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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4캔에 만원' 이벤트 일년 내내 할 수 있는 까닭

▶맥주 많이 드시는지요? 저도 맥주 참 좋아하는데요…. 엎어지면 코 닿을 곳곳에 편의점이 있고, 편의점 냉장고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엔 4개에 만원 하는 수입맥주들이 한가득입니다. ‘4캔 만원’의 배경을 따라 국내 맥주시장을 훑어봤습니다. 먹는 건 곧잘 질리지만 먹는 얘기는 쉽게 질리지 않는 법입니다. 추석 연휴 가족들과 ‘국산맥주의 맛없음’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시는 건 어떨까요? 맥주 한잔씩 나누면서.

“이모! 카스!”

맥주를 마신 외국인이 “끝내주게 맛있다”며 이모를 부른다. 이 외국인이 누군지, 이 외국인이 마신 맥주가 무엇인지 알 만한 사람들은 두 눈을 의심했다. 그는 가차없는 심사평으로 유명한 셰프이자 텔레비전 프로그램 진행자 고든 램지였기 때문이다. 그가 ‘섞지도 않은’ 한국 맥주를 마시고 맛있다고 하다니. “고든 램지가 마신 건 맥주가 아닌 달콤한 자본이다”라는 말부터 “다른 외국 맥주를 속여서 줬다” “고든 램지가 원래 ‘맥알못’이었다” “저 사람은 고든 램지가 아니다”까지. 반응은 ‘저 광고를 믿지 못하겠다’로 귀결됐다.

불신은 ‘한국 맥주는 맛이 없다’는 사실 또는 오해에서 시작된다. 대부분 고만고만하고 밍밍한 맥주, 소주를 타지 않고 ‘단독’으로는 먹기 힘든 맥주. 이런 확신에 가득 찬 사람에게 편의점 맥주 코너는 축복이나 다름없다. 집 앞 편의점에만 가면 글로벌 맥주 제조회사들이 만든 맛있는 외국산 맥주를 만원이면 네 캔이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네 캔에 만원 하는 외국 맥주를 많이 마시니까 곧 국산맥주 제조사들도 정신 차리고 맛있는 맥주를 만들겠지.’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네 캔에 만원 이벤트의 ‘상설화’는 2015년부터 시작) 여전히 오비맥주는 카스를, 하이트진로는 하이트를 주력으로 팔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많이 팔린다.

편맥 최강자는 국산? 수입산?

편맥(편의점 맥주) 시장의 주도권은 2017년을 기점으로 수입맥주로 넘어갔다. 지에스(GS)25, 씨유(CU),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 3사의 맥주 매출 구성 비율을 보면 2012년 10%대 후반이던 수입맥주 비중이 지난해 40%대 후반까지 커졌다. 올해 상반기엔 3사 모두 수입맥주의 비중이 50%를 넘었다. 대형마트의 사정도 비슷하다. 이마트도 올해 상반기 처음으로 수입맥주의 판매 비중이 50%를 넘었다. ‘4캔에 만원’(대형마트는 9000원대 후반) 덕분이다.

수입맥주의 인기에 따라 수입맥주 수입량도 크게 늘었다. 국세청 국세통계를 보면 2010년 4만6903㎘이던 맥주 수입량은 2015년 16만7975㎘에 이르렀다. 5년 동안 3배 이상 늘었다. 국산맥주 출고량은 2010년 190만9923㎘에서 2015년 204만833㎘로 13만910㎘ 느는 데 그쳤다.

