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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 시민참여단입니다

ⓒ뉴스1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20일 5·6호기 ‘건설 재개’ 내용을 담은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번 공론화 과정에는 시민참여단 471명이 2박3일의 합숙을 통해 토론에 참여했다. 오리엔테이션까지 포함해 약 한달에 걸친 ‘숙의민주주의’의 시험대였다. 시민참여단으로 활동한 한 시민의 체험기를 소개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 ‘시민참여단’으로 활동한 한 평범한 시민입니다. 정말 별것도 없는 사람인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건 471명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2박3일간 열띤 토론을 벌였던 그 현장의 경험을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처음 '한겨레'로부터 글을 부탁받았을 때 ‘과연 내가 이런 중요한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수락 뒤에도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그만둬야지’ 몇번이고 망설였습니다. 그러던 중 공론화 토론과정을 다룬 어떤 기사를 읽게 됐습니다. 물론 기자의 눈에 비친 문제점도 진실의 한 단면일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얼마나 진정성 있게, 그리고 열린 자세로 토론에 참여했는지, 그렇게 멋진 모습을 조금이라도 알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감히 용기를 내봅니다.

처음 공론화위원회 측으로부터 전화연락을 받았을 때는, 솔직히 별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저 늘 하는 여론조사겠구니 싶었죠. 시민참여단에 뽑힌다면 참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호기심이 전부였죠. 아마 그로부터 1주일쯤 지났을 때일 겁니다. 이번엔 시민참여단에 뽑혔다면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당첨’ 사실을 주변에 알리니 반응이 둘로 나뉘더군요. 그런 일에 당첨된 행운(?)을 부러워하고 격려해주는 쪽과 쉴 시간도 없는데 그런 일에 시간 빼앗긴다고 걱정해주는 쪽. 이제와 생각해 보니 마치 건설공사 ‘재개’와 ‘중단’처럼 의견이 갈렸네요.

드디어 9월16일. 오리엔테이션 날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직업 특성상 밤에 일하고 아침에 퇴근합니다. 그날 아침 퇴근하고 나니 정말 가기 싫더군요. 하지만 기왕에 참여하기로 한 데다, 전날까지 상담원이 전화를 걸어와 오리엔테이션에 참석을 하지 않으면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이야기했던 게 떠올라 대충 씻기만 하고 집합장소로 향했습니다. 다함께 오리엔테이션이 열릴 천안(교보생명 계성원)으로 출발했죠. 얼마마 시간이 흘렀을까. 잠을 자지 못한 터라 몽롱한 상태로 버스 창밖 풍경을 무심히 보고 있는데, 갑자기 원전 건설 재개를 원하시는 분들의 시위 모습이 보이더군요. 혹시라도 원전 건설 중단 결정이 내려진다면, 시민참여단으로 활동한 우리들이 괜히 해꼬지를 당하지나 않을까, 순간 걱정마저 들었습니다. 시위대를 뒤로 하고 목적지에 도착하니 진행요원들이 표찰을 나눠주면서 신신당부를 하시더군요. 보안을 위해 표찰이 없으면 대강당에 입장할 수 없으니 항상 목에 꼭 걸고 있으라고요.

잠시 뒤 대강당으로 모이라는 방송이 나오고 드디어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됐습니다. 공론화위원회 위원장님의 환영사 중 기억이 남는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들을 보고 ‘500인의 현자’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제와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니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의 역할은 찬성과 반대 쪽 이야기를 귀 담아 듣고 정말 일반인의 수준에서 우리의 생각을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쪽이 진실일지 거짓일지, 그리고 우리의 삶에 어떤 결정이 유리할 지를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답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던 것 같습니다.

곧이어 전문가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됐습니다. ‘재개’ 쪽이 먼저, ‘중단’ 쪽이 나중 차례였는데, 그날의 느낌만으론 저한테는 재개 쪽 주장이 좀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재개 쪽은 현재 눈앞의 생활과 밀접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줬습니다. 물론 중단 쪽 설명도 정말 훌륭했습니다만, 먼 미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일정의 오리엔테이션은 마무리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심화 합숙토론까지는 약 한 달이 남았습니다. 막상 오리엔테이션을 다녀오고 나니 좀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평소 일하는 틈틈이 원전에 대해, 원전사고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퇴근한 뒤에도 졸린 눈을 비비며 관련 동영상 강의를 꼼꼼히 챙겨봤습니다. 제 생각을 정리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찬반 여부를 떠나, 원전 안전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드디어 예정된 10월13일(금) 하루 전. 자그마한 해프닝이 있었죠. 그날 아침 문자메시지를 받았는데, 출발날짜는 없이 출발시간만 적혀 있었습니다. 분명히 13일 출발로 알았는데 일정이 급히 변경된 건가? 문자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 공론화위에 확인해 보니, 문자가 잘못 발송된 거라더군요. 우여곡절 끝에 13일이 찾아왔습니다. 이날도 역시 전날 밤을 샜는데도 가방을 꾸려 집합장소로 간 뒤, 버스를 타고 목적지인 계성원으로 향했습니다. 오리엔테이션 때보다 훨씬 험악한 분위기의 시위대가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계성원 입구엔 경찰이 쳐놓은 바리케이드가 있었습니다. 중요한 순간을 앞둔 긴장감이 잔뜩 몰려왔습니다.

