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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주혁이 우리에게 남긴 기억들 3가지

  • 강병진
  • 입력 2017.10.30 16:37
  • 수정 2017.10.30 16:38

배우 김주혁이 사망했다. 10월 30일 오후 4시 30분경. 서울 강남구 삼성동을 달리던 그의 차량은 앞서 가던 차량을 받은 후, 어느 아파트로 돌진하며 전복되었다. 김주혁은 병원으로 이송된 후,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오후 6시 30분경, 사망선고를 받았다. 앞 차량의 운전자는 그가 추돌 후 가슴을 움켜쥐었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김주혁이 급성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0월 30일 오후 저녁, 대부분의 매체에 보도된 사고 경위에 대해 많은 사람은 ‘오보’일지 모른다고 답했다. 김주혁의 죽음은 믿기 싫은 게 아니라,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김주혁의 영화와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작품 속에서도 그의 죽음을 상상한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작품속에서 비장하거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적이 거의 없었다. 대신 그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헌신적인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었고, 때로는 그녀를 바라만 보는 로맨틱 코미디의 찌질한 남자이기도 했으며 또 ‘1박 2일’에서 동생들을 살뜰히 챙기는 ‘구탱이형’이기도 했다. 지금 당장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봤던 김주혁을 떠올려본다면 여러 종류의 웃는 얼굴이 기억날 것이다. 밝게 웃거나, 살짝 웃거나, 흐뭇하게 웃거나. 배우로서의 김주혁이 남긴 기억의 상당수가 그런 미소와 웃음이었다.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소년

김주혁은 1972년 배우 김무생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배우인 아버지를 보고 자랐지만, 정작 그의 꿈은 ‘수의사’였다. 지난 2010년 ‘뉴스엔’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배우를 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이후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고, 잠시 극단 생활을 했던 김주혁은 1998년 S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그가 맨 처음 눈길을 끌었던 건, SBS 드라마 ‘카이스트’였다. 이 드라마에서 그는 정말 공부를 재미있어 하는 박사과정생을 연기했는데, 낯선 얼굴의 배우를 본 시청자들은 그가 진짜 카이스트에 다니는 학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이후 영화 ‘세이예스’(2001)와 ‘YMCA 야구단’(2002)등을 거쳐 드라마 ‘흐르는 강물처럼’(2003)으로 시청자의 눈에 안착했다.

한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홍반장

김주혁을 스타의 반열에 올린 작품은 영화 ‘싱글즈’(2003)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4)이었다. 각각 배우 장진영, 엄정화의 상대역을 연기했던 그는 무심한 듯하지만 자상한 남성을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이 두 편의 영화에서 관객들의 호응을 받은 그는 이어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2005)의 최상헌을 만나게 된다. 대통령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 강력계 형사인 이 남자 또한 사랑을 받았다. 이후 김주혁은 여러 편의 작품에서 순애보로 가득한 남자를 연기했다. ‘광식이 동생 광태’(2005)의 광식은 남성관객에게도 큰 공감을 얻은 캐릭터였으며, 다른 남자와도 결혼하겠다는 아내를 내치지 못하는 ‘아내가 결혼했다’(2008)의 노덕훈 또한 김주혁만이 연기할 수 있는 남자였다. 사실상 2000년대 중반 이후의 한국 로맨틱 코미디에서 김주혁은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그가 이후에도 ‘방자전’(2010)을 비롯해 ‘커플즈’(2011), ‘뷰티 인사이드’(2015), ‘좋아해줘’(2015)등에 출연해서 보여준 매력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그가 성인이 된 택이를 연기한 것도 마찬가지다. 김주혁은 자신의 전성기 대부분을 따뜻하고, 사려깊고, 부드러운 남자를 연기하며 보냈다. 사람들 또한 그의 그런 모습을 가장 사랑했다.

배우로서 시작한 새로운 도전들

“다른 연기를 하고 싶은 갈증이 컸다. “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 당시 영화전문지 ‘씨네21’과 가진 인터뷰에서 김주혁은 “악역의 얼굴이 낯설지 않다”는 평가에 반색했다. “천만다행이다. 솔직히 로맨틱 코미디에 질릴 대로 질렸고 어느 순간엔 로맨틱 코미디 연기가 재미없어졌다.” 2000년대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주인공이었던 그는 2010년도부터 조금씩 새로운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9시즌이 끝난 ‘SNL 코리아’의 1시즌 첫번째 게스트가 김주혁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2013년 부터는 ‘해피선데이 - 1박2일 시즌3’에 출연해 ‘구탱이형’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여행지에서 만난 일반인들의 인기투표에서 항상 꼴지를 하는 굴욕을 겪으면서도 동생 멤버들을 최우선으로 챙기는 모습들을 남겼다.

예능 프로그램 도전을 끝낸 김주혁은 영화 ‘비밀은 없다’(2015)를 시작으로 이전에는 거의 한 적이 없었던 악역연기에 도전했다. ‘공조’와 ‘석조저택 살인사건’에서는 부정할 수 없는 악역을 연기했고, 차기작인 ‘독전’(가제)에서도 중국 마약 조직의 보스를 맡았다. ‘씨네21’ 인터뷰에서 그는 2017년 한해동안 시도할 여러 캐릭터들을 소개한 바 있다. “‘흥부’에선 백성을 생각하는 의인 역이고, ‘짝꿍’에선 사연 있는 건달, ‘열대야’에선 연쇄살인범을 잡는 형사로 출연한다. ‘독전’에도 짧게 나오는데 거기서는 중국 마약조직의 ‘돌아이’ 같은 캐릭터다.” 분명 김주혁은 이전과 다른 남자들을 연기한다는 사실이 즐거웠을 것이다. 2017년 10월 30일의 비극이 아니었다면, 김주혁은 더 다양하고 많은 기억을 남겨주었을 것이다. 그의 나이는 올해 마흔 여섯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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