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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휴전

올림픽 휴전이 이루어지는 동안 증오의 마음을 비우고, 대결의 말을 하지 말고, 모든 군사적 움직임을 잠시 멈추자. 무기를 내려놓으면 악수를 할 수 있다. 잠시 멈추면, 북핵문제도 악화에서 개선으로 갈아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올림픽 휴전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고,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소음에 끌려다니지 말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 운명처럼 꼭 필요한 순간에 날아온 기회의 화살이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

ⓒ평창 올림픽 홈페이지

기회의 화살은 품 안에 안기는 것이 아니라, 머리 위로 날아간다. 손을 뻗어 잡아야 하는데, 많은 사람은 기회가 스쳐 간지도 모르고 불운을 한탄한다. 북핵 위기도 마찬가지다. 과거 정부는 기회가 온 줄도 몰랐고 기회를 찾지도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악화의 속도만 빨라졌다. 지금 북한이 우선적으로 핵 억지력의 완성을 추구하면서, 기회가 줄었고 확실히 어려워졌다. 그러나 국면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관계는 주고받으며 변한다. 이제 준비를 하고 언덕에 올라 기회의 화살을 잡을 때다.

삐끗하면 낭떠러지인 이 엄중한 정세에서 과연 기회가 있을까? 분명 틈이 있다. 악화의 속도를 늦추거나 혹은 잠시 멈출 기회가 왜 없겠는가? 북한은 핵 보유를 향해 질주하지만, 동시에 적정 억지의 수준을 고민한다. 중국은 제재에 참여하면서도 파국을 피하고 싶어 한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서 혼돈을 조장하지만, 뭘 좀 아는 사람들은 핵 확산의 위험성을 걱정한다. 북핵 위기로 살아난 아베 정부를 제외하고, 모두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의 위험성을 안다. 이해관계는 달라도, 잠시 멈추고 싶은 순간이다.

이럴 때 상황 악화를 피할 입구를 찾아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가 가능하냐는 질문은 출구에 해당한다. 동결의 입구에서 비핵화의 출구 사이는 아주 멀다. 가다가 길을 잃을 수도 있고, 정권이 바뀌면 과거처럼 시간을 낭비하면서 엉뚱한 곳을 헤맬 수 있다. 비핵화라는 출구가 너무 멀기에 잊어버리자는 주장도 있지만, 아무리 멀어도 출구를 기억해야 한다. 통일이나 평화를 지금 당장 어렵다고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비핵화라는 출구를 부정하면 우리는 길을 잃고 군비경쟁의 희생자로 전락한다.

일단 멈춰서 후진에서 전진으로 전환할 기회는 바로 평창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유엔을 방문했을 때, 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제출했다. 올림픽 휴전은 고대올림픽의 위대한 유산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올림픽을 시작한 목적도 도시국가들끼리의 빈번한 전쟁을 잠시라도 중단하기 위해서다. 전쟁을 멈추자는 기간은 올림픽 개막 7일 전부터 폐막 7일 후까지로, 바로 선수들이 자기 고향을 떠나 경기장으로 오는 시간부터,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까지다. 평창은 분단의 한반도, 그중에서도 분단의 땅 남강원도에 속해 있다. 평창은 그래서 올림픽 정신에 가장 적합한 개최지다.

1993년부터 개최국이 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제출하고, 유엔 총회에서 의결하는 것이 관례다. 우리는 올림픽 휴전을 관례가 아니라, 한반도의 위기를 일시적으로 멈추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올림픽 휴전은 장애인 올림픽 기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하는 지구촌 곳곳의 선수들도 안전하게 참여하고 안전하게 돌아갈 권리가 있다. 평창 올림픽 개막 일주일 전인 내년 2월2일부터 장애인 올림픽 폐막 7일 후인 3월25일까지 한반도에서 진정한 '휴전'을 만들어보자.

올림픽 휴전을 뜻하는 그리스어 에케케이리아(Ekecheiria)는 '무기를 내려놓다'라는 의미다. 올림픽 휴전이 이루어지는 동안 증오의 마음을 비우고, 대결의 말을 하지 말고, 모든 군사적 움직임을 잠시 멈추자. 무기를 내려놓으면 악수를 할 수 있다. 잠시 멈추면, 북핵문제도 악화에서 개선으로 갈아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올림픽 휴전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고,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소음에 끌려다니지 말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 운명처럼 꼭 필요한 순간에 날아온 기회의 화살이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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