수입맥주가 4캔에 만원 이벤트를 연중 내내 할 수 있는 이유는 국산맥주와 과세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맥주를 비롯한 주류에는 주세와 교육세, 부가가치세가 붙는다. 현재 맥주에 부과되는 총 세금은 ‘과세표준’의 112.96%에 이른다. 이 세율은 국산이나 수입산이나 차이가 없다. 대신 국산맥주는 ‘출고가격’을, 수입맥주는 ‘수입 신고가격’을 과세표준으로 삼는다. 출고가격엔 제조비용에 제조사의 판매이윤이나 판매관리비 등이 포함된 반면, 수입 신고가격은 수입 신고가에 관세만 포함된다. 결국 수입맥주의 경우 국산맥주와 달리 판매관리비나 판매이윤에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셈이다. 당연히 같은 용량을 팔아도 국산맥주 제조사들이 내는 세금이 수입업체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세금은 고스란히 판매가격에 반영된다. 가격경쟁력에서 수입맥주에 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한 이런 과세구조 덕분에 수입맥주는 판매관리비와 판매이윤을 조정해 다양한 판매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 이윤을 높게 책정해 판매가격을 높인 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대폭 할인을 하는 것처럼 팔 수 있다. 반면 국산맥주는 판매관리비나 판매이윤이 세금과 연동된다. 국세청 고시에 따라 국산맥주 제조사는 출고가격을 국세청에 신고해야 한다. 사실상 국세청의 통제 아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제조사가 수시로 판매관리비나 판매이윤을 올리거나 내리기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한 국산맥주 제조사 관계자는 “국산맥주와 달리 수입맥주는 관세청에 ‘이 가격으로 수입했다’고 신고하면 끝이다. 실제 수입가가 얼마인지 알 수가 없고 이윤이 얼마인지도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편의점에서 파는 수입맥주의 가격은 수시로 바뀐다. 평소 한 캔에 4000원 하는 수입맥주가 ‘4캔 만원 이벤트’ 품목에 포함되면 한 캔에 3000원이 되고, 네 캔에 1만원이 된다. 맥주 코너 앞에 선 소비자는 망설인다. 2700원짜리 국산맥주와 3000원짜리 수입맥주에서 한번, 네 캔 1만원이니 한 캔당 2500원에서 두번. 수입맥주가 ‘만원의 행복’이 되는 과정이다.

‘네 캔 만원’의 최대 수혜자는 어떤 맥주일까? 지에스25의 수입맥주 매출 순위를 보면 2015년부터 아사히캔 500㎖가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그 뒤를 호가든과 칭타오, 하이네켄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에서 2017년 1~8월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수입맥주도 역시 아사히였다.

하지만 맥주 판매 순위에 국산맥주를 포함하면 결과는 달라진다. 편의점 3사 모두 가장 많이 팔린 맥주는 카스 500㎖였다. 편의점 업체 홍보팀 관계자는 “술자리에서 자주 먹던 맥주를 먹는 관성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두개씩 사는 경우엔 여전히 국산맥주가 수입맥주보다 싸기 때문”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물맥주’라는 비난에도 카스의 아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오비맥주 매출의 85% 이상을 카스가 책임지고 있다. 업계는 맥주시장에서 카스의 점유율을 50% 이상으로 보고 있다.

맛이 아닌 ‘스타일’의 차이라는데…

편의점 판매량 결과에 놀라는(혹시 놀랐다면) 이유도, 고든 램지의 광고에 놀라는 이유도 그 주인공이 국산맥주이기 때문이다. 맛 때문에 수입맥주를 선택하(거나 한다고 믿)는 소비자들로선 편의점에서까지 카스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정말 국산맥주는 맛이 없을까.

국내 맥주 제조사들은 맛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닌 맥주 스타일의 차이라고 설명한다. 오비맥주 홍보팀 이은아 차장은 “카스나 하이트는 라거 중에서도 아메리칸 페일 라거에 속한다. 홉의 쓰고 강한 맛 대신 깔끔하고 청량감이 강조된 스타일이다. 물처럼 마실 수 있는 맥주이고, 밍밍하다고 하는데 밍밍한 게 특성인 맥주”라고 말했다. 도수가 낮고(카스와 하이트 모두 4.5%) 담백하기 때문에 소주를 섞어 마시기도 하고 비교적 많은 양을 마실 수 있다. 주로 하이그래비티공법(고농도 알코올 발효액을 만든 뒤 탄산수를 섞어 도수를 맞추는 방법)으로 제조한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최적화한 맥주인 셈이다.

2014년 한국외식경영학회 학술지 <외식경영연구>에 실린 논문 ‘소비자의 맥주 맛 선호 요인과 태도 변화’의 결론은 국내 맥주 제조사들의 입장을 뒷받침한다. 눈문은 ‘맛뿐만 아니라 브랜드 등 외적 요인이 맥주를 선택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는 가설을 세우고 20~30대 대학생 226명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참가자들에게 국산 라거 맥주 세 종류와 수입산 라거 맥주 두 종류(유럽, 일본)를 마시게 한 뒤 가장 선호하는 맥주와 선호하지 않는 맥주를 고르게 했다.

