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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뒤에도 나는 '비즈빔'을 보면 확신할 것이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어떤 것에 대해선 지인들과 공유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즉, 비즈빔이란 브랜드는 그의 '오지랖'을 위한 수단인 것이다. 때로는 이게 얼마나 좋은지 설파하며 강권하기도 하고, 음료수에 약타서 애들한테 먹이듯 우회적으로 살짝 맛만 보여줄 때도 있다. 어떤 방식이건, 그 기저에 흐르는 정신이란 '빈티지는 너무 좋고 경이로워. 난 진심으로 네가 이걸 즐겼으면 좋겠어'라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이다.

  • 이강일
  • 입력 2017.10.10 10:30
  • 수정 2017.12.28 12:34

비즈빔(visvim)은 나에게 '아주 비싼 이스트팩', 즉 가방 전문 브랜드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비즈빔이란 브랜드의 이름을 조금씩 알게 된 건 2000년대 중반 일본 우라하라(Ura-hara, 도쿄 하라주쿠 거리의 샛길로 디자이너 브랜드 숍이 많았다) 계열의 유명 스트릿 브랜드와 콜라보를 한 가방들부터였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이제 막 '디자이너 브랜드'가 어떤 파워를 갖고 있는지 깨닫기 시작한 '뉴비'에 불과했고, 신출내기의 특성상 밋밋한 것보다는 강렬하고 비상식적인(저걸 어떻게 입나라는 생각이 절로드는) 디자인에 열광하고 있었다. 특히 'but beautiful' 시리즈로 단숨에 꼼데 가르송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한 언더커버(Undercover)에 빠져있었는데, 정상적인 비례를 한참 벗어난 오버사이즈 메신저 백에 눈길이 갔다. 그 기괴한 프로포션은 역시 언더커버다라는 생각을 들게 했지만 다른 언더커버의 가방들과는 달리 그 가방은 단순한 외형적 신선함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나일론 원단과 가죽이라는 이질적인 질감의 완벽한 조화, 최적의 비례와 스티치 선 하나도 세심하게 신경 쓴 꼼꼼한 디테일. 거기에 사용자의 몸과 가방 사이에 조금의 틈도 남기지 않고 밀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어깨끈의 위치,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고 다시 집어넣는 일련의 과정을, 집요하고 끈기 있게 관찰한 후 고안했을 것이 분명한 적재적소의 포켓과 플랩의 디자인 등, 아주 오랜 시간을 연구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제품임에 분명했다. 곧 이 메신저백은 '비즈 빔'이란 브랜드와 콜라보를 한 제품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얼마 안 있어 난 이 브랜드의 백팩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언더커버와의 메신저백도 백팩의 구조를 응용한 디자인인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는데, 비즈빔의 백팩은 그야말로 '완벽'했기 때문이다. 비례, 균형, 소재감, 컬러 배합, 수납공간, 쿠션닝, 인체공학적인 설계 등 모든 측면에서 그랬다. 단 하나 자비 없는 가격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 정도의 집요한 연구는 가방 전문 브랜드가 아니면 나올 수 없다는 것이 당시의 내가 가진 짧은 생각이었고, 그들의 군더더기 없는 간결하고 심플한 디자인과 컬러 배합 덕분에 나는 비즈빔을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테크닉컬 백팩 브랜드의 끝판왕'으로 단정 짓게 되었다.

