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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인터뷰] 7년간 지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은 소년들의 낙서로 시작됐다

2011년 3월, 시리아 남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다라에서 13세 소년이 한달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가족들에게 돌아왔다. 소년의 몸에는 끔찍한 고문과 학대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그를 고문한 건 바로 시리아 보안군이었다. 람자 알 카티브는 다른 14명의 학교 친구들과 함께 학교 담벼락에 그래피티를 새긴 이유로 체포됐다고 한다. 당시 이들의 그래피티에는 “의사 선생님, 이번에는 당신 차례입니다”라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이 문장의 ‘의사 선생님’이 뜻하는 건, 영국에서 의사교육을 받았던 바샤르 알 아사드였다. 소년들의 그래피티는 그냥 낙서가 아니었다. '아랍의 봄'의 영향을 받은 소년들은 1971년부터 2000년까지 29년간 무력으로 시리아를 집권했던 하페즈 알 아사드 전 대통령에 이어 권력을 승계받은 새로운 독재자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소년들은 체포당했고, 고문당했다. 소년들의 상처를 본 주민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후 7년 간, 46만 명이 사망하고 1,200만명이 나라를 떠났다.

다라에서 열린 시리아 반정부 시위 (2011.04.28)

이렇게 7년간 지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은 아이들로부터 시작했다. 영화 ‘시리아의 비가'의 감독 이브게니 아피네예브스키는 항쟁의 새싹을 꿈꿨던 아이들의 희망과 인류의 비극이 공존하는 시리아의 모습을 꼼꼼하게 담았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시리아인들의 이야기와 그 시간에 대한 진실을 드러내고 싶었다는 아피네예브스키 감독을 허프포스트코리아는 화상전화를 통해 만났다.

- 전작 ‘윈터 온 파이어'에서는 EU를 다뤘고 그 전에도 중동이나 시리아를 다룬 적이 없다. 무엇이 ‘시리아의 비가' 제작의 모티브가 되었나? 어떻게 시리아를 처음 접하게 되었나?

= 2015년에 나는 유럽에 있었는데, 모든 신문 헤드라인은 ‘IS가 오고 있다!’, ‘시리아 테러리스트들이 온다!’는 외침이었다. 당시 나는 시리아인을 많이 만나보지 못했지만, 모든 매체는 그들이 죄다 시리아인이라는 프레임을 썼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보기 시작했다. 국경에 가서 그들이 왜 모든 걸 버리고 자기 집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가는지를 목격했다. 그곳에서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나는 이 사람들과 그 시간에 대한 진실을 드러내야 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영화 화면을 통해 전해야 했다. 나는 처음으로 상징적 이미지 세 가지를 하나로 묶었다. 2015년에 해안에서 시체로 발견된 알란 쿠르디는 시리아의 어린 아이들을 상징한다. 알레포에서 구조된 옴란 다크니시는 고생과 생존을 상징한다. 영화의 나레이션을 맡은 바나 알라베드는 희망과 미래를 상징한다.

알레포에서 구조된 옴란 다크니시 (2016.08.17)

- 견디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화면들이 있다. 이것들을 그대로 다큐멘타리를 통해 보여주기로 결정한 이유가 있나.

= 1부터 100까지라고 한다면, 다큐멘터리에 담은 것은 60 정도 수준이다. 어떤 끔찍한 영상들이 빠졌는지는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어서 극장에서 나가거나 TV를 끄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또한 이 시대의 전쟁이 얼마나 참혹하며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자유와 존엄을 위해 싸우며 사람들이 치르는 대가, 전쟁의 실제 모습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 우리 세대는 그걸 모른다. 집을 떠나 다른 나라로 피난하는 시리아인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우린 봐야 한다. 극장에 나와서도 다음 날까지 떠올리며 이야기를 기억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재평가할 거리를 주려했다.

- 영화 속 많은 현장 영상들이 등장한다. 이 영상들을 어떻게 모으셨나 궁금하다.

= 전쟁 발발 당시부터 현장에 있었던 여러 활동가들은 기록 목적으로 영상을 찍었다. 자신의 눈, 전화, 카메라로 모든 것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시선이다. 인터뷰는 내가 다 찍고 현장 촬영도 조금 했지만, 대부분은 영상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활동가들이 찍었다.

- 영상을 제공해주신 분들이나 등장하시는 분들에게 완성된 영화를 보여줬나? 반응이 어땠나?

