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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도 이성의 외모에 호감을 느낀다?

예쁘다는 기준은 너무도 주관적이어서 절대적으로 객관화 될 수 없다. 내가 좋아하고 예쁘다고 느끼는 이성은 다른 이들에겐 정반대의 느낌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사람들은 경쟁사회에 익숙해진 나머지 다수가 향하는 호감의 방향성을 스스로의 강력한 주관이나 객관적 끌림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남자들은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적어도 내가 만난 남자들은 다 그렇다.

보는눈도 다르고 이상형도 다르다고 말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쁜 여자는 모든 남자가 좋아한다.

남자녀석들끼리 모였을 때 대화에 여성이 등장하면 그것이 친구의 누나이건 동생이건 혹은 전혀 관계도 없는 여성이건 "예뻐?"라는 질문은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여성들의 대화에서 "그 사람 잘생겼어?"라는 질문도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들에 한해서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녀석들부터 내 또래의 아저씨들까지 예쁜지 아닌지에 대한 확인은 애국조회 국민의례 만큼이나 예외없이 지나는 관문인 것 같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그 단순하고 본능적인 예쁜 여자 바라기가 시각장애인 수컷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상황 모르는 사람들은 목소리 예쁘고 부드러운 손 가진 이성에게 끌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당연한 것이고 "그런데 예뻐?"라는 질문이 빠지게 하는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때문에 중고등 학교 다닐때 그리고 대학다닐때 심지어는 지금의 직장동료들까지도 눈 못보는 나에게 자연스레 제공해 주는 도움의 영역중 하나도 내 눈 앞을 지나는 이성의 외모에 대한 설명이다.

내 주변의 모든 남자들이 나의 특별한 요구 없이도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내게 이성의 외모를 설명해 주는 것은 어쩌면 남성에게 있어서만큼은 너무나 큰 능력을 상실했다 여기는 반 사적 연민에서 기인한 순수하고도 순고한 본능적 나눔의 자세일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눈 멀쩡한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에게 외모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묻기도 하겠지만 주변의 설명과 평가에 따라 나의 이성에 대한 호감도는 매우 큰 폭으로 출렁거렸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관심도 없던 이성에게 한 번 더 관심을 두기도 하고 가까운 관계를 향하던 또 다른 이성에겐 이유없는 배신감마저 느꼈던것 또한 고백할 수 밖에 없는 나의 과거이다.

그런데 조금만 정신차리고 생각하면 절대적으로 완벽하게 예쁜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조선시대 미인도나 양귀비의 외모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TV에 나오는 최고미모라는 여성연예인들의 외모마저도 그리 오랜시간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참으로 희한한 것은 빠르게 변하는 최고미인의 기준들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남성들의 환호와 갈채는 늘 그 속도를 따라 몇몇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독자적 판단력 상실한 나의 호감도 또한 친구들의 판단과 도움에 따라 새롭게 예쁘다고 주장되어지는 누군지도 모르는 이성에게 촉수의 방향을 움직이고는 한다.

논리적으로 설명은 되지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맘이 움직이기에 자연스레 파도에 휩쓸려 가긴 하지만 헷갈리는 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입을 모아 못생겼다고 하던 어떤 운동선수에게 친구들은 입이 마르도록 예쁘다는 칭찬을 한다.

그건 남자선수에게나 여자선수에게나 특별한 예외가 없는데 나름의 규칙성이 있다면 그들은 국가의 위상을 빛내주었거나 국민 다수의 환호를 받는 사건 이후 평점이 급상승한다는 것이다.

학교라는 작은 공간에서도 어떤 계기를 통해 한 여학생의 매력이 발현되는 순간 남학생들은 박수를 보내면서 이구동성으로 예쁘다고 한다.

적지 않은 나이를 먹어가던 어느날 난 곰곰이 예쁜 여자 좋아하는 단순하고 무모한 내 경향성에 대해 차분하게 고민하고 분석하면서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예쁘다는 기준은 너무도 주관적이어서 절대적으로 객관화 될 수 없다.

내가 좋아하고 예쁘다고 느끼는 이성은 다른 이들에겐 정반대의 느낌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사람들은 경쟁사회에 익숙해진 나머지 다수가 향하는 호감의 방향성을 스스로의 강력한 주관이나 객관적 끌림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직업선택이나 꿈의 설정도 그러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쁘다고 주장하는 기준 안에 있는 이성에게 도전하는 것이 용기이고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쟁취라고까지 착각하는듯 하다.

TV 속 연예인 닮은 이성이 어떤 이에겐 진정 자신만의 이상형일 수 있겠지만 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애가 도전과 쟁취의 대상이고 경쟁의 목표점이 된다면 그것은 이루어지는 순간 급격히 의욕 떨어지는 정복욕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여전히 예쁜 여자를 찾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수가 예쁘다고 하는 이전의 기준이 아니라 나에게 있어 특별히 예뻐 보이는 이성을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친구들과 동료들은 여전히 내게 시각적 도움을 제공하겠지만 난 그들의의견은 그저 참고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한다.

그리고 노력의 결실을 맺어가기 시작할 쯤 아니 결실을 맺은 이후에라도 내가 당신에게 나의 예쁜 짝꿍을 소개시킬 쯤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내게 당신들이 객관적이라고 믿고 있는 기준으로 내 짝의 외모를 판단해 주지 않았으면 한다. 아직 미성숙한 내 마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이에게 보는 이의 설명은 때로는 실존보다 훨씬 큰 것을 상상하고 염려하게 하는 비수가 되기도 한다.

이글을 읽는 당신도 당신에게만 예뻐보이고 멋져보이는 이성을 꼭 만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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