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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무개" 청탁쪽지 서울시 과장은 면죄부, 부하가 덤터기

  • 박수진
  • 입력 2017.09.28 07:57
  • 수정 2017.09.28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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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인사과장부하 직원에게 쪽지 한 장을 건넸다. 시의회 쪽에서 받은 것으로, 입사 지원자 이름이 담겼다. 부하 직원은 이를 합격 명령으로 알고, 성적을 조작해 합격시켰다. 뒤늦게 사실이 드러났다. 부하 직원은 중징계와 1000만원의 벌금을 받고 ‘변방’으로 쫓겨 갔다. 그러나 쪽지를 건넨 상사와 시의회 관계자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다. 상사는 현재 서울시 소통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몸통들은 건재하고 꼬리만 처벌받는 상황, ‘김영란법’보다 엄격한 ‘박원순법’(서울시공무원 행동강령)을 운영한다는 서울시의 현주소다.

지난 20일 해당 과장을 만나 ‘쪽지에 적힌 이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모르는 사람이다. 얘기할 수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서울시의회로부터 쪽지를 받았느냐는 질문에도 답하지 않은 채 곤혹스러워했다.

사건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그해 3월11일 서울시는 청원경찰 44명 모집 공고를 냈다. 산하 기관들이 따로 진행하던 청원경찰 채용업무를 서울시가 통합해 진행하기로 한 뒤 낸 첫 공고였다. 44명 모집에 442명의 청년이 지원했다. 100m 달리기, 제자리 멀리뛰기, 윗몸 일으키기 등 체력검정과 서류 전형을 통해 339명이 탈락했다. 103명이 남았다. 면접만 통과하면 서울시 청원경찰 44명에 뽑힌다. 시 청원경찰은 공무원과 처우가 비슷하면서도 입사 경쟁은 덜 치열한 편이다.

27일 법원 판결문과 검찰 수사 내용,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감사자료 등을 보면, 면접을 하루 앞둔 4월29일 채용을 총괄한 서울시 김아무개(48) 인사과장이 부하인 이아무개(55) 팀장에게 ‘최아무개’라는 이름이 적힌 포스트잇을 한 장 건넸다. 청원경찰 응시자였다. 김 과장은 이 팀장에게 별다른 말 없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이 말을 ‘합격시키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공무원 조직에서 20~30년 잔뼈가 굵은 이들끼리의 대화였다. ‘척하면 척’이었다.

이튿날 면접이 진행됐다. 내외부 면접관들 평가 결과 최씨가 탈락했다. 이 팀장이 움직였다. 면접 점수가 변경됐고, 탈락 대상이었던 최씨가 살아났다. 대신 합격자 조아무개씨가 탈락했다. 5월15일 서울시 누리집에 공고된 최종 합격자 44명의 명단엔 응시번호 0301번 최씨가 포함됐고, 0066번 조씨는 예비합격자로 밀렸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부정 채용 이야기다. 상사의 지시, 부하의 이행, 그리고 부정 합격자와 억울한 탈락자의 발생. 그러나 이후 반전이 시작된다.

5월 중순 감사원 감사가 시작됐다. 최씨 성적이 조작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 팀장은 자신이 한 일이라고 진술했다. 감사원 보고서를 보면, 이 팀장은 “체력 검정 때 우연히 최씨를 봤는데 인사성도 밝고 인성도 좋아 보여 합격시켰을 뿐, 최씨를 합격시켜 달라는 청탁을 받은 적은 없고 내가 한 일”이라고 진술했다. 쪽지 얘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더 나가지 못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이 팀장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는 한편, 그해 12월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이 팀장의 진술을 믿지 않은 것이다. ‘반쪽’뿐인 진실이지만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다.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감사원보다 센 전방위적 조사에 이 팀장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이 팀장은 “김 과장으로부터 청탁자 이름이 적힌 쪽지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물밑에 있던 김 과장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김 과장은 검찰 조사에서 “쪽지를 주지 않았다”면서도 “최씨의 면접 결과만 알려달라고 이 팀장에게 얘기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쪽지 출처가 한 단계 더 드러났다. 김 과장은 검찰에서 “서울시의회 쪽에서 ‘최씨가 지원했으니 알아봐 달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서울시의회 관계자가 보낸 쪽지가 김 과장을 거쳐 이 팀장에게 전달된 것이다. 김 과장은 “나중에 온라인에 최종 합격자 명단을 올리기 전에 합격 여부를 알려주려고 했다”고 검찰에서 말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 팀장 뒤에 있는 ‘새 몸통’이 두 단계나 드러났지만 검찰은 김 과장과 최씨의 관계, 서울시의회와 김 과장의 관계를 파악하지 못했다. 결국 검찰은 지난해 9월 성적 조작을 실행한 이 팀장만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청탁의 대가나 성적 조작 지시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탓이다.

사법 그물을 벗어난 김 과장은 서울시의 징계 그물도 피해갔다. 서울시는 김 과장이 해당 사건에 연루된 사실을 몰랐다는 태도다. 감사원 감사 때 이 팀장이 본인이 한 일이라 진술했고, 이후 검찰 수사 때 드러난 추가 내용은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해명은 석연치 않다. 지난해 11월말 이 팀장이 재판에서 채용비리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으면서, 과장에게 쪽지를 받은 사실이 공개됐다. 해당 판결문에는 “면접시험 전 서울시 과장 김○○이 ‘최아무개’라고 기재된 포스트잇을 (이 팀장에) 준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일부 언론도 ‘상사 쪽지에 면접점수 조작 공무원…법원 벌금 1000만원’ 등의 제목으로 이를 보도했다. 서울시가 파악 못 했다는 내용이 법원 판결문과 언론 보도로 공개된 것이다.

관련 기사: 공공기관 채용청탁 몸통은 ‘미꾸라지’

이에 대해 서울시 조사담당관은 “감사원 등 상급기관 징계가 이뤄졌고, 과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 통보도 못받았다. 판결문도 보지못했다. 추가 조사를 할 만한 명분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 서울시 직원은 “서울시가 당시 김 과장 연루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조사담당관이 몰랐다면 직무태만이고 알고도 움직이지 않았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쪽지가 서울시의회에서 왔다는 말도 이미 돌았다”고 말했다.

결국 머리와 몸통은 가려지고 노출된 꼬리만 처벌받는 상황이 됐다. 이 팀장은 “반성하고 있다”며 자세한 설명은 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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