이러한 나의 선입견이 깨진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였다. 본격적으로 패션 공부를 시작하게 된 런던은, 과거의 전통이 단절되고 급작스럽게 외국 문물이 유입되어 흐름 자체가 뒤집혀 버린 한국의 복식 문화와는 달리, 수백 년 전의 의상이 자연스럽게 현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그야말로 도시 자체가 박물관 같은 곳이었다. 10파운드 정도면 전성기 시절의 '버버리', '랑방', '발렌시아가'의 재킷을 구할 수 있는 기적의 도시였으니 빈티지 아이템에 대해 관심이 안갈래야 안 갈 수가 없는 환경. 그렇게 빈티지 아이템과 빈티지 기반의 브랜드에 대해 관심이 커지게 되면서, 비즈빔이 내가 막연히 단정 지었던 그런 류의 브랜드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쌀'까지 포장해서 출시했던 괴이한 전적이 있을 정도로 제품 스펙트럼이 넓은 토탈 브랜드였고, 미니멀 혹은 심플을 지향하는 브랜드(이를테면 COS 같은)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들의 초기 대표작은 'FBT'라는,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전통 신발인 모카신을 모티브로 제작된 스니커즈인 데다, 대부분의 의류들은 20세기 초 빈티지에 근간을 둔 아메카지(아메리칸 캐주얼의 일본식 약자로, 일본에서 유행하는 미국식 캐주얼 웨어) 브랜드에 가까워 보였다. 거기에 기모노 재킷과 같이 일본 전통문화, 혹은 네이티브 아메리칸 같은 에스닉한 테이스트를 한 방울 섞은 것 같은 퓨전틱한 분위기가 '온전한' 비즈빔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한동안 나는 이 간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막막했다. 대부분 이런 분위기의 브랜드는 가방조차도 '복각'에 기초한 디자인을 내기 마련이다. 빈티지 캔버스 바탕에 가죽 등을 덧대고 가죽 스트랩으로 여미는, RRL(랄프로렌에서 전개하는 정통 아메리칸 빈티지 웨어 브랜드)에서 나올 것 같은 가방들 말이다. 하지만 비즈빔의 가방들은 소재부터가 '코듀라 발리스틱(Cordura Ballistic)'이라는 번쩍거리는 방탄 나일론 원단인 데다 형태마저 대단히 모던했다. 게다가 파카류의 원단은 무려 고어텍스(Gore-tex, 등산복에서 주로 사용되는 완벽한 방수, 투습력의 고기능성 소재)였으니, 이는 마치 조선 시대에 아이폰 들고 양복 차려입은 회사원을 떨어뜨린 것 같은 이질적인 조합이었다.

사실, 저번 시즌엔 20세기 초반 빈티지에서 영감을, 이번엔 퓨처리즘을 테마로 정하는 브랜드란 패션계에선 발에 치일 정도로 흔하다. 하지만 이런 급작스러운 변화는 거대 트렌드를 쫓아가는 일정한 흐름을 보이기 마련인데 분명 비즈빔의 행보는 이런 얄팍한 꼼수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기묘한 불협화음이었다. 다만 나름의 질서와 이론적 근거가 있을 것이 분명한, 협화음보다 매력적인 위화감이 느껴졌다.

'More than a single style, visvim embodies a singleminded methodology.'

비즈빔 공식 홈페이지에 스스로 자신들을 소개한 글에서 언급한 위 문장과 같이, 다양한 모습과 성격으로 결과물이 도출되었지만 그 디자인 방법론은 한 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빈티지에 대한 오마쥬(Hommage, 감사, 경의, 존경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나치게 뻔한 테마다. 거의 모든 브랜드가 특정 시점의 과거 유산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시즌 테마를 잡기도 하거니와, '오마쥬'란 미명은 자칫, 딱히 창조적인 디자인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핑계'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비즈빔이 특별한 이유는, 저 뻔한 문장이 가질 수 있는 무한한 깊이를 진심으로 마주하고 실천하는 거의 유일한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즉 진정성의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당신이 해외여행 중에 어떤 레스토랑에서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고 생각해보자. SNS에 그럴듯한 각도로 사진을 찍어 올리고 '좋아요' 받고 흐뭇해하는 건 사실 음식이 진심으로 맛있건 아니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러나 그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기 위해, 들어간 재료와 레시피를 어렵게 물어보고 현지 재료를 구입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당신은 정말 그 음식이 '인생 요리'에 들만큼 좋았다는 얘기가 된다.

나카무라 히로키(中村ヒロキ, 비즈빔의 설립자이자 디자이너)의 진정성이란 이와 같은 맥락이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어떤 것에 대해선 지인들과 공유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즉, 비즈빔이란 브랜드는 그의 '오지랖'을 위한 수단인 것이다. 때로는 이게 얼마나 좋은지 설파하며 강권하기도 하고, 음료수에 약타서 애들한테 먹이듯 우회적으로 살짝 맛만 보여줄 때도 있다. 어떤 방식이건, 그 기저에 흐르는 정신이란 '빈티지는 너무 좋고 경이로워. 난 진심으로 네가 이걸 즐겼으면 좋겠어'라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그는 세 가지의 방식으로 디자인을 풀어낸다.

