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시절 최태원 SK 회장이 ‘공학연’에 임대, SK 압수수색 당하던 시기와 일치
국정원이 전교조 추방 활동 벌이던 때이기도… SK쪽 “당시엔 단체 존재 몰랐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에 동원돼 ‘좌파 교육감 및 전교조 비판 집회’를 열고,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찬성 활동에 주력하며 교육부로부터 집중 지원을 받은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이하 공학연)이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개인 소유하고 있던 서울 광화문의 한 오피스텔을 사무실로 사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21이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등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관제 데모를 했던 국가정보원 화이트리스트 단체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은 SK 최태원 회장의 개인 소유 오피스텔을 사무실로 썼다.
최 회장은 왜 오피스텔을 구입했을까
한겨레21이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등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보면, 공학연은 2009년 9월27일 창립해 2011년 12월28일 서울시에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했다. 이 기간에 공학연은 국정원의 민간 외곽단체로 활동하며 관제 데모 등을 개최한 대가로 국정원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돼 여러 특혜 지원을 받아온 것으로 국정원 개혁위원회의 조사로 확인된 바 있다. 공학연이 서울시에 민간단체 등록을 하며 사용한 주소지가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 D오피스텔 326호’다.
한겨레21이 해당 주소지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본 결과, 이 오피스텔은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한때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최태원 회장은 D오피스텔 326호를 2007년 7월24일 1억4800만원에 매입해, 2013년 1월17일 2억3700만원에 매각했다. D오피스텔은 62m²(18평형) 정도의 작은 크기다. 최 회장의 오피스텔을 거래했던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작은 평수의 오피스텔인데, 재벌 회장이 소유하고 있어 놀랐다. 이 정도면 주로 작은 회사나 사무실이 입주하는 평수다”라고 말했다. 최 회장이 이런 오피스텔을 직접 본인 이름으로 구입했다는 사실 자체가 ‘미스터리’다.
공학연이 왜, 그리고 어떻게 최 회장의 오피스텔에 입주하게 됐는지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SK 홍보팀 관계자는 “2011년 9월 처음 임대를 줄 때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이라는 단체의 존재 자체를 전혀 몰랐다. 처음엔 개인에게 임대를 줬고, 나중에 단체가 사무실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이야 그 단체가 국정원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돼 있다는 것을 알지만 당시엔 전혀 몰랐다. 임대차 계약서를 쓰고 월세를 받아 세금신고까지 다 했던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공학연은 최 회장 소유의 오피스텔을 임대해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이희범 공학연 사무총장은 ‘어떻게 최 회장 소유의 오피스텔에 입주하게 된 것이냐’는 <한겨레21>의 질문에 “소설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냐”고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최태원 회장과 임대차 계약을 맺은 당사자인 이경자 공학연 대표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검찰의 국정원 수사, 판 다시 짜야 할 수도
수수께끼 같은 임대차 계약과 관련해 한 보수단체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와 국정원이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추방 활동’을 기획한 시점과 공학연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시점이 일치한다. 그것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는 견해를 밝혔다. 실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판 과정에서 공개된 국정원 내부 회의 녹취록을 보면, 원 전 원장은 2011년 11월11일 “교육감 선거도 분열 때문에 졌잖아요. 지금부터 대비해서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신경 쓰자”며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의 대비로 “지부장들은 현장에서 교통정리가 잘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챙겨줘요”라고 지시한다.
그 무렵은 SK 쪽 상황도 다급할 때였다. 최태원 회장은 2011년 4월 선물거래에 투자했다가 1천억원대 손실을 입었다. 손실을 메우기 위해 회삿돈에 손댄 사실이 사정 당국에 의해 밝혀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그해 11월9일 SK그룹 지주회사를 비롯해 최 회장의 자택 등 10여 곳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했다. 이후 최태원·최재원(SK그룹 부회장) 형제가 동반 구속됐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내내 SK는 ‘오너 리스크’로 인해 정권에 끌려다녔다. SK에 대한 압수수색과 교육감 선거를 직접 거론한 원세훈 전 원장의 발언 시기가 묘하게 겹친다.
이 무렵 공학연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간다. 2011년 8월부터 2012년 4월 총선 직전까지 공학연은 무상급식 반대, 곽노현 교육감 사퇴 촉구, 전교조 추방 서명 운동 등 교육계 주요 현안에 대해 진보 진영을 공격하는 정권의 전위대 같은 구실을 했다. 이경자 대표는 2012년 1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 초청 교육단체 간담회에 참석해 이 대통령을 직접 만난 적도 있다. 그는 ‘전교조 추방연대’의 대표도 맡았는데 한 보수단체 관계자는 “이경자 대표는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와 함께 아스팔트에서 가장 열심히 활동한 우파 가운데 한 명”이라는 평을 남겼다. 만약 국정원이 재벌을 압박해 정권의 전위대 역할을 하는 우파 시민단체를 지원하도록 한 것이라면,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 국정원이 저지른 일탈 행위를 대상으로 진행 중인 검찰 수사는 판을 처음부터 새로 짜야 한다.
최태원 회장이 선물거래 투자 손실을 메우기 위해 횡령한 돈 역시 정부와 연결돼 있었다. 최 회장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설립한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투자된 SK 계열사 돈 497억원을 횡령했다. 이 펀드 조성을 지시한 곳이 바로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였다. 보수정권 내내 이어져온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공작의 시발점이 된 문건으로 평가되는 이명박 청와대의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문건’(2008년 8월 문건 작성, 같은 해 12월 대통령 보고)을 보면 “영화시장 분위기 전환을 위해 우파 영화 제작을 해야 하고, 우파가 영화시장을 주도해야 한다”며 CJ·KT·SKT를 ‘협력해야 할 영화 자본’으로 적시한다. 베넥스인베스트먼트는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SKT가 우파 콘텐츠 제작에 수백억원을 투자할 계획”으로 조성된 기금이었다.
정부의 공학연 지원은 계속됐다
공학연은 최태원 회장이 D오피스텔을 매각한 뒤 몇 개월 지나 사무실을 뺐다. 그 뒤로도 공학연에 대한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지원은 계속됐다. 공학연은 비영리단체 등록 이후인 2012년부터 원자력문화재단·서울시교육청·교육부 등에서 사업비를 지원받았다. 2013년 이후 교육부와 서울시 교육청을 통해서만 총 7800만원의 사업비를 지원받았다. 이희범 공학연 사무총장이 사무총장을 겸임하는 ‘대한민국국민감사위원회’는 ‘지방재정교부금법’ 위반 논란에도 교육부로부터 2억원의 특별교부금을 받았다. 전재수 의원은 “청와대와 국정원의 부당한 개입, 위법한 지원이 있었는지 명확한 규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