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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지난겨울 한 지인은 '너무 복잡해서 대학입시 준비할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했었다. 며칠 전 그에게 물었다. '무엇이 변한 것 같냐'고. 그는 좀 괜찮은 대통령이 생긴 거 말고는 작년 10월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작년 이맘때 우리는 뭘 하고 있었을까? 11월3일 최순실이 구속되었고 6일 안종범·정호성이, 11일엔 차은택이 구속되었으며, 18일엔 장시호가 체포되었다. 하루에도 오전 오후 단위로 사건들이 뻥뻥 터졌더랬다. 5천만이 '이게 뭐지?'를 연발하면서 언론의 속보 더미들 사이로 미로 같은 사건들을 추적해 나갔다.

15일엔 국회 국정조사 요구서가 제출되었고 17일엔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 와중에 10월30일엔 정의당이, 11월9일과 14일엔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대통령의 퇴진 당론을 채택했다. 마침내 11월20일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는 '탄핵하려면 하라'며 분노한 우리의 가슴에 기름을 쏟아부었고, 이튿날 야3당은 탄핵소추 추진을 당론으로 결정했다. 그렇게 우리는 긴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다.

대통령을 해임한 후 새 대통령을 선출하고 딱 반년이 지났다. 지난겨울 한 지인은 '너무 복잡해서 대학입시 준비할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했었다. 며칠 전 그에게 물었다. '무엇이 변한 것 같냐'고. 그는 좀 괜찮은 대통령이 생긴 거 말고는 작년 10월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마침 바른정당을 탈당한 의원들이 자유한국당으로 귀환하는 문제로 시끄럽던 날이었다. 그래, 이 당 저 당이 '떼로 모일까, 헤쳐 모일까' 하면서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아니다. 우리는 그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지난겨울과 올봄을 지나오면서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치 변한 게 없는 것처럼 느끼는 건, 집단적으로 함께 변해서 오래전부터 이렇게 살았던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을 탄핵에 이르게 만든 데는 50대 시민들의 공이 컸다. 작년 10월 전까지만 해도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콘크리트 지지율 30%'를 지탱해주는 핵심집단이라고 간주되었던 그 50대. 그런데 50대 시민들은 작년 10월 말부터 3월 탄핵에 이르기까지 흔들리지 않고 70% 이상의 탄핵 찬성 여론을 유지했다. 새 정부 등장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되듯이 지금의 50대는 이전의 50대가 아니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대구경북'의 보수 정치성향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18대 대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이 지역에서 모두 80%가 넘는 지지를 받았지만 19대 대선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득표율은 50%에 미치지 못했다. 어마어마한 변화다. 단지 누군가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뿐이다. 지금도 간혹 '빨갱이 낙인'을 전가의 보도처럼 착각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사람들은 그 낙인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눈살을 찌푸릴 뿐이다.

지난겨울 광장의 무수한 '촛불 동창회'들은 지금도 단체토론방을 유지하면서 정치 이야기를 한다. 이런저런 정치 팟캐스트, 정치 관련 유튜브 채널은 여전히 성황 중이다. 작년 겨울을 함께 나면서 안면을 튼 동네 사람들은 지금도 삼삼오오 모여 친목모임을 하고 함께 책도 읽고 집회도 나간다. 이런저런 소규모 정치 강좌들도 과거와 달리 좌석을 채우고 있다. 그렇게 시나브로 우리는 변해가고 있지만, 모두 함께 변해가는 통에 서로 잘 못 느끼는 것이다.

바른정당에서 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귀환하는 한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유권자가 지지해주지 않아서' 돌아간다고 했다. 틀렸다. 이 거대한 변화를 그는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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