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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위기 해결의 최대 장애물은 '어린이 같은' 트럼프일지도 모른다

  • 허완
  • 입력 2017.10.10 11:59
  • 수정 2017.10.10 12:28
WASHINGTON, DC - JULY 31: President Donald Trump stands with retired Army medic James McCloughan before bestowing the nation's highest military honor, the Medal of Honor, to him at a ceremony in the East Room of the White House in Washington, DC on Monday, July 31, 2017. (Photo by Jabin Botsford/The Washington Post via Getty Images)
WASHINGTON, DC - JULY 31: President Donald Trump stands with retired Army medic James McCloughan before bestowing the nation's highest military honor, the Medal of Honor, to him at a ceremony in the East Room of the White House in Washington, DC on Monday, July 31, 2017. (Photo by Jabin Botsford/The Washington Post via Getty Images) ⓒThe Washington Post via Getty Images

미국 대선을 한 달 가량 앞두고 있던 2016년 10월, 워싱턴포스트에는 이례적인 서한 하나가 소개됐다. 미국 공군 전직 핵무기 담당 장교들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였다.

이 편지는 다음과 같은 문단으로 시작된다.

"다수의 공화당 및 민주당 지도자와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그 유명한 '레드 버튼'을 다룰 경험, 기질, 판단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우리는 그 우려에 공감한다."

트럼프의 '레드 버튼'

이 서한에 서명한 10명의 전직 핵무기 담당 장교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실이 될 가능성에 우려를 나타냈다.

"대통령만이 핵무기 발사를 명령할 수 있다. 이 명령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으며, 미사일이 발사되고 나면 되돌릴 수 없다. 대통령의 오판, 충동적 결정, 나쁜 판단의 결과는 대재앙이 될 수 있다.

이 구조 하에서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압박감은 압도적이며, 그에게는 엄청난 침착성과 판단력, 자제력, 외교적 능력을 요구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그런 리더십 자질을 갖고 있지 않다. 그와는 반대로 그는 누누이 자신이 쉽게 미끼를 물고 성급하게 비난을 퍼붓는 인물이며,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심지어 - 다른 그 무엇보다, 핵무기를 포함해 - 군사 및 국제 외교관계의 기본조차 잘 모르는 인물이라는 점을 스스로 보여줬다."

그로부터 꼭 1년이 지났다. 이들이 그토록 우려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실이 됐다. 그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로켓맨'으로 지칭하며 '화염과 분노'라는 조율되지 않은 표현을 즉석에서 꺼내는가 하면, 북한의 '완전한 파괴'를 운운했다. 미국 대통령의 발언으로는 유례가 없는 것들이었다.

트럼프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은 그 때마다 수습에 나서야만 했다. "북한과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외교적 수단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트럼프가 "엄청난 침착성과 판단력, 자제력, 외교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볼 만한 뚜렷한 근거는 아직 확인할 수 없다. 그 대신,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이 혼선을 빚고 있으며 이는 상당 부분 통제되지 않는 트럼프의 '돌출 행동'에서 기인한다는 정황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중이다.

"백악관이 성인 어린이집이 됐다"

동료 의원에 따르면, 밥 코커 공화당 상원의원(테네시)은 한 때 여당 의원들 중 그 누구보다 트럼프 대통령과 긴밀하게 대화를 나눠왔던 인물이다. 그는 초창기부터 트럼프의 선거운동을 도왔던 몇 안 되는 공화당 상원의원 중 하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주류, 이른바 '기성 정치인(establishment)'과는 거리가 멀다. 기성 정치인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적대감이 트럼프의 큰 자산이었다. 코커 의원은 부동산 개발회사를 운영해 막대한 부를 쌓은 이력 때문에 그나마 트럼프와 가장 닮은 공화당 정치인으로 꼽혔다. (다만 처음부터 정치적 견해차는 꽤 컸다.)

그렇게 트럼프 '최측근'으로 꼽혔던 코커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을 "어린애 취급하는 트럼프 측근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건 9일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칼럼 제목이다.

코커 의원은 지난 일요일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으로 자신을 공개 비난하자 곧바로 응수했다. "백악관이 성인 어린이집이 됐다니 수치스러운 일이다. 오늘 아침 (어린이집 교사) 누군가 분명 출근을 안 한 모양이다." 트럼프를 '어린이'로 치부한 것이다.

그는 (트럼프의 분노를 촉발한 계기였다고 추정되는) 지난주 한 인터뷰에서 "틸러슨 국무장관, 매티스 국방장관,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같은 이들이 우리나라를 대혼란으로부터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아니라 측근들이 사실상 국정을 지탱하고 있다는 뉘앙스다.