첫 번째 방식은 과거의 제조법을 원형 그대로 재현해내는 방법이다. 이는 빈티지의 제법(製法)이나 디자인이 현대에 적용시켰을 때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고 판단할 때 사용하는 방법으로, 리얼 맥코이(The Real McCoy'S)와 같은 복각 브랜드(빈티지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하지만 리얼 맥코이가 주로 20세기 초중반의 밀러티리나 스포츠 웨어(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캐주얼 웨어라고 생각하면 된다)등을 중심으로 빈티지 아이템 그대로를 재현하는 데에 비해 비즈빔의 관심 범위는 훨씬 더 넓다. 예를 들어 'Dotera Coat'라는, 기모노 형식의 겨울용 코트는 방한을 위한 충전재로 구스다운이나 3M의 신슐레이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마와타(真綿)라는, 일본의 전통 충전재를 사용하기도 한다. 여기서 마와타는 무려 '실크'로 만들어진 솜이다. 실크의 파이버를 손으로 일일이 넓히고 뭉쳐내 솜처럼 만든, 정말 최악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충전재인 것이다. 비싼 만큼 구스다운보다 면적 대비로 따뜻하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다만 수백 년간 겨울용 기모노를 만들기 위해 사용된 전통적인 방식인 만큼 기모노에 어울리는 가장 아름다운 실루엣과 조형미를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때문에 비즈빔에선 핸드메이드 마와타 제조 기술을 가진 장인을 찾아내 오리지널 겨울용 기모노 코트를 재현해 출시했다. 이와 같이 그의 관심 범위는 특정 시대의 복식을 뛰어넘어 일본에도 시대의 전통 제법이나 염색법이 되기도 하고, 네이티브 아메리칸이나 핀란드 수오미 족의 화려한 전통 문양이 되기도 한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물건을 팔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그 이전 시대, 가족과 지인을 위해 손수 만들어 내던 사람들의 정성스러운 물건이라면 어떤 것이든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듯하다.

두 번째 방식은 '빈티지'의 부분적인 요소를 현대 의상에 적용시키는 방식이다. 이는 영감의 대상이 되는 빈티지의 원형이 현대인이 즐기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형태일 때 사용된다. 이런 방식으로 디자인된 비즈빔의 대표작으로, 팔꿈치나 앞가슴 혹은 밑단 등에 다양한 전통 원단을 덧대어 결합한 셔츠, 티셔츠 등이 있다. 네이티브 아메리칸이나 아미쉬(Amish), 수오미(Suomi)족의 전통 문양 등은 히로키가 애용하는 디자인 원형들인데 대단히 화려한 무늬와 색감을 지녀서 큰 면적으로 옷을 해 입거나 전통 의상 그대로 복각을 할 경우 현대인들이 입기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작은 면적으로 셔츠의 팔꿈치나 가슴, 허리, 밑단 등에 부분적으로 적용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부담 없이 즐길 수가 있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셔츠나 티셔츠는 디자인 차별점이 뚜렷하고 제법 상업성도 있기에 때때로 스파(SPA) 브랜드의 '참고' 대상이 되곤 한다. 물론 그런 브랜드는 문양을 비슷하게 흉내 내 디지털 프린트로 값싸게 찍어내 출시하지만, 비즈빔은 전통 방식 그대로 만들 수 있는 '진짜' 장인들을 찾아내 패치에 쓰일 원단을 제작한다.

