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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총선 결과는 동독과 서독이 아직도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허완
  • 입력 2017.09.27 13:53
  • 수정 2017.09.27 13:55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네 번째로 연임을 확정한 총선이 끝난 지 이틀이 됐다. 독일은 이번 선거로 극적으로 바뀐 독일 정치 지형을 아직 심사숙고 하는 중이다.

메르켈의 기독자유당(CDU)은 힘겨운 연정 논의를 하게 됐고, 한 때 큰 지지를 얻었던 중도좌파는 참패를 당했으며, 수십 년 동안 정계에서 소외받던 극우파가 독일을 동요시킨 큰 지지를 얻어냈다.

그러나 24일 총선에서 드러난 것들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구 동독과 구 서독 지역의 선명한 차이였다. 반(反)이민, 반(反)이슬람을 내세운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구 동독 지역에서 큰 지지를 얻었다. 이는 미래의 과제에 대한 각 지역과 사회 인구학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드러낸다.

구 동독 지역에서 극우가 부상했다

시위대가 베를린 장벽을 부수는 모습을 동독 국경 경비 요원들이 지켜보고 있다. 1989년 11월11일.

AfD는 다양한 유권자들에게 어필하며 13%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특히 AfD는 공산주의 지역이었던 구 동독에서 가장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3분의 1 이상의 표를 가져가기도 했다.

AfD는 독일 동부에서 22% 정도를 득표했다. 서부의 11%의 두 배 이상이었다. AfD의 주요 지지자들은 남성인데, 남성 유권자만 놓고 보면 차이는 더욱 컸다. 구 동독 지역의 남성 유권자 중 26% 가량이 극우를 지지했다.

독일의 이민자 분포 vs 극우 득표 분포

AfD의 선거 운동은 반 이민 레토릭에 크게 기댔으며, 유럽의 난민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2015년에 난민 백만 명 이상을 독일에 받아들이기로 한 메르켈의 결정을 공격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AfD가 강세를 보인 곳은 이민자가 가장 많이 들어왔던 지역이 아니었다.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프랑스 선거와 마찬가지로, AfD는 실제로는 이민자가 꽤 적은 곳에서 가장 큰 지지를 얻었다.

“가장 다양성이 강한 지역이 이러한 당들에 가장 적게 투표하는 곳일 때가 많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해안 지역은 미국의 내륙 지역보다 훨씬 더 다양성이 강한데, 가장 진보적이다.” 바너드 대학교의 정치학 교수 셰리 버먼이 허프포스트에 설명했다.

정치학자들은 이러한 차이에 대해 여러 이론들을 내놓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특정 지역의 이민자 수에 따라 우파 성향이 짙어지는 것은 아니며, 새로운 유형의 시민들을 통합시켜 온 역사가 중요하다는 설명이 있다.

“그렇게 본다면 구 동독의 인구 구성이 상당수 구 서독 지역에 비해 다양성이 적고, 이민자가 적고, 난민이 적다는 건 구 동독의 변화에 비해 연관이 적다는 뜻이 된다.” 버먼 교수가 말했다.

AfD는 이미 존재했던 분열을 활용했다

AfD의 선거 캠페인 차량. 이 자동차는 '동독 국민차'로 불렸던 동독의 아이콘 '트라반트(Trabant)'다. 통일 이후에는 생산이 중단됐다.

AfD의 부상으로 독일이 우익 쪽으로 기울기는 했으나, 1990년 통일 이후 투표 결과는 늘 동서간의 분열을 반영해 왔다. 구 동독은 줄곧 좌파당(Die Linke)을 지지해 왔다. 좌파당은 독일 최대 정당인 기독민주당(CDU)과 사회민주당(SPD)이 대표하는 '현상 유지'에 맞서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 훨씬 이전부터 구 동독이 우익으로 크게 기울었다는 징후가 보였다. 메르켈이 구 동독 지역에서 유세를 펼치면 연설 도중 AfD 지지자들이 고함을 치며 항의 시위를 벌여 저지되곤 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작센안할트 주 등 동부 지역에서 AfD가 상당한 지지를 얻었다.

'이슬람화(化)를 멈춰라" - 이번 총선에서 AfD가 내걸었던 포스터 문구 중 하나다.

2014년에 드레스덴 지역에서 조직된, 대놓고 증오 수사를 사용하는 반 이민, 반 이슬람 운동 '페기다(PEGIDA)' 역시 구 동독 지역에서 가장 강한 지지를 받는다. AfD 측 인사들은 PEGIDA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부인하기도 하지만 이 둘은 이념적 유사성이 많으며, 선거 일주일 전 AfD 당원 수백 명이 PEGIDA와 함께 시위를 하기도 했다.

AfD는 좌파당 지지자 수십만 명을 끌어왔다. 좌파당은 지난 선거에 비해 구 동독 지역에서 6% 이상을 잃어버렸다.

새로운 저항 정당

이번 총선에서 공동 총리후보로 나섰던 알리체 바이델(왼쪽)과 알렉산더 가울란트.

전문가들은 이같은 전환이 불만을 품은 독일인들이 선택하는 '저항 정당' 자리를 AfD가 꿰찼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본다. 이들 상당수는 다른 지역에 비해 경제적으로 뒤쳐져있는 구 동독 지역 주민들이다.

“동부의 사정은 아직도 서부와는 조금은 다르다. 경제적으로 더 어렵다. 고향을 떠나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곳의 많은 지역사회는 텅 비어 있다.” 버먼의 말이다.

예를 들어 2015년 기준으로 독일 30대 기업 중 동부에 기반을 둔 기업은 하나도 없었다.

구 동독 지역에서 급진적인 정당들이 인기를 얻는 것이 구 동독의 역사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국수주의와 극단주의의 기준이 구 서독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서독은 지난 수십 년 간 이른바 페어강엔하이츠베벨티궁(Vergangenheitsbewältigung), 즉 과거 극복이라는 것을 하나의 산업으로 만들다시피 했다.”

반면 구 동독 지역에서는 나치즘에 대한 속죄의 문화가 덜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 결과 독일의 극우 정당들은 극단적 정치 운동에 대한 혐오가 덜한 구 동독 지역에서 더 큰 지지를 받는다.

“구 동독은 공산주의 시절에 대한 기억에 사로잡혀 있어, 극단적 국수주의 정당에 대해 감정적으로 다르게 반응한다.” 코넬 대학교의 사회학과 교수 메이블 베레진의 말이다.

그러나 AfD가 구 동독 지역에서 더 큰 지지를 받긴 하나, 그들의 영향력이 구 동독 지역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서부에서도 10% 이상을 득표했다는 것은 AfD의 반 이민-국수주의 메시지가 극우에 대한 터부가 심한 부유한 지역에서도 지지자를 모았다는 의미다. AfD의 성공은 독일이 공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메시지의 범위가 달라졌음을 시사한다.

“AfD는 '이젠 이런 생각들을 해도 된다', '이런 정당들에 투표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베레진의 설명이다.

“독일의 정치적 문화를 지배했던 정치적, 문화적, 도덕적 규범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 이 글은 허프포스트US의 Germany’s Election Shows The East And West Are Still Divided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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