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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호랑이보다 곶감이 무서운가

지난주 내내 '부산 에이즈'가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부산에서 에이즈 신속검사키트가 갑자기 많이 팔렸다고도 한다. HIV 감염인으로 밝혀진 여성이 불특정 다수의 남성과 성행위를 했다며 무슨 억하심정으로 그런 복수극을 벌였는지 제멋대로 추측하는 기사가 난무했다.

  • 한채윤
  • 입력 2017.10.26 05:33
  • 수정 2017.10.26 05:41
ⓒvchal via Getty Images

당신이 길을 걷고 있는데 "남녀가 손을 잡으면 임신이 된다"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전단지를 돌리는 이들을 만났다고 상상해 보자. 이성 간의 무분별한 손깍지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학교와 방송이 이를 교육하고 검열할 수 있도록 하자는 청원서에 서명을 해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외치는 걸 보니 남녀가 손을 잡으면 정말 임신이 된다고 믿게 될까. 국가와 청소년의 미래를 걱정하며 서명을 할까. 아니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다고 무시하거나, 이런 거짓 정보의 유포가 더 위험하다며 싸울까.

생식세포인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수정이 되고, 그 수정란이 자궁 내에 착상하는 과정을 임신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세상 그 어떤 사람도 상대의 손만 잡고 임신을 성사시킬 방법은 없다. 아무리 온 정성을 다해 손깍지를 100만번 거듭한다고 해도 불가능하다. 임신한 사람 중에 남녀끼리 손잡아본 적 있는 이들도 있다고 하면 모를까 필연적 인과관계인 양 남녀가 손을 잡으면 임신이 된다고 규정하고 떠든다면 과장이 섞인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유사하게 대표적인 엉터리 주장을 하나 더 찾으라면 바로 '동성애 하면 에이즈 걸린다'는 말이다.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라는 이름을 가진 바이러스에 의해 면역력이 약화되어 여타의 질병이 생긴 상태를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라고 한다. 손깍지가 임신의 원인이 될 수 없듯 동성애 역시 에이즈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없다. 굳이 동성애만을 콕 집어서 HIV 감염의 책임을 전가하려면 먼저 이성애자는 결코 HIV에 감염되지 않는다는 조건이 성립해야 한다. 하지만 바이러스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누가 동성애자이고 누가 이성애자인지 바이러스는 궁금할까?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그 사람들 간의 성별이 같은지, 다른지를 구별할까? 최근 이성 간 성행위를 통한 HIV 감염 사례가 연속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럼에도 언론에서 '이성애를 하다가 그만 에이즈에 걸려...'라는 식으로 언급하는 걸 본 적은 없다.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결국 바이러스가 이성애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편견이 동성애만 단죄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지난주 내내 '부산 에이즈'가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부산에서 에이즈 신속검사키트가 갑자기 많이 팔렸다고도 한다. HIV 감염인으로 밝혀진 여성이 불특정 다수의 남성과 성행위를 했다며 무슨 억하심정으로 그런 복수극을 벌였는지 제멋대로 추측하는 기사가 난무했다. 질병관리본부가 감염인의 사생활까지 다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듯 감염인 관리 체계에 구멍이 났다며 힐난하기에 바빴다. 불안과 공포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고 무서운 에이즈란 이미지는 더욱 강화되었다. 그런데 대체 에이즈의 무엇이 무섭다는 것일까. HIV에 감염되는 것이 무섭다면 그 무서움을 없애는 확실하고도 간단한 방법이 있다. 성행위 시 콘돔을 항상 사용하면 된다. HIV는 공기 중에서 감염되거나 침으론 전염이 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감염이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성행위 시 생길 수 있는 정액, 질액, 혈액의 접촉은 콘돔으로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

문제는 한국 남성의 콘돔 사용률이 너무 낮다는 점이다. 2015년도 질병관리본부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18~69살) 중 성관계 시 콘돔을 항상 사용하는 비율이 11.5%로 나왔다. 이쯤 되면 혹시 사람들이 콘돔을 무서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며칠간 에이즈에 대한 수백 건의 관련 기사가 쏟아졌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그중에 콘돔만 썼어도 괜찮을 거라고 누구나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예방법을 알려주는 글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이 어떤 질병을 무서워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몸의 통증이 극심할까 봐, 아파서 일을 할 수 없어 가난해질까 봐,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할까 봐, 주변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거나 혐오스러운 눈길로 볼까 봐 무섭다.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무서움을 다 같이 예방하고 해결책을 모색할 것인가, 아니면 질병을 제대로 예방하기를 계속 무서워할 것인가.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 모를 리는 없을 텐데 에이즈에 대한 오해와 편견, 혐오가 오히려 커져만 가는 세태를 보자니 깊은 한숨만 나온다. 호랑이 대신 곶감을 무서워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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