이어 트럼프가 자신을 공개 비난한 이후에는 작심한 듯 독설을 쏟아냈다. 8일 보도된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직무를 "리얼리티 쇼"처럼 다루고 있다고 말했고, 마치 "'어프렌티스'를 진행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고도 했다. 조금 더 구체적인 얘기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에 따르면 백악관에서는 매일 같이 그를 자제시키려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건 단순한 인신공격성 발언이 아니었다. 한 때 최측근 중 하나였던,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을 맡고 있는 2선 의원이 (뒤늦게?) 털어 놓은 증언이자 목격담이다. "대통령은 나를 우려스럽게 만든다. 우리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우려스러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건 한반도 평화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트럼프 대통령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또 하나의 새로운 정황이다.

1페이지짜리 보고서

허프포스트는 지난 2월 익명의 제보를 인용해 측근들마저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에 불안해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다. 취임한 지 불과 20일도 지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그 중에는 이런 내용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관계자들이 제보한 것 중에는 트럼프에게 브리핑하는 자료에 대한 내용도 있다. 군 통수권자인 트럼프는 긴 글을 읽기를 싫어한다고 익명의 백악관 보좌관이 허핑턴포스트에 밝혔다. 그래서 1페이지를 넘으면 안 된다. 중요 항목들을 정리해야 하지만 한 페이지당 9개를 넘으면 안 된다.

작은 것들이 그에게 엄청난 기쁨을 주기도 하고, 엄청나게 짜증을 내도록 하기도 한다. 트럼프는 뉴욕 타임스에 백악관 내부 전화 시스템이 환상적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에어 포스 원의 손 닦는 타월이 부드럽지 않다고 불평했다고 이 보좌관은 말했다. (허프포스트 2월9일)

워싱턴포스트 칼럼에도 보고서 이야기가 나온다. 백악관 예산관리국장 믹 멀베이니가 8일 NBC 'Meet the Press'에 출연해 한 얘기다. 그는 존 켈리 비서실장이 선임되기 전까지는 "대통령을 위해 준비가 다 되지 않은" 정보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말했다.

멀베이니 : "(대통령이) 잘못된 정보를 보고 받았던 건 아닙니다. 대통령을 위해 준비가 다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진행자 : "모순되는 정보(를 보고 받았다는 건가요)?"

멀베이니 : "모순되는 정보는 아닙니다. 참모들이 막 들어오는 거죠. 기사로도 몇 번 접하셨겠지만, 그 기사들은 사실 맞는 이야기입니다만, 참모들이 막 (집무실에) 들어옵니다. (대통령은) 모든 정책에 문을 열어놓(고 경쟁시키)는데, 참모들은 아무때나 들어와서 아무 주제에 대해서든 대통령과 대화를 나눕니다. 그게 미국 대통령 앞에 놓인 매우, 매우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정보를 얻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존 비서실장이 한 일은 그 정보의 흐름을 개선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대통령이 읽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정보가 올바른지, 정확한지, 또 대통령이 그에 따라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준비가 다 된 것인지 알 수 있게 됐습니다." (NBC 'Meet the Press' 10월8일)

워싱턴포스트는 멀베이니의 이 우회적 표현에 담긴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다. "그는 정보가 충분히 엄밀하고 맞춤형으로 준비되지 않는 한 트럼프가 그걸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강해보이는 지도자'

트럼프가 북한 문제에 대해 얼마나 '잘 준비된' 보고를 받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러 경로를 통해 알려진 정황들을 종합해보면, 상황을 낙관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트럼프 정부를 상대해야 하는 한국 정부의 고민이 클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다소 희망적으로 상황을 예측해 볼 만한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다. 트럼프가 아프가니스탄 추가 파병을 결정한 과정의 내막을 소개했던 8월 워싱턴포스트 기사가 참고 자료 중 하나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트럼프는 "특정한 외교 정책 독트린에 매여있지 않은 대통령"이며, "스스로 강하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로 보일 수만 있다면 (다른 의견에) 설득당할 의사가 있는" 인물이다.

미군 지도자들도 인정하는 것처럼, 한반도에서의 전면전이 초래할 파멸적 결과는 익히 알려져 있다.

따라서 우리는 코커 의원의 말처럼 외교·군사 정책을 보좌하는 측근들이 트럼프를 잘 '자제'시키기를 바래야만 하는 상황인지도 모른다. 혹은 트럼프를 "강하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로 보이게 할 수 있으면서도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지 않을 묘책을 측근들이 제시해주기를 기대하거나.

어느 쪽이든 그리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다. 북핵 위기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 장애물 중 하나가 바로 미국 대통령일지도 모른다는 건 꽤나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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