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프린스턴대학교가 학생 성추행한 남성 교수에게 내린 처벌은 '8시간 교육 이수' 뿐이었다

  • 김태우
  • 입력 2017.11.13 18:31
  • 수정 2017.11.13 19:04

프린스턴대학교의 한 공대 교수가 대학원생을 두 달에 걸쳐 성희롱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부산 출신인 임여희 씨는 23세 때 한국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2015년에 프린스턴대학교 전기공학 대학원에 입학했고, 전기공학과 정보이론 분야에서 상을 휩쓴 세르지오 베르두 교수의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2016년 1월, 베르두는 임 씨의 지도교수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부터 베르두의 부적절한 행동이 시작됐다고 한다.

허프포스트가 입수한 문건에 의하면 임씨는 지난 4월, 성차별 문제를 담당하는 프린스턴의 '타이틀 9' 사무처에 성희롱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임씨는 당시 베르두가 지난 2월부터 두 달 동안 자신의 집에 임씨를 초대해 허벅지와 배를 만졌다고 주장했다.

프린스턴 측은 두 달에 걸친 조사 끝에 베르두가 ‘성희롱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정직이나 파면 처리는 하지 않았다.

베르두 교수는 허프포스트에 보내온 성명을 통해 "대학 측은 내게 답변하지 말 것을 권고했지만, 나는 어떤 접근도 하지 않았고 성희롱은 없었다고 단언한다."라고 혐의를 부인한 바 있다.

임 씨에 의하면 베르두가 받은 처벌은 ‘8시간 교육'뿐이었으며, 이번 학기에도 프린스턴에서 강의한다고 한다.

프린스턴 측은 이번 사건이나 베르두의 처벌 수위에 대해 허프포스트에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거부했으나, "대학교의 일원이 성적인 문제에 대한 학교 정책을 어긴 것으로 밝혀졌을 때 받는 처벌은 다양하다”고 밝혔다.

임 씨는 '타이틀 9'의 조사 후, 베르두가 다른 여성들에게도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허프포스트가 입수한 기록에 따르면 프린스턴대의 데보라 프린스 학장은 다른 여성들이 베르두에 대해 ‘더 광범위한 주장’을 했지만, 그중 누구도 기록에 남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임씨는 프린스턴대가 베르두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당시 패닉 상태에 빠졌다"라고 밝혔다.

임씨는 이전에도 베르두의 집에서 축구 중계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러오라는 초대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선정적인 장면이 있는 영화 '아가씨'를 보자고 해서 조금은 불안해했다. 당시 친구에게 "지도 교수가 영화를 보자고 했다. 근데 나한테만 말한 것 같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 조언을 구한 그는 "베르두 교수? 둘 만이라면 좋을 것 같지 않다"라는 답을 받았다.

이에 임씨는 교수에게 덜 선정적인 영화를 보면 안 되겠느냐고 이메일을 보냈지만, 베르두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고 싶은데 넷플릭스에는 '아가씨'밖에 올라와 있지 않다고 답했다. 결국 임씨는 '아가씨'를 보는 데 응했다.

임씨는 지난 2월 23일, 수업을 마치고 베르두에게 영화를 언제 보겠느냐고 물었다. 타이틀9 신고서에 따르면 베르두는 임씨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더니 주차장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임씨는 베르두가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자신을 밖으로 안내한 듯하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던 날 밤, 베르두는 술을 따르고 영화를 재생한 뒤, 임씨 '바로 옆에' 앉았다. 임씨는 당시 "최소 몇 번은 팔이 닿았다"고 전했다.

베르두는 영화를 보며 임씨에게 남자친구가 있느냐고 묻고 "잠시" 어깨에 팔을 둘렀다고 한다. 임 씨는 몹시 혼란스러웠으며 패닉에 빠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건 그의 집이었고, 바로 앞에 그가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나는 패닉하기 시작했다. 이게 성희롱일까? 그의 딸이 나와 비슷한 나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자기 딸과 비슷한 나이라서 이러는 걸까?"라며 당시 심경을 밝혔다.

영화가 끝나자 임씨는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갔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전기공학 대학원 환영 영상. 2분 40초경 베르두가 등장한다]

영화를 보고 일주일 뒤인 3월 9일, 베르두는 임씨에게 영화 '올드보이'를 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허프포스트가 입수한 이메일에서 베르두는 임 씨에게 스마일 이모티콘을 붙여 ‘나를 세르지오라고 불러달라’고 말했다.

