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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는 어떻게 민원이 되었는가

돌이켜보면 계속 그랬다. 정부 단체들은 성적소수자 단체에서 낸 대관 또는 집회를 허가했다가 보수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동성애 반대자들이 항의하면 바로 취소했다. 조직적인 민원을 없애는 최선의 방법은 그런 공격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폭탄 문자나 전화로 안 된다는 걸 알면 당연히 다른 방법을 모색할 테니까.

  • 한채윤
  • 입력 2017.11.23 04:48
  • 수정 2017.11.23 04:51

십수년 전의 일이다. 당시 어느 동성애자 커플이 올린 공개 결혼식 보도를 접한 40대 중반의 여성분이 단체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기사를 보고 놀라서 무작정 언론사로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여기로 연락해보라고 번호를 알려주었단다. 알고 싶은 건 단 하나라고 했다. 자신은 평생 동성애는 잘못되고 나쁜 일이라고 생각해서 꽁꽁 숨기고 살았는데 공개적으로 서로 사랑한다고 밝힌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동성애가 나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처음엔 장난 전화인지 의심도 했다. 왜냐면 몇 해 전에 유명 연예인이 커밍아웃을 해서 온 나라가 떠들썩했고 그 후로 동성애 관련 기사는 심심찮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전혀 모르는 듯했다.

이어지는 대화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깊은 산골에 살아서 세상 소식을 거의 접하지 못하는데, 우연히 그 신문 기사를 보게 되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걸 알았고 동성의 친구를 사랑하는 자신은 잘못된 존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태어난 곳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충청도의 단양인데 자신이 고향을 더럽히는 것 같아서 죽으려고 했으나 차마 죽지는 못하고, 대신 일부러 깊은 산골에 들어가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 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동성애가 나쁜 게 아닌 건가요? 그럼 제가 고향을 더럽히거나 그러지 않는 거죠?"라고. 같은 질문을 수차례 반복한 뒤에야 조금 안심이 된다는 듯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망칠까 봐 스스로 수십년간 유폐하다니. 홀로 감당했을 삶의 무게를 가늠해보려 할 때 도리어 내 무릎이 꺾여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당신이 당신 자신이어도, 그 자체로 괜찮다"는 말 한마디를 들어보지 못해 작은 숨구멍까지 닫아버린 이들이 어딘가 또 있지 않을까.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 내쳐지고 지워진다는 것, 그것이 아름다움이나 순수함과 대비되는 것은 이토록 슬프고 잔인하다.

십여년도 전의 일이니 이젠 옛날이야기일까? 아니다. 불과 한달 전, 제주도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를 반대하는 이들이 내건 구호는 '청정 제주도의 이미지를 망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제주도에 동성애가 웬 말이냐'며 시청에 항의했고 이에 제주시는 유례없는 '민원조정위원회'라는 걸 열어서 퍼레이드가 열릴 공원의 사용 허가를 취소했다.

돌이켜보면 2014년에 서울 서대문구청과 대구시청, 2015년에 서울지방경찰청, 대구지방경찰청, 2017년에 서울의 동대문구청까지 모두 처음엔 성적소수자 단체에서 낸 대관 또는 집회를 허가했다가 보수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동성애 반대자들이 항의하면 바로 취소했다. 이뿐인가. 차별금지법을 준비하던 법무부는 항의 전화를 받고 2007년에는 성적 지향을 법안에서 삭제했고 2010년에는 법 제정 준비팀을 꾸렸다가도 접었다. 2013년에 민주당의 김한길, 최원식 의원도 차별금지법 발의를 철회했다. 2014년에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서울시민인권헌장'을 다 만들어놓고도 선언을 포기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누구라도 며칠 동안 쉴 새 없이 터지는 문자 폭탄과 전화 폭탄에 시달리고 나면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그와 관련된 사안은 피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런 항의 전화에 시달려본 이들은 알고 있다. 걸려오는 전화마다 사람은 다른데도 말하는 내용이 마치 주어진 대본을 읽는 듯 똑같고, 심지어 불같이 화를 내며 반대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반대하는 법이나 조례, 행사의 명칭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허다함을. 복사하기 버튼을 누르는 식의 조직적인 민원을 없애는 최선의 방법은 그런 공격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폭탄 문자나 전화로 안 된다는 걸 알면 당연히 다른 방법을 모색할 테니까.

그런데 지금은 이 방법이 너무 잘 통한다. '미풍양속에 어긋나는 동성애'라는 편견과 혐오의 구호는 '민원'과 '시민 정서'로 둔갑한다. 이 위장술을 눈치챈 곳은 '제주도 인권보장 및 증진 위원회'였다. 제주도청과 제주시청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비방성 민원을 면밀한 검토, 사실 확인 없이 적극 수용함으로써, 마치 진정된 민원의 내용이 사회의 통념인 것처럼 오도되는 결과를 낳았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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