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열여덟번째 생일을 나흘 앞두고...제주 현장실습생의 죽음

  • 김원철
  • 입력 2017.11.22 04:43
  • 수정 2017.11.22 04:46

폐회로텔레비전(CCTV) 속 현장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지난 9일 오후 1시48분께 제주시 구좌읍 음료제조업체 ㅈ사 공장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이민호(18)군의 목과 몸통이 제품 적재기 프레스에 눌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군을 삼킨 기계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작업을 이어갔다. 그 열흘 뒤인 19일 힘겹게 뛰던 이군의 심장이 멎었다. 11월23일, 그의 열여덟번째 생일을 나흘 앞둔 날이었다.

현장실습에 나갔던 특성화고 3학년 이민호군이 사고로 숨진 이튿날인 20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특성화고 재학생과 졸업생들로 구성된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 회원들이 추모 촛불집회를 열었다. 교복을 입은 채 집회에 참가한 한 재학생이 “고 이민호 실습생의 죽음은 우리들의 현실이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특성화고 실습생이 또 목숨을 잃었다. 올해만 두번째다. 지난 1월 전북 전주시 유플러스 고객센터 현장실습생 홍아무개양은 “콜수를 다 못 채웠다”는 문자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김아무개군도 현장실습생이었다. 그는 컵라면과 숟가락을 유품으로 남겼다.

이들의 죽음을 설명하는 단어로 ‘사고’나 ‘자살’은 온당치 않아 보인다.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제주근로지도센터 관계자는 “사람이 끼는 등 사고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기계가 멈추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데 (사고 현장에) 그런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이 담긴 시시티브이를 본 민주노총 제주본부 김혜선 노무사는 “이군은 목이 짓눌린 채 4분여를 홀로 버텨야 했다”고 말했다. 이수정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노무사는 “고용노동부의 현장실습표준협약서에 따르면 현장실습생에게 지도 능력을 갖춘 담당자를 배치해야 하지만, 사고 당시 작업장에는 이군뿐이었다”고 말했다.

이민호(18)군이 사고를 당한 제품 적재기 프레스. 이민호군 아버지 제공

“왜 실습하다 죽어야 합니까.” “이군의 죽음은 우리의 현실입니다.” 또 다른 ‘이군’들이 21일 이틀째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교복 입은 학생 30여명은 촛불과 함께 하얀 국화꽃을 들었다. 인천의 한 특성화고에 다니는 학생은 “우리는 단순한 노동의 대상이 아니라, 노동으로 꿈을 키워가는 존재다. 꿈을 키울 수 있는 현장실습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특성화고 1학년에 재학 중인 또 다른 학생은 “앞서 많은 선배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현장실습이 너무 두렵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곧 또 다른 ‘현장실습생’이 되어 산업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사고가 난 업체 쪽은 “이군이 정지 버튼을 누르지 않고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며 그의 과실을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이군 부모는 발인을 미룬 채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뉴스 #현장실습생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