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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 차이나타운? 이주 25년 ‘중산층'이 된 중국동포

  • 김태우
  • 입력 2017.11.06 04:49
  • 수정 2017.11.06 05:59

“중국동포라고 다들 거지꼴로 다닐 것 같나요? 모임 나가면 다들 백화점에서 옷 사 입고, 서로 ‘그 가방 어느 브랜드야?’라고 물어요.”

최근 중국동포 밀집 지역인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차이나타운’ 일대를 ‘우범지대’로 묘사한 영화 '범죄도시''청년경찰'이 잇따라 흥행에 성공하며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실제 대림동 모습이 저런 거냐’는 두려움의 정서와 중국동포에 대한 혐오담론을 부추기는 과도한 설정이라는 지적이 맞부딪친 것이다.

대림역 근처 차이나타운. 거리 양쪽 빌딩들이 모두 화려하게 디스플레이를 한 식당과 노래방, 미용실 등이 자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한겨레

이에 대해 중국동포 김아무개(47)씨는 “두 영화 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얘기”라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김씨는 대림동과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휴대전화 판매점 5곳을 운영하는 어엿한 ‘중국동포 사장님’이다. 올해로 한국 생활 18년째인 그는 같은 중국동포 출신 직원 12명에게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3년 이상 근무한 경우 직원 자녀의 학원비를 지원하는 등 ‘경영 마인드’를 갖춘 사업가다. “이제 대림동에는 사업을 크게 해 외제차 타는 중국동포들도 적지 않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실제 대림동에서 양꼬치집을 운영하는 한아무개(51)씨는 차량 가격이 억대에 이르는 벤츠와 지프를 보유하고 있다.

서울의 대표적 차이나타운인 대림동을 중심으로 성공한 ‘중국동포 사장님’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맨땅에서 시작해 이제는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으로 자리잡은 중국동포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지난해 국제이주기구(IOM) 이민정책연구원이 공개한 ‘국내 체류 중국동포 현황 조사’를 보면, 2016년 7~10월 사이 서울·경기지역에 거주하는 만 18살 이상 중국동포 1880명 가운데 지난 1년간 소득이 ‘2000만~3000만원’(393명·20.9%), ‘3000만~4000만원’(110명·5.9%)이라고 답한 비율이 26.8%에 이르렀다. 또 한 해 소득이 ‘4000만원 이상’이라고 답한 상대적 고소득층도 69명(3.7%)이었다. 적어도 10명 가운데 3명은 중산층(중위소득의 50~150%)에 해당한다는 통계 수치다.

가게 6곳 거느린 ‘사장님’으로

중산층으로 발돋움한 중국동포 사업가들은 주로 1990년대 후반 한국에 들어와 식당과 건설현장 등에서 일해 모은 돈으로 2000년대 중·후반 대림동에 자신의 가게를 연 이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에서 성공하겠다’고 이를 악물었던 성실성과 마침 성장하기 시작한 중국동포 커뮤니티에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게 이들의 성공 비결로 꼽힌다.

2007년 휴대전화 판매 사업을 시작한 김씨는 “하루 15시간 넘게 일하느라 심장질환이 생겼을 정도”라고 당시를 돌이켰다. 사업 초기엔 1년 365일 가게를 쉰 적이 없었다. 사업이 안정된 지금도 설날과 추석 당일 이틀만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일하느라 바빠 미처 휴대전화 수리를 맡기지 못하거나 공과금을 내지 못한 단골이 있을 경우 김씨가 대신 나서 해결해주기도 했다.

올해로 한국 생활 19년째인 ‘미용실 사장님’ 안아무개(47)씨도 ‘코리안 드림’의 주인공이다. 안씨는 한국에 먼저 온 사촌 언니가 살았던 광주광역시 등지에서 식당 일을 하거나, 휴대전화 조립 공장을 다니며 돈을 모았다. 이후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해 2006년 대림동에 미용실을 차렸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일반적 스타일과 달리 ‘샤기 컷’같이 강한 이미지를 선호하는 중국동포들의 취향을 잘 맞춘 덕에 미용실은 번창했다.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안씨는 현재 대림동 일대에 식당 3곳과 미용실, 노래방, 부동산 등 가게 6곳을 운영하고 있다. 안씨는 “한국에서 ‘성공했다’고 말할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안정적으로 자리는 잡은 상태”라고 말했다.

