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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KIA 우승 기다렸어요"...유기견 '일레븐' 이야기

  • 강병진
  • 입력 2017.11.02 10:42
  • 수정 2017.11.02 10:43

"저도 우승 기다렸어요".

2011년 따사로운 봄바람이 불던 5월의 어느 날. 광주 무등야구장 근처에 한 마리의 유기견이 나타났다. 견종은 발바리, 암컷이었다. 그러나 몰골이 처참했다. 오물을 뒤집어쓴듯 털은 더러웠고 걸음도 제대로 옮기지 못했다. 왼다리 골절이 심해 거의 잘리기 직전이었다. 누군가 버렸던지 아니면 사고를 당했던지 추측할 뿐이었다.

매일 야구장 근처에 등장하자 안쓰럽게 여긴 KIA 타이거즈 야구단의 한 직원이 밥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발을 치료해주고 싶었으나 밥만 먹고 사라질 뿐 좀처럼 곁을 주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얼굴을 익혔고 결국 보름만에 동물병원에 데려가는데 성공했다. 자비 50만원(유기견이면 50% 할인)을 들여 정성껏 치료를 했다. 잘먹기 시작하자 다리도 회복했고 털도 윤기를 찾았다. 그때부터 야구장 살이를 시작했다.

이름이 필요했다. 직원은 한국시리즈 통산 11번째 우승을 하라는 의미로 '일레븐(eleven)'으로 지었다. 일레븐은 자신에게 정을 준 직원을 주인으로 생각했다. 항상 주인의 승용차 밑에서 기다렸다. 멀리서 차소리만 들리면 달려와 반겼다. 주인은 집을 마련했고 주말을 포함해 매일 밥을 주었다. 자신이 출장으로 자리를 비울때는 아내가 달려와 대신 챙겨주었다. 주인은 마케팅팀의 문재승 차장이다. 문 차장이 큰 아빠라면 두 번째로 잘 챙겨주는 홍보팀의 한근고 과장은 '작은 아빠'이다.

일레븐은 챔피언스필드 개장 이후에는 지하 주차장에서 기거하고 있다. 한때 SBS 인기 프로그램 '동물농장'에서 촬영을 시도할 정도로 사연에 관심을 보였다. 촬영은 오토바이만 나타나면 사나워지는 일레븐의 비협조로 무산되었다. 일레븐은 오토바이를 보면 지금도 거세게 짓는다. 문 차장은 "학대 혹은 유기를 당할 때 오토바이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챔스필드와 이별을 할 뻔도 있었다. 오토바이를 너무 오래 쫓다 그만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보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일레븐 이야기가 지역 언론에 소개되었고 마침내 약 3km 정도 떨어진 용봉동 비엔날레 공원의 주차장에 비슷한 개가 있다는 제보가 돌아왔다. 문 차장이 서둘러 차를 몰고 장소에 도착하자 일레븐이 주인의 차소리를 기억하고 한걸음에 달려와 반갑게 재회했다.

KIA 선수들도 일레븐을 마스코트로 여기고 있다. 힘겨운 사흘간의 원정을 마치고 칠흑같은 새벽 야구장에 도착하면 일레븐이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다보니 정이 들었다. 좀 미심쩍지만(?) 경기의 승패를 판단하는 능력까지 생겼다고 한다. 문 차장은 "희한하게도 이길 때와 질 때 일레븐의 반응이 다르다. 선수들의 얼굴 표정이 다른지, 이기고 돌아오면 활발하게 애교를 부르는데 지고 돌아온 날이면 얼굴만 슬쩍 보고 다시 집으로 획 돌아간다"고 말했다.

벌써 6년 넘게 일레븐의 야구장 살이가 이어졌다. 나이는 대략 10살로 추정되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60~70살 정도의 노견이지만 아픈 곳은 없다. 일레븐은 이번 2017 한국시리즈 1차전을 앞두고 깨끗하게 목욕했다. 6년만에 자신에게 찾아온 첫 한국시리즈를 정갈한 마음으로 맞이했다. 선수들이 10월 30일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두산을 누르고 통산 11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선수들에게는 8년만의 감격이었다. 드디어 일레븐도 이름에 담긴 소망을 풀었다.

그런데 우승을 하기전부터 선수들은 고민에 빠졌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면 그대로 계속 일레븐으로 불러야 하는가였다. 우승하면 앞으로는 12번째 우승을 위해 '투웰브(twelve)'로 바꿔야 되겠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과연 일레븐의 이름을 바꿔야할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일레븐도 우승 특식 보너스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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