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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백일잔치' 과연 축하할 일인가

아쿠아플라넷은 2014년 개장 당시부터 대형 육상 포유동물인 재규어 두 마리를 시험관 같은 유리벽 안에 전시해서 논란이 되었다. 사방이 뻥 뚫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인데도 관람객의 눈을 피해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도 찾아볼 수 없었고, 야외방사장도 없었다. '유리감옥' 속의 재규어들은 사육장 안을 반복적으로 왔다갔다하는 정형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9월, 한화 아쿠아플라넷 일산(이하 아쿠아플라넷)은 백일잔치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백일잔치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재규어. 6월 24일에 태어난 아기 재규어 '잭'의 백일을 축하한다며 실타래, 청진기 등을 깔아놓고 마치 사람의 돌잔치 같은 장면도 연출했다.

그런데 과연 아쿠아플라넷의 재규어 백일이 축하해야 할 경사인지는 의문이다. 아쿠아플라넷은 2014년 개장 당시부터 대형 육상 포유동물인 재규어 두 마리를 시험관 같은 유리벽 안에 전시해서 논란이 되었다. 사방이 뻥 뚫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인데도 관람객의 눈을 피해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도 찾아볼 수 없었고, 야외방사장도 없었다. '유리감옥' 속의 재규어들은 사육장 안을 반복적으로 왔다갔다하는 정형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관련기사)

한화 아쿠아플라넷 일산이 공개한 아기 재규어 '잭'의 백일 사진

두 마리가 살기에도 비좁고 열악한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인공증식으로 한 마리가 늘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허술한 관련법 때문이다. 2014년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의 개정으로 재규어 같은 국제적 멸종위기종 동물을 인공증식하기 위해서는 시설기준을 갖추어 환경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 기준이 터무니없이 부실하다.

'사전허가' 규정 어긴 한화에 '5마리 증식' 허가 내 준 환경부

재규어의 경우 14제곱미터의 면적만 제공하면 된다. 그나마 야외방사장과 내실을 뭉뚱그린 숫자다.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에서는 재규어 사육장의 최소 면적을 야외방사장이 91.4제곱미터, 내실은 24제곱미터로 규정하고 한 마리가 늘어나면 각각 50%의 면적을 추가로 조성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면적 기준 외에도 관람객에게 노출되면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높이를 높인 휴식공간과 다양한 은신처를 제공하고, 헤엄을 치는 습성을 고려해 웅덩이, 연못, 폭포 등의 형태로 물을 제공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더욱 경악스러운 사실은 환경부가 애초에 한 마리도 아닌 다섯 마리에 대해 인공증식 허가를 내 주었다는 사실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용득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11일 환경부는 한화 아쿠아플라넷 일산에 재규어 5마리에 대한 인공증식허가증을 발급했다.

심지어 동물이 태어나기 전에 사전허가를 받아야 하는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허가증은 재규어가 태어나고 2주가 지나서 발급되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아쿠아플라넷 측에서 임신 사실을 몰랐고, (재규어의 상태가) 좀 이상해서 6월 16일 인공증식허가 신청을 한 후 1주일 만에 새끼가 태어났다"고 해명했다. 사전 허가를 받지 않고 재규어를 인공증식하는 것은 야생생물법 위반으로 처벌대상이지만, 이미 신청서가 접수되었다는 이유로 처벌도 받지 않았다. 결국 재규어의 번식은 종 보전을 위한 계획 하에 이루어진 것도 아닌, 무책임한 '동물 수 불리기'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흙 한 줌, 풀 한 포기 없는 사자 사육장에서 '동물 수 불리기' 능사인가

이용득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 동안 환경부가 인공증식허가서를 발급한 대형 고양이과 동물의 숫자는 33마리에 달한다.

지난 8월 MBC 예능 프로그램 <하하랜드>에서는 김해의 한 동물원에서 태어났다는 아기사자 두 마리의 모습을 방영했다. 이곳 역시 지난 8월 18일 환경부에서 사자 2마리에 대한 인공증식허가서를 발급받았다. 그런데 과연 해당 동물원이 국제적 멸종위기종 1급인 사자를 인공적으로 증식할 만 한 자격이 되는 시설인지는 의문이다.

별도의 인공포육실도 없이, 사육사 숙소로 보이는 곳에서 아기사자는 고양이, 코아티와 함께 뒤섞여 사육되고 있었다. 상주 수의사도, 질병관리 매뉴얼도 없이 면역력이 약한 어린 동물을 돌보다가 설사를 하자 동물병원에 데려가고, 눈병과 호흡기 질환에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듣는 장면도 여과 없이 방영됐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동물원의 사자 사육장 상태다. 해당 동물원은 '사자, 호랑이를 유리창 하나 너머로 볼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다. 방송에서는 유리벽을 긁으며 새끼의 냄새를 맡으려고 하는 암사자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암수 한 쌍이 살고 있는 방 한 칸 크기의 실내사육장은 전체가 콘크리트로 되어 있다. 새끼 사자들은 9월부터 역시 투명한 사육장에 넣어져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이미 포화상태로 보이는 동물원에서, 아기사자들이 성체가 되었을 때는 어떤 방식으로 길러질지 의문이다.

실내사육장 안의 어미사자가 새끼를 알아보는 모습. 사육장 안에는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다. (출처:MBC<하하랜드>방송 갈무리)

지난 10월 28일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은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 동물원법은 현행법은 동물원 설립과 운영의 근거만 마련했을 뿐, 적절한 사육환경이나 관리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아 열악한 환경에 동물을 방치하거나 강압적으로 훈련하는 등의 동물학대를 방지할 수 없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번 발의안은 환경부가 동물원 및 수족관 동물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동물 종 별 관리지침을 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형 맹수류가 흙조차 밟을 수 없는 비정상적인 동물원에 종 보전과 교육의 기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생명경시풍조를 조장하고 동물에 대한 왜곡된 정보만 전달할 가능성이 있다. 인공증식을 무분별하게 허가하는 것보다 종에 맞는 시설기준을 세우는 것이 절실하다. 이번 동물원법 개정안의 통과를 시작으로 동물원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동물원만 국가의 관리와 지원을 받아 운영될 수 있도록 관련법을 정비해야 한다.

이형주 |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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