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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리처드슨과 '예술'이라는 보호막 속에 숨어 성추행을 일삼아 온 남성들의 이야기

‘보그’와 ‘GQ’ 등 패션지를 발행하는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이 지난 십여 년 간 여성 모델들을 성추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포토그래퍼 테리 리처드슨과 연을 완전히 끊었다.

보그 등 컨데나스트 패션지는 리처드슨이 모델을 성추행했다는 루머가 업계에 돌기 시작했던 2010년부터 그와 협업을 중단한 바 있다. 컨데나스트는 허프포스트 미국판에 “컨데나스트와 테리가 함께 하기로 예정된 작업은 없다. 그 어떤 종류의 성희롱도 받아들일 수 없으며,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라며, 리처드슨의 화보를 싣지 않겠다고 밝혔다. 불가리와 발렌티노 등 여러 브랜드 역시 리처드슨과의 관계를 단절한 바 있다.

‘테리 삼촌’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리처드슨은 그간 킴 카다시안, 마일리 사이러스, 버락 오바마 등 다양한 유명인사를 사진에 담았다. 테리 리처드슨의 성추행 전적은 이미 패션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악명 높았다. 모델 샬럿 워터스를 촬영하던 도중에는 그의 알몸을 핥고 얼굴에 사정했으며, 제이미 펙과 작업하던 당시에는 가슴을 움켜쥐고 자신의 성기를 만져달라는 요구도 했다고 전해졌다.

리처드슨의 스타일은 ‘슬리즈 패션’(sleaze fashion)이라 불린다. 누드, 성적 비유, 그다지 창의적이라 할 수 없는 막대사탕 등이 등장하는 사진을 뜻한다. 올해 52세가 된 리처드슨은 비쩍 마른 몸매에 두꺼운 힙스터 안경과 플라넬 셔츠를 즐겨 착용하고, 변태적이라는 평판을 받아들이며 호색한이 된 괴짜의 이미지를 투영한다. 그는 앞서 “나는 수줍은 아이였는데, 지금은 발기한 상태의 막강한 남자가 되어 여성들을 다 지배한다”라며 자기 자신을 설명한 바 있다. 이보다 더 불편한 발언도 있었다. 지난 2007년에는 “누굴 아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 성기를 빠는지가 중요하다. 내 청바지에 구멍이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 방식은 “사람들과 협업하며 그들의 섹슈얼리티를 탐구하고 사진을 찍는 것”이라고 했다. 워터스는 리처드슨과의 작업 경험이 “역겨웠다”며, “몸이 완전히 마비되고 질겁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리처드슨은 오래전부터 성폭력에 대한 비난은 자신의 작업 방식에 대한 오해일 뿐이라고 치부하며, ‘그런 루머들’은 “예술적 시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해왔다. 리처드슨의 대변인은 지난달 컨데나스트가 리처드슨과의 연을 끊기로 했다는 내용의 이메일이 유출되자, 버즈피드 뉴스에 성명을 내며 이와 비슷한 방어 논리를 펼쳤다.

테리는 이 이메일 내용을 접하고 실망했다. 특히 오래된 이야기들에 대해 전에 언급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성적으로 노골적인 작업으로 알려진 아티스트이므로, 작업 중 모델과의 교류는 섹슈얼하고 노골적이지만 그의 작업의 대상들은 모두 합의 하에 참여했다.

폴 고갱의 '아름다운 땅'.

예술계는 패션계와 마찬가지로 자유분방하고 전복적이며 비도덕적인 아이디어를 중시해왔다. 이 때문에 리처드슨과 같이 성추행을 일삼아온 인물들은 ‘화려한 일탈’이라는 핑계 아래 숨을 수 있었다. 이들은 ‘일탈적 영웅’으로 칭송받으며,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정치적 정당성을 넘어 생생하고 진실된 장면들을 포착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퍼플’의 에디터인 올리버 잠은 ‘더 컷’과의 인터뷰에서 리처드슨을 두둔하며 “아티스트 앞에서 착취당하는 일은 없다. 지루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이야말로 착취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다수가 여성으로 이루어진 모델계는 대다수가 남성으로 이루어진 아티스트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화가, 조각가, 사진가 등에게 몸을 보여준다. 이러한 성별 불균형은 오래된 현상이지만, 이에 대한 분석은 부족했다. 아티스트 겸 작가인 크리스틴 클리포드는 허프포스트에 “예술 학교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 중 하나는 여성의 나체를 그리는 것이다. 젊은 여성의 신체는 언제나 그림의 대상으로 쓰인다. 예술 학교에서 그렇게 배운다”라고 말했다.