세 번째는 그가 오마쥬한 '빈티지'의 원형에다 현재까지 발전되어온 노하우와 기술력을 적용해 한 단계 진화시키는 방식이다. 신발이나 백팩 등과 같이 실용적 기능이 매우 중요한 제품군을 디자인할 때 적용하게 된다. 그의 초기 대표작인 'FBT'를 예로 들어보자. 'FBT'는 'Fun boy three'라는 영국 밴드의 리더가 앨범 표지 촬영 때 착용한 모카신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스니커즈다. 모카신이란 네이티브 아메리칸이 풀밭이나 진흙 위를 뛰어다니기 위해 만들었던 신발인 만큼 아스팔트 위를 걸어 다니기엔 턱없이 약하고 부드러운 밑창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히로키는 모카신의 매력을 현대인들이 즐기는 것이 가능하도록 아스팔트 위를 뛰어놀 수 있는 튼튼한 비브람(vivram, 이탈리아의 프리미엄 아웃솔 전문 제조 브랜드)의 아웃솔을 적용해 신발을 완성한다. 요즘에야 전통적 조형을 가진 몸통과 운동화 밑창을 결합한 이질적인 디자인이 흔하게 출시가 되곤 하지만 'FBT'가 처음 출시된 시점이 2001년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진심으로 모카신을 현대인들에게 신기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없는 한 이런 발상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방법론을 적용해 만들어진 또 하나의 대표작이 바로 비즈빔의 백팩이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내가 소장하고 있는 백팩은 오렌지 색의 Ballistic 원단(Invista Cordura 사에서 개발한 방탄용 원단으로 매우 강력한 내구성을 지닌 나일론 원단)으로 이루어진 20L 용량의 디자인인데, 원단은 면, 코듀로이 등 다양한 원단이 사용되며, 용량에 따라 22L 혹은 25L 등의 다양한 디자인이 존재한다. 사실 모든 비즈빔의 가방이 백팩처럼 복잡한 테크놀로지가 적용된 것은 아니다. 토트나 가볍게 걸치는 숄더백 같은 경우는 흔히 볼법한 심플한 구조 위에 비즈빔 특유의 빈티지 원단이나 핸드 프린팅 등을 강조한 간단한 제품들이다. 다만 백팩만큼은 당장 산에 오르는 것이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히로키는 판단했을 것이다. 백팩도 신발만큼이나 20세기 중반 이후로 기술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분야이며, 이는 사람들이 그만큼 편리한 기능성을 가진 백팩을 간절히 원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가방의 전체적인 생김새는 특정 백팩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심플하지만 독창적인 외형을 지니고 있다(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정도 완성도를 지닌 디자인을 가방 전문 브랜드가 아닌 디자이너 브랜드가 만들기는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다른 가방 전문 브랜드의 특정한 원형 디자인에서 시작했을 거라고 추측하고 리서치를 수차례 해보았지만 실패했다. 아마도 8년간 Burton에서 일을 한 히로키의 경험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백팩들을 제작 혹은 연구하면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원형을 설계하는 것이 가능했으리란 것). 더불어 등산용 백팩의 발전에 따라 축척된 노하우와 기술력이 응집되어 비즈빔만의 방식으로 재해석되어 있다.

우선 몸체의 밑부분은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가는 곡선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물건을 집어넣었을 때 아래쪽으로 쳐지는 것을 방지해 무게 중심이 몸에서 멀어지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어, 어깨와 등으로 가는 부담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수납공간의 배분도 적절하다. 노트북과 책을 넣는 공간, 부피가 큰 도구나 옷가지 등을 집어넣는 공간, 휴대폰이나 지갑 등 빠르게 꺼내어 써야 하는 소지품 등을 보관하는 공간 등으로 나뉘어져 있어 소지품 특성에 맞는 안전하고 합리적인 보관이 가능하다. 가방 전면부를 기준으로 왼쪽에는 우산이나 옷가지 혹은 등산용 폴대 등을 걸어둘 수 있는 두 개의 고리와 벨크로 포켓이 있다. 내부에는 많은 분할 공간이 있지는 않지만 두툼한 네오프렌 원단으로 이루어진 노트북 파티션, 뮤직 플레이어를 보관할 수 있는 포켓과 이어폰을 뺄 수 있는 홀(사실 이 부분은 조금 시대에 뒤떨어진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요즘에는 휴대용 음악 재생 기기가 대부분 휴대폰 안으로 흡수되었고, 휴대폰은 이렇게 뒤쪽에 보관할 수는 없는 디바이스이기 때문), 기타 잡다한 물건을 정리할 수 있는 분할 공간 등이 마련되어 있다. 많진 않지만 이 정도면 소지품을 혼란스럽지 않게 정리하기에 충분한 분할 공간이라 생각된다.