오정은 국제이주기구 이민정책연구원 연구교육실장은 “90년대 이후 한국 내 중국동포 커뮤니티가 점차 확대되면서 중국음식점 같은 중국동포 관련 사업의 수요가 증가했다”며 “같은 중국 출신들끼리 서로 물건을 사고팔아주는 등 강한 결속력을 바탕으로 중국동포 상인들의 사업이 번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주자 특유의 결속감과 중국동포의 자생적 커뮤니티 형성이 ‘중국동포 사장님’이 등장할 수 있었던 구조적 배경이 됐다는 설명이다.

‘중국동포=범죄자’ 시선엔 상처도

한국 사회에서 중국동포는 여전히 소수자다. 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하는 동포들은 물론, 중산층으로 성공한 사장님들이라고 차별의 시선이 피해 가진 않는다.

중국동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미디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난 8·10월에 각각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청년경찰'은 중국동포들이 밀집한 서울 대림동·가리봉동을 범죄 소굴로, 중국동포들은 납치·인신매매·살인을 일삼는 범죄자로 묘사했다. 두 영화는 각각 관객 565만명, 627만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그만큼 중국동포에 대한 고정관념도 더욱 짙어졌다.

지난 8월 '청년경찰' 개봉 직후 중국동포 단체들은 영화 상영 중단과 제작사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항의 집회를 벌여왔다. 지난달 23일에는 중국동포 공동대책위원회가 영화에 대한 법적 대응 방침을 발표해 ‘중국동포 비하’ 논란은 소송전으로 비화한 상황이다.

중국동포들은 대중문화에서 드러나는 ‘무차별적 비하’에 억울함을 호소한다. 중국동포를 뭉뚱그려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 때문에 이유 없는 차별을 받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 '청년경찰' 상영금지 촉구 대책위원회’의 박옥선 집행위원장은 “영화들의 영향으로 한국에서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등 이민자 혐오가 이전보다 오히려 더 심각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국동포들이 겪는 일상적인 어려움은 차고 넘친다. 중국동포는 거주나 신원보증이 불확실한 ‘외국인’ 신분이기 때문에 카드사의 신용평가에서 낮은 평가를 받기 쉬운 경우가 많다. 대림동에서 양꼬치집을 운영하는 한아무개(51)씨는 “사업을 하다보니 한달 지출액이 1000만원 이상인데도, 카드한도액이 300만원에 불과하다”며 “현금을 주로 준비해서 써야 하기 때문에 불편함이 크다”고 말했다.

관공서에서 업무를 보기 위해 영문으로 이름을 써야 할 때도 난감한 경우가 생긴다. 한국인과 똑같이 한자로 된 우리 식 이름을 갖고 있지만, 중국동포들의 신분증인 외국국적동포 거소신고증에는 중국식 발음으로 읽은 이름을 영문으로 표기한다. 조선족 학교를 나와 학창 시절 영어를 제대로 배운 적 없는 한씨는 “연변에서도 우리 것을 지키겠다고 한글로 공부하고 한글로 시험을 봤는데, 정작 조국에 돌아와서는 배운 적도 없는 영어로 이름을 적어야 했다”며 씁쓸해했다.

‘내 뿌리는 한국’…귀화 늘어

중산층으로 발돋움한 중국동포들은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를 원한다. 귀화했거나, 귀화 신청을 고려하고 있는 이도 상당수에 이른다. 경제적 안정을 이룬 뒤 일가친척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구로구 신도림, 경기도 안산 등 차이나타운에 정착하는 경우도 많다. 정작 이들이 태어난 중국 동북3성에는 연고자가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신의 ‘뿌리’가 한국이라는 인식도 귀화를 결정하게 되는 배경이다. 미용실로 성공한 안아무개씨는 “처음엔 ‘얼른 돈 벌어 고향으로 가자’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중국에 남은 가족도 없다”며 “조부모의 고향이 한국인 만큼 뿌리를 찾아 귀화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해 귀화한 중국동포는 2014년 5154명, 2015년 5116명 등 한해 5000명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에도 9월까지 2481명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본국(중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한국에서 영구 거주가 가능한 영구체류(F-5) 비자를 받은 중국동포도 2012년 5만1344명에서 올해 9월 기준 8만8029명으로 60% 넘게 늘었다.

단순 취업 방문이 아니라 장기체류가 가능한 재외동포(F-4) 자격을 부여받은 중국동포도 2012년 11만6989명에서 지난달 기준 30만531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2016년 국내 체류 외국인 204만9441명 가운데 중국동포는 가장 많은 29%(59만3585명)를 차지한다.(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 김숙자 재한동포총연합회 회장은 “중국동포들이 한국에 온 지 20여년이 됐지만 여전히 차가운 시선이 안타깝다”며 “한국 사회 구성원이자 이웃으로 인식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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