사실은 전과 9범의 살인자인 노인 수용자 등, 드라마 속 교도소에는 겉보기와는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 제혁 또한 겉보기와는 다른 또라이다. 신원호 PD는 ‘OSEN’과의 인터뷰에서 “주인공이 30명이 넘는 방을 쓸 수 없으니 주인공의 수감 공간이 바뀌거나 누군가 출소를 하면 다른 사람이 등장하는 방식으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그렇게 ’또라이’ 슈퍼스타가 진심을 알 수 없는 사람들과 부딪히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1화는 제혁보다도 교도소라는 공간의 특징을 보여주는 부분에 더 많은 신경을 썼다. 제혁에게는 교도소의 모든 것이 낯설고, ‘법자’(법무부의 자식)로 불리는 동료 수용자(김성철)에게는 모든 게 익숙하다. 제작진은 법자의 입을 통해 교도소의 규칙들을 매우 촘촘하게 드러낸다. 제작진에게는 이 부분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을 것이다. ’응답하라 1988’은 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로, ‘응답하라 1997’은 “아빠의 복고는 쎄시봉이지만, 나의 복고는 H.O.T”란 대사로 1화를 시작했다. 그렇게만 시작해도 시청자들은 모두 각자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교도소는... ‘응답하라’ 시리즈는 이야기의 포인트 마다 그 시대의 인기곡을 들려주었다. 원곡 가수의 노래뿐만 아니라 리메이크 된 곡까지 썼다. 하지만 ‘교도소’는... 신원호 PD는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작은 소품까지도 그 시대를 상기시킬 수 있는 물건들을 설정했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어떤 소품이 등장하든, (교도소 생활을 해보지 않은)시청자에게는 그저 신기한 디테일일 뿐이다. 대부분의 시청자들과 교도소라는 공간은 공유하는 추억도 없고, 기억도 없고, 인기곡도 없다. 사실상 시청자들도 주인공 제혁과 마찬가지인 입장인 것이다. 제혁의 캐릭터와 함께 시청자들이 교도소를 받아들이는 느낌도 달라질 것이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분명 낯설고 흥미로운 시도다. 이 드라마에 대해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부류는 특정 시대를 살아본 사람이 아니라, 교도소 생활을 해본 사람이다. 그처럼 많은 이의 공감을 일으키기 어려운 설정인데도, 주인공을 맡은 배우까지 그리 익숙한 얼굴이 아니다. 게다가 앞으로는 조연 배우들까지 계속 자리를 바꿔갈 것이다. 각 방송사들의 간판 드라마와 경쟁하는 수목시리즈가 아닌 일종의 실험극으로 보여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제작진은 어떤 승부수를 가지고 있을까? 현재로서는 그것이 가장 기대되는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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