백팩의 등판, 어깨끈, 허리 벨트는 그야말로 현대 백팩이 이룩한 인터널 프레임(internal frame, 등판을 딱딱하게 고정시키는 프레임이 백팩 안쪽으로 숨어 있는 형태) 노하우가 고스란히 집약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등에 밀착되는 인터널 프레임 백팩의 특성상 어깨와 등에 밀착되는 부분의 쿠셔닝은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비즈빔 백팩은 적절한 강도와 탄성을 지니고 있는 보강재를 내장하고 있으며, 이를 감싸고 있는 네오프렌 원단은 매우 부드러워 착용자가 약한 재질의 옷을 입고 있어도 상하는 일이 없고, 땀 흡수 또한 우수한 편이다(전문 산악용 등산 가방의 경우 땀을 흡수하고 빠르게 건조시키는 기능을 최대화하기 위해 다소 거친 재질의 망사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런 재질은 울이나 면 등의 옷감을 손상시키는 원인이 된다). 어깨끈의 생김새 또한 어깨와 등에 빈틈없이 밀착되는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양쪽 어깨 스트랩을 하나로 묶는 스트랩도 포함되어 있어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현상을 방지한다. 허리 쪽에 있는 쿠션 벨트는 무게를 허리와 엉덩이 쪽으로 분산시키면서 어깨로 가는 부담을 덜어주는데, 짐이 적을 경우를 대비해 탈착이 가능하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약간의 무게감이나 기타 자잘한 요소를 제외하면 전문 등산용 백팩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실용적인 원형 디자인을 기반으로, 히로키는 본격적인 자신의 장기를 살려낸다. 2차 세계 대전에서 쓰인 군용 백팩부터 켈티사(Kelty)의 데이팩에 이르는 20세기 초중반 무렵의 빈티지 감성을 집어넣은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백팩 밑부분에 있는 가죽 패치이다. 사실 이 가죽 패치는 발리스틱 원단으로 이루어진 가방에는 전혀 실용적인 의미가 없다. 코튼 캔버스로 가방을 만들던 시절에 빨리 닳아 헤져버리는 밑바닥 부분 혹은 플랩(백팩의 뚜껑) 가장자리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덧대었던 것이 가죽 패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면보다 10배 이상 내구성이 강력한 발리스틱 나일론 원단은 가죽보다도 훨씬 튼튼한 재질이니 실용적으로는 무의미한 것이다. 하지만 면 캔버스 재질로 백팩이 만들어지던 수십 년간 가죽으로 덧대어진 수많은 백팩이 탄생했고 애용되어 왔다. 때문에 백팩 밑단에 가죽을 덧댄다는 조합은 그 자체로 그 시절의 향수와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이런 배색 가죽의 조합은 손잡이와 지퍼 풀러(puller), '돼지코'라고 불리는 다이아몬드 패치에도 적용되어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컬러 밸런스를 이루어낸다(소장 중인 백팩에선 다이아몬드 패치가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다른 버전에선 가죽으로 이루어진 경우도 많다). 특히 이 컬러의 조화를 위한 비즈빔의 노력과 집착은 대단한 수준인데, 스트랩을 조절하기 위해 사용되는 플라스틱 부자재, 개폐용 지퍼, 쿠션에 사용되는 네오프렌, 안감과 주머니 감, 안쪽 시접을 감싸는 폴리 테이프 등 모든 부자재와 원단을 컬러감을 통일시키기 위해 특별 발주한 것이 보인다. 특히 플라스틱 파츠의 경우 발주를 위한 최소량이 상당하기 때문에 생산량이 많은 전문적인 가방 브랜드에서도 검은색으로 통일시켜 버리기 마련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생산량도 적고 컬러 종류도 많은 비즈빔이 하나하나 컬러별로 발주했다는 것은, 비즈빔의 디자인이 최종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기능성이 가장 중요했다면 이 정도로 컬러 밸런스에 집착할 이유는 없다. 미니멀리즘을 지향했다면 이렇게 다양한 컬러 팔레트는 과하다. 과거의 향수와 정취를 현대인들이 온전히 그리고 편리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비즈빔의 지향점이기에 다양한 컬러와 디자인 밸런스, 최적의 테크놀로지를 모두 소홀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나카무라 히로키가 복각 수준으로 전통 방식의 핸드메이드 제법을 고집하는 것이나, 발리스틱(Cordura Ballistic) 혹은 고어텍스(Gore-tex)와 같은 첨단 기능성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나 방식은 다를 수 있어도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자신이 사랑하는 빈티지의 매력을 현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도 즐길 수 있게 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비즈빔의 옷은 매 시즌 거의 다르지 않은 분위기에, 부분적인 디테일을 제외하면 도드라지는 차별점이 존재하지 않는 심플한 옷들이 대부분이다. 어느 정도 주목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패셔니스타' 뿐 아니라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역시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게 하려는 의도라 풀이된다. 이는 비즈빔의 가격대가 매우 고가임을 감안하면 그리 안전한 선택은 못된다. 매 시즌 늘 똑같다는, 혹은 유니클로같은 브랜드와 다를 바 없는 '감성 브랜드'라는 비아냥 역시 감내해야만 한다. 이런 고행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작게나마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의 진정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거의 같은 모습으로 컬렉션을 발표하겠지만, 비즈빔(VISVIM)이라는 브랜드 라벨을 보는 순간 나는 확신할 것이다. 반드시 최고의 원단을 사용해 최적의 디자인으로 담아냈을 것이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소중한 과거의 유산과 최신의 테크놀로지가 결합된 '완벽한' 제품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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