미술관에는 여성의 나체를 그린 백인 남성 미술가들의 그림이 가득하다. 수동적인 포즈를 담은 그림도 많다. 또한, 성적으로 친밀해지는 것이 작업 과정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파블로 피카소는 예술과 성적인 욕망을 똑같이 여긴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폴 고갱은 폴리네시아의 미성년 여성들을 ‘성노예’로 삼고 학대했다. 그 때문에 오늘날의 비평가들은 고갱의 작품을 불편한 시선으로 보곤 한다. 그렇지만 고갱의 작품은 미술관에 전시되고 학교에서 가르치며, 결국 존경을 받는다.

리처드슨 같은 남성들은 이런 행동으로 비난을 받으면 역사를 변명으로 삼곤 한다. 예술사를 끌어들여 합의 없이 모델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문제를 덮으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리처드슨은 “로버트 메이플소프와 헬무트 뉴튼 등 내 이전 세대의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성적인 이미지는 내 사진의 일부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그는 메이플소프가 뉴튼이 자신의 위치를 악용해 모델들을 성적으로 착취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티스트라고!”라는 말은 예술가들의 ‘일탈적인 사상’과 이런 사상이 현실화 될 경우에 타인에게 해를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어떠한 변명도 되지 못한다.

그 사상과 사상이 누군가에게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 사이의 관련성은 매우 모호하다. 예술적 창조의 전제 조건인 자유로운 표현은 현대 아티스트들이 거리낌 없이 행동하게 해줄 뿐 아니라, 위험과 일탈에 대한 보상을 제공한다. 예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에게 주어지는 ‘허용’과 ‘보상’은 권력이 없는 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이에 행위 예술가 엠마 설코위츠는 허프포스트에 “이건 마치 알트라이트(대안 우파)가 언론의 자유라는 단어를 끌어다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표현의 자유이기는 하지만, 과연 누굴 위한 자유인가?”라고 물었다.

설코위츠의 '매트리스 퍼포먼스'.

설코위츠는 지난 2012년 컬럼비아 대학교 재학 중 동급생에게 강간당한 후로 대학 측의 부적절한 대응에 항의하며 매트리스를 들고 다니는 행위 예술을 한 바 있다. 그는 성폭력 혐의가 제기된 남성 아티스트들의 작품으로만 구성된 가상의 전시회를 계획하기도 했다. 설코위츠는 당시 “우디 앨런과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테리 리처드슨의 사진을 전시하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여성의 신체를 학대하는 것과 이미지를 착취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 하지만 지난 10월 뉴욕 여성 작가 갤러리서 ‘아트와 섹스’라는 제목의 토론을 이끈 클리포드는 이 두 가지가 관련이 깊다고 주장했다. “남성이 여성의 섹시한 인스타그램 사진을 가져다 자신의 작업물로 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은 강간 문화와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는 “남성이 여성의 몸을 소유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을 뒀다고도 덧붙였다.

클리포드는 지난 2014년, 20대 모델과 아티스트,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 등이 섹시한 포즈로 촬영한 인스타그램 사진을 캡처해 출력한 다음, 이를 10만 달러에 판매했던 예술가 리처드 프린스를 언급했다. 프린스의 작업물 중 상당수는 여성이 직접 촬영한 셀카였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돈을 받지도, 사진 사용을 허락하지도 않았다.