임 씨는 지난번 사건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 번 더 영화를 보겠다고 했다. 자신에 대한 베르두의 행동이 오해였길 바랐다.

다음 날, 베르두는 임씨를 차에 태워 자신의 집으로 갔다. 타이틀9 보고서에 따르면 그들은 각자 레드 와인을 두 잔씩 마셨고, 베르두는 임씨를 향해 "너무 천천히 마신다'고 말했다.

임 씨가 타이틀 9에 제출한 서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화를 보는 동안 베르두는 영화 속 섹스 신에 대해 ‘너무 빠르다’고 ‘농담’을 했다. 그들이 금세 섹스를 했다는 의미였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그는 오른팔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의 겨드랑이가 그녀의 어깨에 닿았고, 그의 오른손은 그녀의 어깨 위에 있었다. 그는 팔을 그녀의 어깨에 두르고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고 한다. ‘서로를 흥분시킬 때 하려는 행동’과 같았다고 한다.

임 씨는 자신의 흰 스웨터에 와인을 흘렸음을 깨달았다. 와인 자국을 지우려고 하자 베르두는 비누와 냅킨을 들고 와 자신이 지우려 했다. 임 씨는 싸구려 옷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계속 말했지만 그는 배 부위의 얼룩을 지우려고 ‘30초 이상’ 시도했다고 한다. 베르두가 옷 위로 배를 만지지 못하게 하려고 임 씨가 셔츠를 몸에서 떼려고 하자, 베르두는 손을 옷 안에 넣어 와인 자국을 지우려 했으며, 손이 브라 아랫부분에 닿았다고 한다.

임씨는 베르두에게 "이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고, 베르두는 임씨의 속옷선 근처 허벅지에 손을 얹었다. 임씨는 당시 그가 손을 1분 정도 대고 있었다며,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가 바르셀로나 출신이라서 이러는 걸까? 바르셀로나에서는 이래도 괜찮은가? 한국과는 다를 수 있지 않을까?'하고 고민했다"라고 회상했다.

타이틀 9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성범죄 피해자 인권 변호사 지니 해리슨은 허프포스트에 베르두의 행동들은 전형적인 ‘그루밍’(grooming)이라고 말한다. ‘허벅지와 손을 만지고 자신의 성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해리슨은 임 씨와 교수와의 관계가 위태롭다며 대학원 지도 교수들은 학생들의 성공을 좌우하는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이런 상황에서 권력 불균형은 극단적이다. 그녀의 대학원에서의 성공, 논문 발표와 업계 취업까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지도 교수이기 때문이다. 모든 게 이 관계에 달려있다. 학위를 줄 수 있는 지도 교수와 학생과의 관계는 특이한 관계라 본다. 이 사람의 도움과 지원에 모든 게 달려 있다.”라고 덧붙였다.

임씨는 베르두의 집에서 돌아온 다음 날 이메일을 통해 전날 일이 불편했다고 말했다.

임씨는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당신이 내 다리를 만진 게 불편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우리 사이가 전적으로 지도 교수와 학생의 사이라고 생각하고 당신도 그렇게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경계를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라고 전했고, 베르두는 동의한다며 직접 만나 상의하자고 답했다.

임씨는 베르두의 의논 끝에 '다정하고 프로페셔널한' 관계를 지키게 됐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그 뒤로도 함께 일했다.

임씨가 몇 주 뒤 이 사실을 다른 교수에게 알리자, 그 교수는 타이틀9에 신고를 접수했다. 4월 13일, 임씨와 베르두는 두 사건에 대한 타이틀 9 조사가 있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타이틀 9는 두 달 뒤, 조사가 끝났다고 임 씨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베르두가 ‘성희롱 책임이 있다’고 결론 내렸지만, 정직하거나 파면하지는 않은 것이다.

타이틀 9의 미셀 민터가 임 씨에게 수사 결과에 대해 보낸 서한을 허프포스트가 입수했다. 베르두가 성차별과 성희롱에 대한 프린스턴의 정책을 위반했으며 ‘징계가 내려졌다’는 내용이었다.

