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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녹농균, 사망, 쟁점에 대한 팩트 체크

동물에게 물려서 녹농균 감염에 걸린 게 6케이스밖에 없다? 희박한 확률이지만 분명 사건 사고는 6케이스를 넘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응급실을 거쳐 입원도 하지 않은 환자에게 단순 드레싱을 시행하다 녹농균에 감염될 확률보다는 높다고 보고 있다.

  • 여한솔
  • 입력 2017.10.26 12:42
  • 수정 2017.10.26 13:00
ⓒTatomm via Getty Images

저는 내과전문의가 아니라 제가 잘못 지적하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틀리지 않게 내과 책과 검증된 논문들을 중심으로 쓰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개에 물려 죽은 사건 간단한 개요

 

다들 아시리라 생각하여 정말 짧게 쓰겠습니다.

9월 30일 최 씨 가족 반려견 프렌치 불독에 '한일관' 여주인 김 모 씨가 물렸다. 개가 문 곳은 깊게 살이 패였고, 안에 피가 찬 상태였다. 10월 5일 여주인 김 모 씨로부터 '컨디션이 안 좋다, 몸살 걸린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당시 상처는 아물고 있었고 통증도 없는 상태였다. 10월 5일 밤새 앓다가 6일 아침 '오른쪽 어깻죽지가 결리고 숨쉬기 답답하다'고 말해 백병원 응급실(압구정에 거주하지만 친척이 의사로 일하고 있는 백병원으로 간 것으로 보인다)로 내원했다.

 

증세는 이미 패혈증소견으로 폐에서 출혈 시작하고 있었고, X-ray상 오른쪽 폐 우상엽이 하얗게 변해있었다.(쉽게 풀이하다 보니 이런 표현을.......) 체내 산소농도 떨어지면서 의식도 흐려지고 있었다. 기관 삽입 후 에크모(심폐기능 망가진 사람에게 피를 뽑아내어 산소를 공급해 다시 주입하는 장치)까지 돌렸지만 결국 당일 사망하였다.

 

최시원 가족 측의 대응 , 정중한 사과 그러나..

 

우연히 사망 당일 승강기에서 최시원 여동생을 만나 고인의 사망소식을 알렸고 가해자 쪽에서 다음날 문상을 와서 정중하게 사과 했고 최시원씨도 나중에 직접 찾아와서 용서를 구했다. 고인의 죽음은 한없이 안타깝기만 하지만, 유가족 측에서도 진실한 사과를 받으면 됐다고 생각을 하여 민·형사 소송을 하지 않겠다고 언급하였고 부검의 경우 유가족측이 꺼려하여 화장했다. 왜 화장을 했느냐고 또 네티즌들은 비판하지만 '가족의 납골당이 있고, 고인의 남편 또한 화장을 했다'로 정리하면 될 것 같다. 문제는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최시원씨 측은 병원의 2차 감염으로 인한 사망을 SNS상에서 언급하고, 프렌치 불독 구강에서 녹농균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증빙서류를 반려견 관련 행정당국에 제출하였다. 고인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병원의 적절한 처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되었을 수(?) 있는 것이지, 우리 개가 물어서 죽은 것은 아니다!'라고 발표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을 보았을 때, 유가족측은 앞서 했던 사과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사람 생명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골머리 앓으며 애썼을 서울 백병원 의료진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기는커녕 '병원 내 처치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병원 내 녹농균 감염에 의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나도 좀이 쑤셔서 지금 책을 펼쳐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유가족은 오죽하겠는가. 저런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을 보고 아마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녹농균 감염(Pseudomonas infection)이란

 

의사들은 흔하게 듣는 균이지만, 일반인들은 처음 듣는 균일 확률이 높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쓰는 글이기 때문에 간단히 녹농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가야 한다. (의사들은 빠르게 skip하길 추천한다.) 녹농균(Pseudomonas)는 주변에 흔히 존재하는 상재균으로, 오염된 물에서 잘 발견된다. 환자의 건강상태에 따라 감염여부가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정상인에게서는 감염이 드물고, 면역력이 저하된 환자(피부 화상, 당뇨 등)에게서 감염되면 치명적이다.

 

그렇다면 논란의 요점들을 하나씩 짚어보아야 한다. 기자들이 논문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주워들은 내용들을 마구 기사로 퍼 나르고 있어 이를 바로잡아야 겠다는 생각이다.

 

쟁점1. 동물에게 감염된 녹농균이 6케이스밖에 없다?

 

내과 교과서의 대명사 해리슨(chapter 24. infectious complications of bites)을 뒤져보았다. 미국에서는 한해평균 고양이와 개에 10만 명당 300명이 물리는 사건이 발생한다고 보고하고 있고ㅡ 미국인구가 3억2천만 명이니까 한해 96만 케이스가 있다.ㅡ 그중 15~20%에서 감염이 발생한다고 나와 있다. NCBI 논문에는 개에 물렸을 때 상처에서 약 6%에서 녹농균이 발생한다고 보고된다.