=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다. 영화를 편집할 때, 영화 캐릭터로 구성된 팀에게 가편집을 보여주며 조금이라도 실제와 다른 것이 있으면 조언해 달라고 했다. 그들은 감동했다. 아무도 통째로 말한 적이 없었던 그들의 역사를 자기 눈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끔찍한 상황임에도 영화에는 희망에 자취가 남아있다. 특히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따뜻한 에너지는 영화에 큰 동력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타이어를 태워 정부군을 교란시키는 장면은 정말 인상깊었다.

= 그들은 모두 굉장히 희망적이다. 정말 아름다웠다. 이 아이들은 포위되고 굶주린 와중에 음식을 구할 방법을 찾아낸다. 타이어를 태워 도시를 가리는 것은 희망의 상징이다. 아이들의 낙관주의와 희망을 보면 정말 놀랍다. 이 세대는 혼돈 속에서 태어나, 곧바로 성인이 되었다는 게 멋지다. 우리는 성인 남성들이 참전해 싸운다고 말하지만, 여기서는 아이들도 전쟁의 일부다.

- 다큐멘터리에서 당신은 아사드의 친정부 인터뷰와 시민 반군을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아사드 지지자들은 이 분쟁을 어떻게 볼까 궁금했다. 군인과 정부 관료 외에, 시리아에서 방관자와 친정부 시민의 비율은 대략 얼마나 될까? 아사드의 프로파간다는 효과가 있나?

= 시리아에서는 두려움 때문에 의견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친 아사드 성향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정부에 맞서면 호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걸 보았기 때문에 말썽을 원하지 않는다. 안전을 위해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중립 상태로 있길 선택한다.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다. 러시아와 비슷하다. 러시아 매체는 편파적으로 푸틴, 푸틴, 푸틴만 말한다. 시리아에서도 아사드, 아사드, 아사드였다. 터키 매체 역시 에르도안만 다룬다. 독재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편파적인 매체가 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터키에서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은 지금 감옥에 있다. 푸틴에게 반대했다가 살해당했다. 우리는 아사드에게 반대했던 사람들이 죽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은 그런 상황의 노예가 되어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 아사드는 추악하지만 그를 축출하면 테러리스트들이 시리아를 장악할 것이라는 의견이 허프포스트US에 실린 적이 있다. 서방의 군사적 개입이 큰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만약 그게 부정적이라면, 실제로 우리가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은 뭐가 있을까. 국제사회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 대리전에 관련된 모든 집단들에게 외교적 압력을 넣으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인프라는 남겨두되 정부는 달라져야 한다. 전세계에서 외교적 압력을 넣을 필요가 있다. 나는 내 대통령이 진심으로 부끄럽다. 안타깝게도 나는 미국인이지만, 현재 상황에서 그가 하고 있는 일이 부끄럽다. 하지만 우린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넣고 소셜 미디어에서 의견을 낼 수 있다. 현장의 NGO들을 후원할 수도 있다. 이 문제에 참여할 방법은 정말 다양하다.

- 영화 안에서 ‘난민과 고문 희생자의 유족등의 인터뷰’ ‘폭격 희생자’등 많은 감정적인 장면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폭력적 상황에 놓인 사람들과의 인터뷰, 영상을 촬영 편집하면 본인의 감정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걸 어떻게 견뎠나?

= 나는 참전했다 돌아온 모든 군인들과 비슷하다. PTSD에 시달린다. 그 기억이 나를 사로잡고, 악몽도 꾼다. 내 인생은 달라졌지만, 동시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나의 전작 ‘윈터 온 파이어’는 베네수엘라와 브라질을 바꾸었다. 사람들은 그 영화를 혁명의 기폭제로 사용했다. 내가 하는 일이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느낀다. 이 영화가 큰 성과를 이루길 바란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내가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이 세상을 좋게 만드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시리아의 울음이 미국에서 변화를 가져오길 바란다. 나는 두 혁명을 다 목격했기 때문에, 나의 나라에서 평행선을 그을 수 있다. 내가 두 가지 상황에서 목격했던 일들이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 시리아 인구의 반 이상이 나라를 떠났다. 시리아인들은 다시 아름다웠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나?

= 혁명 전에는 17가지 국적과 종교 집단들이 시리아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이것은 참사이며, 인류의 비극이며,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면이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내 전작 ‘윈터 온 파이어’는 EU에 대한 것이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부당함에 대한 이야기다. 전달되어야 할 목소리를 들려주고, 사람들이 보아야 할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시리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나는 잃어버린 세대인 아이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다. 동시에 이건 미래 세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은 시리아로 돌아가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시리아를 재건하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곳으로 만들어 다시 집으로 삼길 원했다. 이건 한 나라의 이야기다. 그들을 찾아가 그들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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