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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일베'로 몰려들고 있다

"여러분, 포털사이트 말고 일간베스트 정치게시판에 접속해야 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코앞에 앞두고 태극기집회가 절정에 이르렀을 즈음, 집회 현장에서는 때 아닌 '일베홍보'가 이뤄졌다.

일흔을 훌쩍 넘긴 것으로 보이는 한 노인은 양 손에 성조기와 태극기를 들고 "사기탄핵" 을 외치며 "여러분, 포털사이트 뉴스 보지 말고 구글에 '일간베스트'를 검색해 '정치게시판'으로 들어가 그곳에 있는 글들을 봐야 한다. 여기가 가장 정확하다"고 소리쳤다. 일부 집회에서는 '언론을 믿느니 일베를 믿겠다'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일베를 맹신하는 이들은 다음과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기사들은 모두 '좌편향' 됐기 때문에 태극기 집회와 박 전 대통령의 무죄를 주장하는 기사는 신문은 물론 포털사이트 기사로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모든 언론과 포털사이트들이 '거짓'을 선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연장이 결정된 지난달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한 80대 노인은 "대체 왜 기자들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냐"라며 "제대로 된 기사를 써달라"고 호소했다.

박사모(박근혜를사랑하는모임)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이같은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한 박사모 회원은 '일베가 어떤 곳이냐'는 글이 올라오자 "일베는 모든 언론의 통로"라며 "탄핵사건 이후 나같은 틀딱(노인을 비하하는 말)의 하루종일 노인정이 되는 곳"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최근에는 '일베 근황'이라는 제목의 사진 한장까지도 네티즌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사진 속에는 PC방에 자리 잡은 노인이 일간베스트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태극기 집회 등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노인들에게 국한되는 듯 하지만, 이는 최근까지 주로 일베를 젊은 남성들이 이용하고 이 젊은이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노인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시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일베 근황'이라는 사진을 접한 한 네티즌은 "(일베 자체가) 최악이라 더 이상은 없을 줄 알았는데,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이도 "노인들의 경우 일베에서의 패악질과 은어 등에 불쾌감을 더 크게 느낄텐데, 정말 의아한 상황"이라고 황당해했다.

문제는 일베를 맹신하는 노인들이 일베의 왜곡된 정보를 진실로 믿으며 이를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박사모 홈페이지에는 일베에 있던 글을 옮겨 왔다는 글들이 상당수 게재돼 있다. 이 글에는 언론에 대한 비난은 물론 근거 없는 설문조사 등이 포함돼 있다.

일베가 노인들에게까지 영역을 넓힌 것에 대한 전문가들 분석은 아래와 같다.

배규한 국민대 사회학 교수는 "나이가 많은 세대는 젊은 세대와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강화하자는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노인들이 이번 촛불사태를 겪으면서 자신들의 목소리가 무시당한다는 생각을 하고 인터넷에 접속해 의견을 표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문제는 한정된 공간에서 가짜뉴스가 많이 돌고, 또 스마트폰 메신저 등을 통해 잘못된 정보를 퍼나르는 것"이라며 "그러나 이는 노인세대 만의 문제는 아니다"고 전했다.

배 교수는 "따라서 젊은층이 보수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노인세대를 무조건 무시하는 것 보다 그들을 조금 더 건전한 공간으로 끌어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인들이 자신의 의견과 정치적 성향을 표출할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 교수는 "노인들이 일베로 몰린다는 것은 그만큼 노인세대가 자신의 의견과 정치적 성향을 표출할 공간을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보수적인 정치성향이 일반적인 온라인 커뮤니티와는 맞지 않기 때문에 일베로 몰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택광 경희대 사회학 교수도 "노인세대가 일베에 참여하는 이유는 소외된 자신의 삶을 표출할 수 있는 장치로 이용하기 때문"이라며 "노인세대가 혐오사이트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인복지 문제 역시 해결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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