숙소 배정 후 저녁을 먹고 곧장 일정이 시작됐습니다. 우선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한달 동안 생각이 바뀌었는지 알아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생각이 조금 변하긴 했으나, 그래도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내려야할 지 아직 결정을 못 내린 상태였습니다. 개회식 뒤 분임토의장으로 옮겼습니다. 이동하면서 보니 여기저기서 보안요원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하시더군요. 토의장에선 간단한 자기소개 순서가 있었습니다. 연령대별·지역별 편중없이 토론이 이뤄지도록 분임조가 나뉘어 있더군요. 우리 조의 경우 여자 넷, 남자 넷이었습니다. 첫날은 토의규칙을 읽고 어떤 방식으로 토론이 이뤄지는지 확인만 하고 헤어졌습니다.

둘째날인 토요일. 정말 귀중하면서도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아침식사 후 양쪽 전문가 발표가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불꽃이 튀기는 것 같았습니다. 두 전문가의 발표가 모두 진실일 것이라는 전제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공론화 과정의 의미가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간에, 양쪽의 이야기를 충분히 귀 기울여 듣고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제일 중요할 테니까요. 물론 이제 와서 뒤돌아 보면, 토론 도중 내 의견만 고집한 적도, 의견이 엇갈리면서 흥분한 순간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조별 분임 토의를 위해 별도의 방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제가 속한 조는 첫 발표자의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각자 이야기를 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생각보다 더 좋았습니다. 우물쭈물거리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죠. 분임 토의과정에서 진행자(모더레이터)가 원활한 진행을 위해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았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발언을 하는 도중에 다른 누군가가 반론을 펴려 하면, 진행자가 일단 반론을 제지하고 애초 발언을 이어가도록 배려했습니다.

토의시간은 약 한 시간 정도. 아쉬움이 컸습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시간으론 부족하다고 느낀 건 여자친구와 있을 때 빼곤 없었던 것 같아요. 정말 많은 이야기가 나왔고, 서로 다른 생각이 오갔습니다. 그때까진 미처 모르고 있던 사실인데 함께 토론하는 다른 분들의 말씀을 듣고서야 알게된 것도 있습니다. 농부라는 한 어르신은 실생활에서 경험한 재생에너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정말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었습니다. 부산에서 오신 한 분의 원자력발전소 견학 이야기도 흥미로왔습니다. 분임토의의 진행자는 토론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를 정리해 전문가에게 심층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질문지를 만들었습니다. 48개조에서 만든 질문은 다시 추려져 전문가에게 전달됐습니다.

다른 분임토의조의 상황을 정확히 알 순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몇 명이 토론을 주도하듯 흘러간 경우도 있을테고 마치 다투듯 고성이 오갔을지도 모르죠. 사람들은 토론을 거쳐 생각이 바뀌기고 하고, 애초의 생각을 굳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각자가 선택을 내리기까지의 과정만큼은 꽤 공정하고 진지했다고 확신합니다. 무엇보다 공론화위 자체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쓰는 게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하다못해 시민참여단은 발표가 끝난 전문가분들과 개인적으로 이야기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전문가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는 분임토의 후 발표자 질의 응답 시간 뿐이었습니다. 48개조에서 추려낸 각각 10문항씩을 재개와 중단 양쪽 전문가들에게 던졌습니다. 1~2분의 답변 시간 안에 전문가들도 최대한 압축적으로 우리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려 애썼습니다. 마지막날 질의 응답 시간에 잠시 큰소리가 오가기도 했으나, 혼란을 진정시킨 건 사회자가 아니라 그곳에 모인 시민참여단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2박3일에 걸쳐 모두 4차례의 토론을 거쳤습니다.

15일 일요일, 마지막날. 헤어져야할 시간이 다가오자 모두 아쉬워했습니다. 처음엔 2박3일이란 시간이 언제 가나 싶었는데,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아요. 마지막날 한 분 한 분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이런 공론화 현장에 우리들이 함께 자리를 한다는 사실에 모두들 뿌듯해 했습니다. 15일 일요일. 마지막날이 찾아왔습니다. 저마다 뿔뿔이 헤어져야 할 순간이 다가오자 모두들 아쉬워했습니다. 처음엔 2박3일이 언제 갈까 싶었는데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아요. 마지막날 한 분 한 분 소감을 밝히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모두들 이런 공론화 현장에 우리가 모여있다는 게 정말 감격스럽다고 말했습니다. 교과서에 실리지 않겠느냐는 분, 하나의 주제를 놓고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언제 또다시 이렇게 아무런 편견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냐는 분….

아쉬움이 없을 리 없고 한계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공론화 과정이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갈등을 해소하는 값진 경험과 자산이 되리라 믿습니다. 가장 공정한 방법이야 국민투표일 테지요. 그러나 모든 결정을 국민투표에 부친다면 그 비용은 감당 못한 수준이 되지 않을까요? 어디에선가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실시 비용이 1000억 정도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이번 공론화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은 46억원이라죠. 비용만 놓고 보더라도 갈등 해소 방법으론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날, 만약 본인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수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왔죠. 저는 자신있게 “예”라고 말씀드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느 쪽과도 이해관계가 없는 전국의 평범한 471명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양쪽의 이야기를 듣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번 공론화 과정의 시민참여단은 제 인생에 다시 없을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 게 제일 좋겠으나, 만일 또다시 이런 상황에 맞닦뜨린다면 주저없이 참여해 제 의견을 당당히 밝히고 싶습니다. 주변에도 참여를 적극 권할 거고요. 이런 과정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고 우리 사회를 좀더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라는 믿음이 더 커졌기 때문입니다.

인천에 거주하는 조원영(남·39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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