Yeohee Im Outcome Letter by Alanna Vagianos on Scribd

임씨에 의하면 베르두의 ‘징계’는 8시간짜리 교육이었다고 한다.

임씨는 데보라 프렌티스 학부장, 타이틀 9의 관리자 레건 크로티, 다른 지도 교수이자 대학원 학장인 미건 크로스를 만나 이에 대해 의논했다.

프렌티스는 베르두의 행동은 사임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렌티스는 당시 임씨에게 "[베르두가] 당신에게 한 행동이 무척 부적절했다는 게 명백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처벌이 내려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에게 행동이 부적절하다고 알리자 그는 그만두었고 더 이상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이것이 첫 위반 사례인 것을 고려할 때, 그의 사임까지는 요구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임 씨는 베르두에 대한 다른 혐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불편하다고 했지만 다른 여성들에게 ‘그가 비슷한 행동을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내가 다른 학생들에게 내 경험을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일부 대학 관계자들을 제외하면 그가 성희롱 혐의를 받았다는 걸 아무도 몰랐다. 내가 아무것도 안 했다면 다른 학생들도 나와 같은 위험을 겪었을 것이다. 처벌에는 예방 효과가 있어야 한다. 대학 측에서 그를 잠깐이라도 정직시켰다면 학생들은 그 사실을 알 것이고, 다른 학생들이 희롱당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해리슨은 베르두가 다른 학생들에게도 같은 행동을 했다 해도 놀랍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허프포스트에 "이건 아주 심각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혐의가 사실로 밝혀졌다면 의미 있는 조치가 취해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상, 이런 사람들은 예전에도 이런 행동을 했다.”라고 말했다.

허프포스트가 연락하자, 프린스턴의 마이클 호치키스 대변인은 베르두의 처벌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은 성명을 냈다.

우리 대학교는 모든 성범죄 혐의를 아주 심각하게 다루며, 철저히 조사하고, 조사 결과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취한다. 우리는 우리 커뮤니티의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고 환영하는 교육 및 근무 환경을 만드는 데 노력한다.

대학 커뮤니티의 일원이 우리의 성범죄 정책을 어긴 것으로 밝혀졌을 때, 처벌 범위는 사건의 팩트에 따라 정해지며, 경고, 보호 관찰, 휴가 등 특권 박탈, 정직, 해고 등이 이에 포함된다. 우리 정책을 어긴 모든 사람들에게 카운슬링과 교육을 요구한다. 부적절한 행동을 멈추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타이틀 9 수사의 상세 내용은 관련자들 및 정보를 제공한 증인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비밀로 유지된다. 이번 경우, 교육은 카운슬링 외에 추가로 들어간 것이었다.

성범죄의 경우 우리는 피해자들이 우리 대학교에서 계속해서 성공할 수 있도록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것 역시 중요시한다.

해리슨은 프린스턴의 처벌이 ‘한심할 정도로 부족했다’고 말한다.

“이 남성이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프린스턴은 엄청난 비난을 받고 막대한 돈을 잃게 될 거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가 받은 메시지는 우리는 너를 혼내는 척하고 조용히 넘어갈 것이다, 이기 때문이다. 우린 너를 해고하지 않을 것이다. 대규모 공청회를 열지 않을 것이다. 그의 행동은 극히 걱정스럽고, 프린스턴이 그에게 취한 행동은 내가 보기엔 한심할 정도로 부족했다.”라는 것이다.

타이틀 9 조사가 끝난 뒤 임 씨는 지도 교수를 바꾸고 베르두의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다. ‘[베르두와’ 같은 분야에 있는 것이 너무 불안해서’ 연구 방향도 바꾸었다. 또한 성희롱 이후 심리 상담사를 만나기 시작했으며 항우울제를 먹고 있다고 허프포스트에 말했다. 하지만 같은 건물에서 일하기 때문에 지금도 베르두를 매일 마주쳐야 한다고 한다.

임씨는 마지막으로 “나의 피해 사실을 말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성희롱이 얼마나 위험한지 더 많은 사람이 의식해서, 이와 같은 상황을 피할 수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이런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를 프린스턴이 배우기 바란다.”라며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허프포스트US의 'Grad Student Says Princeton Prof Who Sexually Harassed Her Was Given Slap On The Wrist'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뉴스 #국제 #프린스턴 대학교 #여성 #성추행 #교수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