실험 결과 블라인드 테스트에선 국산맥주의 선호가 높은 반면 브랜드(를 노출한) 테스트에선 수입맥주의 선호도가 높았다. 또한 블라인드 테스트에선 수입맥주의 비선호가 높은 비율을 차지했지만 브랜드 테스트에선 국내 맥주의 비선호가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논문은 “소비자의 맛에 대한 선호는 소비자들의 믿음과는 달리 비관능적인 요인, 즉 마케팅적인 요인에 의해 변화된다”며 “제품을 생산하는 지역과 관련된 문화적 단서들도 맛 선호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산맥주가 맛없는 이유로 제시되는 ‘맥아 함량이 낮다’는 말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맥아(malt)는 보리에 물을 부어 발아시킨 맥주의 주원료다. 국내 주세법 시행령은 맥아 함량이 10% 이상이면 맥주로 인정한다. 종전 50%였던 기준이 2001년 주세법이 개정되면서 완화됐다. 당시 법 개정 이유는 “다양한 주종을 개발하기 위해 주류의 제조방법에 대한 제한을 완화할” 목적이었다. 국세청으로선 맥아 함량이 적은 수입맥주들이 ‘맥주’에 포함되면서 과세 대상이 확대되는 부수 효과도 있었다. 이 ‘10% 기준’이 “맥아는 조금만 넣고 쌀이나 전분, 값이 저렴한 잡곡을 섞는다”는 오해로 와전됐다. 국내 제조업체들은 “법 기준이 맥아 10% 이상일 뿐, 국산맥주들의 맥아 함량은 70% 이상으로 수입맥주들과 큰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맥아 함량이 높다고 마냥 맥주가 맛있는 건 아니다.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이었던 다니엘 튜더가 그의 칼럼(“Fiery food, boring beer”)에서 “한국 맥주가 밍밍하다”며 비교했던 북한 대동강맥주의 주력 상품은 맥아 함량이 70%다. 반면 ‘맛없다’는 국산맥주 중 맥스, 프리미어오비(OB), 클라우드 등은 맥아 함량이 100%로 알려져 있다. 롯데주류 홍보팀 양문영 수석은 “맛있다는 판단을 오로지 혀의 감각으로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소비자들이 여전히 수입맥주에 관대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맥주를 먹고 싶다

결국 ‘국산맥주는 맛이 없다’는 소비자들의 비판은 ‘국산맥주는 다양한 맛이 없다’ 또는 ‘국산맥주는 맛이 다양하지 않다’로 보는 게 더 ‘생산적’이다. 나라 안팎에서 다양한 맛의 맥주를 경험한 소비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왜 죄다 라거 맥주만 파느냐”는 비판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국내 맥주 제조사들이 현재 주력하고 있는 맥주들의 ‘스타일’을 바꿀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맥주 제조는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필요한 장치산업이고 무엇보다 여전히 국내에선 에일이나 스타우트(흑맥주)에 비해 라거 맥주가 월등하게 많이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맥주의 공세가 거세지만 국산맥주를 향한 국내 소비자들의 충성도는 아직 건재하다. 더군다나 맥주 시장은 편의점과 마트 같은 가정 시장뿐만 아니라 호프나 식당 등 유흥 시장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 맥주 제조사들의 ‘믿는 구석’이기도 하다.

‘맥덕’들은 최근 증가하고 있는 소규모 양조장에서 제조하는 크래프트 비어(craft beer)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2002년 소규모 맥주 제조 면허 제도가 도입된 뒤 소규모 양조장들은 끝없이 규제와의 싸움을 벌여왔다. 최근까지도 A양조장에서 생산된 a맥주는 A양조장에 딸린 펍에서만 구입이 가능했다. 이 규제가 완화된 뒤 가능해진 게 맥주 축제다. 지금도 여전히 소규모 양조장(담금 및 저장조 5~75㎘)에서 제조된 맥주는 마트나 편의점에선 팔지 못한다. 정부는 지난 8월 소규모 양조장의 시설기준을 확대(5~120㎘)하고,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도 판매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맥주전문지 <비어포스트> 장명재 팀장은 “크래프트 비어가 시장에 진입하는 데 가장 큰 장벽은 가격이다. 좋은 재료를 쓰지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원가가 높고 결국 세금이 늘어나 판매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크래프트 비어가 시장에서 기존 대기업 맥주들과 경쟁하려면 주세를 비롯한 세제 지원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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