예술 비평가 제리 슐츠는 프린스의 작업 방식이 ‘천재적인 트롤링’이라며, 그를 “취향이 확고한 마법사”라고 불렀다. “험버트 험버트가 롤리타에게 한 것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집중했다”라고도 덧붙였다. 아티스트 오드리 월렌의 생각은 다르다. 프린스의 작업에 의도치 않게 포함된 월렌은 i-D와의 인터뷰 중 “나이 많고 성공한 백인 이성애자 남성 아티스트가 젊은 여성의 몸을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는 건 놀랍지 않다. 내가 이상주의적일지는 몰라도, 나는 예술이 현 상황을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아티스트 레아 슈레이거는 예술사의 대부분이 프린스와 리처드슨 같은 남성 예술가들이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적인 여성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남성에게 부여받지 않으면 힘을 빼앗긴다. 리처드 프린스나 하비 웨인스타인 같은 사람들의 손으로부터 부여받는 것이다. 여성들은 남성의 손을 통해 쟁반에 올려진 채로 대중에게 주어진다”라고 주장했다.

레아 슈레이거의 작품.

한때 모델로 활동하던 슈레이거는 이제 자화상을 촬영한다. 창조적 자주성을 전적으로 손에 쥐고 스스로를 촬영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예술계의 섹시한 여성’으로 표현해온 슈레이거는 지금도 예술계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많다고 밝혔다. 남성 아티스트들에게 무시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나 말로 성추행을 당한 적도 있었다는 것. 그중에서도 ‘최악’이었던 경험은 한 갤러리 디렉터가 성폭행했던 순간이었다.

슈레이거는 “아주 유명한 미술상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내 셀카가 수치스럽고, 내가 내 예술로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내게 그런 말을 하는 동시에 내 사진을 보며 자위하고 사정하고 있던 게 분명했다.”라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그는 또한 한 여성이 자신의 몸을 더듬은 일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웨인스타인에게 성추행당했다고 밝힌 여성들은 놀랄 정도로 많았다. 그 이후, 할리우드 이외의 업계에서 일하는 여성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덕에 거의 모든 업계에서 여성을 상대로 한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금까지 아마존 스튜디오의 로이 프라이스와 제임스 토백 감독, 마술사 데이비드 블레인, 복스의 록하트 스틸, 아트포럼의 나이트 랜더스먼 등의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설코위츠는 웨인스타인에 대한 폭로와 그에 따른 반향을 보며, 남성들의 성추행 전적이 더 많이 드러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비 웨인스타인 사건 이후, 우리에게는 새로운 용어가 생겼다. 바로 ‘하비 웨인스타인’이다. 이제 우리는 막강한 지위로 여성들을 이용하는 남성을 ‘하비 웨인스타인’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대중의 인식에 새로운 것이 들어오게 되면 사회 전반적으로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슈레이거는 지금도 예술계에 이와 같은 문제가 팽배하며, 여성들의 공포는 아직도 널리 퍼져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설코위츠는 “예술계가 여성의 성적이지 않은 이미지, 혹은 남성이 만든 여성의 성적인 이미지를 선호한다”며 “이 때문에 여성들은 ‘무성적’인 매력을 같도록 숨어지내고 수녀같이 행동하도록 강요받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런 추세는 “퇴보”이며,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여성들이 자신의 성의 주인이 되고, 거기서 힘을 얻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또 “여성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것을 통해 존중받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혁명적일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리처드슨의 행동은 웨인스타인 사건으로 여러 업계에서 권력을 쥔 남성들의 성추행 전적에 대한 폭로가 쏟아지기 훨씬 전부터 문제가 되어 왔다. 현재 예술계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하지만 난 아티스트라고’라는 변명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지시와 강압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권력의 불균형을 규탄하고 있다. 비판은 남성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정의하고 ‘허락’하는 예술계로 향해야 한다. 지금의 예술계는 여성들이 스스로의 이미지를 통제할 힘을 빼앗고 있다.

 

허프포스트US의 'The Case Of Terry Richardson, And The Predatory Men Who Hide Behind ‘Art’'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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