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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말대잔치'에는 '아무'가 없다

'우리편'들을 향한 '아무말대잔치'는 우선 당장의 결속은 이루어낼지 모르나 결국 그 '우리편'들을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능력이 퇴화된 '우리편'들, 보편적인 판단잣대가 망가진 '우리편'들로 이끌고 가게 된다. 결국에는 공동체의 결속을 와해하고 분열을 일으킨다. 보편이 무너진 곳에 남는 것은 편가르기다.

'아무말대잔치'라는 말이 있다. '아무 말이나 막 하는 것을 재미의 요소로 삼는 놀이'라고 일단 정의해보자. 사실관계를 비틀어 거짓을 주장하는 '아무말', 소통의 맥락을 무시하는 '아무말', 그야말로 뜻 없이 늘어놓는 술자리의 소음 같은 '아무말'. 말이라 부를 수도 없도록 오류로 가득 차 있어도, 그 오류를 인식하는 한 '아무말'은 웃음을 준다. 그래서 개그콘서트 인기 코너에 등장하는 '아무말'은 시청자의 웃음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다르다.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벌어지는 말잔치는 아슬아슬할 때가 많다. 제대로 된 문장, 맥락이 닿는 서사를 말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닌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야말로 '아무말'이나 하면서 에스엔에스에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망가진 문법이 드러내 보여주는 망가진 정신의 구멍이 속속 보인다.

맥락과 문법을 무시한 채 마구 쏟아내는 '아무말'은 의사소통을 단절시키는 소음이 되고, 참과 거짓을 뒤섞는 의도적 '아무말'은 사회를 위태롭게 만드는 흉기가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것이 의미 있는 어휘와 올바른 문법에 실려 오가는 말일진대, '아무말'은 유대를 깨고 개인을 고립시키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포항의 수험생들을 비난하는 말이라든가, 성폭력 피해자를 가해하는 말이 함부로 발설되는 이유가 뭐겠는가. '아무말'이나 해도 된다 싶으니까. 그것을 '대잔치'라 불러주니까. '아무말대잔치'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고 유행하는 현상은 재미로만 웃어넘기기엔 심각한 사회적 질병의 징후다.

소위 '일반 국민'들이 벌이는 '아무말대잔치'보다 훨씬 위험한 것이 정치권과 언론이 유포하는 '아무말대잔치'다. 홍보 또는 선전선동보다 '아무말대잔치'가 훨씬 위험하다. 국정원 댓글부대가 실제로 에스엔에스상에서 했던 일은, '아무말' 소음으로 국민이 공동체에 지녀야 할 신뢰를 근본에서부터 파괴하는 일이었다. 그 말이 원래 지시하는 내용과 말하는 사람이 뜻하는 바가 서로 다른 '아무말'은 결국 불신과 무지로 언어사용자들을 이끈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묘사한 진리부의 3대 슬로건은 "전쟁은 평화, 자유는 속박, 무지는 힘"이다. 요즘 말로 하면 "진리부는 아무말대잔치를 통해 진리를 거짓으로 바꾼다". 언어가 무력화하면 남는 것은 돈과 주먹이 아니겠는가.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는 외침이 일단 승리를 거둔 지금에도 정치인의 '아무말대잔치'는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을 처벌하려면 검찰로부터 매년 100여억원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았다는 법무부도 같이 처벌하는 것이 형평에 맞는 것이 아닌가"라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법률가 출신이 이런 말 안 되는 소리, 즉 '아무말'을 모르고 했을 리는 없다. 검찰이 별도 예산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소위 '팩트'이기 때문이다.

이분이 이러는 것은 우선, 상당수 언론이 '아무말'이나 뉴스로 다루고 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다음으로는 거짓된 주장을 해도 '우리편' 유권자들은 진위분별을 하지 않거나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마도 카카오톡 단체방 어딘가에서는 홍 대표의 주장이 올바른 양 포장되어 떠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주장은 여러 언론의 소위 '팩트체크'를 당해 틀렸음이 밝혀졌지만, 문제는 모든 발설된 정치언어를 '팩트체크'해주는 언론은 없다는 사실이다. 팩트체크보다 더 중요한 대목, 언어는 존재의 집이므로 진실을 담아야 한다는 원칙을 체크해주는 장치는 더더욱 없다.

'우리편'들을 향한 '아무말대잔치'는 우선 당장의 결속은 이루어낼지 모르나 결국 그 '우리편'들을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능력이 퇴화된 '우리편'들, 보편적인 판단잣대가 망가진 '우리편'들로 이끌고 가게 된다. 결국에는 공동체의 결속을 와해하고 분열을 일으킨다. 보편이 무너진 곳에 남는 것은 편가르기다.

'개콘'의 '아무말대잔치'는 풍자다. 개그맨들은 고도로 계산된 '아무말'을 통해, 그 '아무말'이 실제로 '말이 안 되는 말'임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한다. 참과 거짓, 맥락과 허무맹랑 사이의 거리가 우리를 웃게 한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아무말대잔치'는, 그 거리가 없기 때문에 위험하다. '아무도 없는 것'이 고립이듯이, '아무말을 막 하는 것'은 소외다. 잔치가 아니라.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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