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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연기 못 들은 수험생, 고시장엔 적막감이 흘렀다

  • 박수진
  • 입력 2017.11.16 07:03
  • 수정 2017.11.16 07:06

포항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2018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23일로 연기된 가운데 16일 수능이 열렸더라면 수험생으로 북적였을 고사장에는 적막감이 흘렀다. 미처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헐레벌떡 뛰어 온 수험생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오전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여자고등학교는 이따금 출근하는 교사 차량들을 제외하고는 평상시 휴교와 다를 바 없이 조용한 모습이었다. 학교 정문에는 미처 내리지 못한 '서울특별시교육청 제12시험지구 제18시험장' 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운동장에는 수험생을 응원하기 위해 화분으로 꾸며 놓은 '할 수 있어', '너를 믿어'라는 등의 응원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휴교로 인해 적막함만이 흐르는 가운데 수능 연기 소식을 접하지 못한 수험생이 학교를 찾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하다 22살의 나이에 이번 수능에 응시했다는 김양현씨(여)는 예상과는 다른 고사장 분위기에 한참을 당황해 했다. 그러다 취재진이 수능 연기 소식을 알리자 "정말 몰랐다"며 "시험장에 오면서 사람들이 없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알려주지 않았다면 계속 기다릴 뻔 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며 휴대폰까지 정지하고 공부를 해와 소식을 듣지 못했다"며 "어제 공부할 때 도서관이 흔들리길래 뉴스를 찾아봤고, 지진이 난 것은 알게 됐는데 수능이 연기된 것은 지금 처음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씨는 이내 "수능 준비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1주일이라는 시간이 더 생겨 기분이 좋다"며 다시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동성고등학교의 상황도 비슷했다. 텅텅 빈 학교는 이따금 자율학습을 위해 학교 내 도서관을 찾은 수험생들만이 찾을 뿐이었다. 이 학교 졸업생으로 이번 수능에 응시한 김정현씨(20)는 "오늘에 맞춰 컨디션도 조절하고 준비를 다 해놨는데, 당황스럽다"며 "다시 1주일 동안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애써 마음을 다잡는 모습이었다.

학교 앞에 있던 고사장 안내표지판을 치우고 정문을 걸어 잠근 학교 측 관계자는 "오늘 교장, 교감선생님 등이 모여 대책회의를 할 것"이라며 "앞으로 1주일 동안 고사장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이 학교에도 소식을 듣지 못하고 수능 응시를 위해 고사장을 찾은 수험생이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오전 7시50분쯤 학교를 찾은 김수영군(19)은 취재진의 설명에 수능 연기 소식을 접하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김군의 아버지는 "1주일 연기가 확실한거냐"라고 수차례 되 묻다 "이럴 수가 있나, 참…"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와 달리 김군은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어제 오후 11시30분까지 공부만 하다 잠들어 수능 연기 소식을 몰랐다"면서 "나는 더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 같아 좋다"며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기숙사가 있는 학교의 경우에는 수험생 기간이 1주일 더 연장된 자녀들을 위해 도시락 등을 공급하기 위한 부모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이화여고 재학생인 류달빛, 강세아양(18·여)은 학교 앞에서 아버지로부터 도시락을 전달 받고 "원래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먹고 수능을 보려고 했다"며 "어머니가 예정대로 도시락을 싸주겠다고 하고, 오늘 급식도 없어 이 도시락을 먹고 공부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화여고에 다니는 딸에게 도시락을 주기 위해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신민철씨(54)는 "아이 입장에서는 힘들 것이고, 나 역시도 보기가 힘들다"며 "그래도 포항 학생들을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고 전했다.

그는 "수능이 미뤄져서 부모도 고생"이라며 "오늘 수능이 열릴 줄 알고 학생들 모두 페이스를 맞췄을텐데, 깨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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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뉴스 #지진 #수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