 

그렇다면 960000(케이스)x 0.15~0.2(15~20%에 감염) x 0.06(6% 녹농균의 확률) 계산을 해보면 미국에서는 한해평균 개에 물려 8640~11520명의 녹농균감염환자가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 단순 통계치가 맞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통계의 오류는 항상 발생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희박한 확률이지만서도 분명 사건 사고는 6케이스를 넘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응급실을 거쳐 입원도 하지 않은 환자에게 단순 드레싱을 시행하다 녹농균에 감염될 확률보다는 높다고 보고 있다. 6케이스라고 기자들이 언급한 것은 논문을 눈이 아니라 발로 보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쟁점2. 개의 구강내 세균에서 녹농균이 검출되지 않았으니 개 때문에 생긴 죽음은 아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의 구강내 세균총(세균집단이라고 해석하면 된다.)은 수시로 바뀐다. 어제 녹농균에 오염된 물을 먹었으면 녹농균 검출률이 확 높아지겠지만, 오늘 검사 했을 때에는 또 균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수의사를 통해 고인을 물었던 개에게서 '녹농균이 검출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또 틀린 말이다. 정확한 소견서를 제출해야 했다면 비고란에 '상기 소견은 현 시점에 인하여 향후 변화 가능성 있습니다.'라고 써야 했다. 구강내 세균총에 대해 무지했거나 놓쳤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쟁점3. 병원이 적절한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았다?

 

병원에 개에 물린 환자가 왔을 때에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항생제는 1세대 Cephalosporin(요새는 거의 쓰지 않는다.)부터 3세대 Cephalosporin 계열 혹은 Amoxicillin-Clavulanic acid(일명 Augmentin이라고 한다)까지 있다. 하지만 이 항생제들은 녹농균을 잡을 수 없다. 개에 물렸을 때 Quinolone을 쓰는 경우는 흔치 않다. 왜냐하면 심평원에서 분명 삭감 당할게 뻔 하기 때문이다. (삭감이유: 왜 다른 항생제를 써도 되는데 Quinolone을 썼냐? 일 것이다.)

 

Carbapenem을 사용했어야 한다고 기사에서 언급된 것을 보았다. 멍청하기 그지없다. Carbapenem은 ESBL positive(Extended Spectrum Beta Lactamase, 즉 어마어마하게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균을 지칭한다.)일 때 경험적 항생제로 투여시 효과가 없을 때 끝판왕으로 사용하는 제한적인 항생제이다. 서울 백병원은 Augmentin을 처방하였다고 뉴스기사에서 보았다. 항생제 투여원칙을 잘 지킨 전혀 문제없는 사안이다.

 

쟁점4. 녹농균 항생제 감수성 검사를 시행했는가?

 

녹농균이 원내 감염으로 인해 고인의 몸에 침투했다면 병원내의 녹농균은 대부분 내성균주로 대부분의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므로 항생제 감수성 검사에서 내성(R, Resistance)을 보여야 했다. 하지만 오늘 밝혀진 기사에서는 감수성 검사에서 모든 항생제에 감수성(S, Susceptibility)을 보였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이 녹농균이 원내감염으로 침투한 것이다' 라고 주장하기에는 설득력이 굉장히 떨어진다. 병원 내에 상재하는 녹농균은 슈퍼파워 내성을 겸비한 센 녀석이기 때문이다.

 

쟁점5. 환자의 개인정보 보호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가?

 

병원이 환자의 녹농균 감염에 대해서, 일언반구 하지 않는다는 투로 기사를 썼고,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또 병원이 잘못했네, 병원의사들 또 뭘 숨기려고 그러는 거야?"라는 식으로 댓글이 올라가고 수천 개의 공감을 얻는 것을 보았다. 답답하다. 병원 측에서는 유가족의 허락 없이는 환자의 검사결과, 상태 등을 절대 언론에 공개할 수 없다. 만약 이러한 사실들을 유가족의 허락 없이 공개했다가는 어마어마한 공격에 또 시달릴 것이다. 한국인들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개인정보보호, 사생활정보 침해'로... 병원 의료진들이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주어야 하는가?

 

병원의 응급 의료진들에게 수고한다고 말 한마디 못할망정 무턱대고 비난하진 말아 달라. 그럴 시간이 있다면 국가공공기관인 심사평가원이 당신들의 진료정보 6400만 건의 진료기록과 투약내용을 실손 보험사에게 1건당 30만원씩 받고 팔아넘긴 것들에 대해 분개할 줄 알아라.

 

결론

 

쓰다 보니 또 길어졌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려 그나마 어젯밤보단 스트레스 덜 받는 것 같아 기분은 한결 낫다.

 

변하지 않는 사실은 '개가 물어서' 발생한 비극적인 죽음이다. 개가 물지 않았다면 녹농균에 감염되어 환자가 사망할리도 없고 병원의료진의 책임으로 물을 필요도 없고 기자들의 무지함을 굳이 알릴 필요도 없었다. 개의 생명보다 1000만 배 1억 배 중요한 것이 인간의 생명이다. 승강기에서 또 그 개를 마주할 유가족들을 생각해보면 견주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부탁한다. 제발 병원과 의료진들에게 터무니없는 공격은 지양해 달라.

 

국민들의 이유 없는 원성을 듣고 가슴이 너무 많이 아프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s. 개들 산책 시킬 때에는 지나가는 행인들 물 수 있으니 제발 마스크를 씌우자. 내가 기르는 개는 소중한 반려견이지만, 남이 봤을 때는 그냥 지나가는 '개'일 뿐이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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