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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김장환·송민순의 전쟁방지법

지금의 상황은 강경파 페리를 상대했던 98년보다 훨씬 심각하다. 그런데 외교안보 특보와 국방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서로를 비난한다면 누가 우리를 믿을 것인가. 국민이 불안해 하는 위중한 상황에서 외교안보 라인을 적임자가 아닌 사람들로 가득 채우는 건 도대체 무슨 배짱인가.

  • 이하경
  • 입력 2017.09.26 09:39
  • 수정 2017.09.26 09:40
ⓒ뉴스1

화약고나 다름없는 한반도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서로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을 찾은 미국 공화당 원로 존 베이너 전 하원의장을 위한 환영 오찬이 지난주에 있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 김진표·김무성·나경원·윤재옥 의원과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임성준 전 주캐나다 대사, 이정훈 북한인권대사,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 이승훈 리인터내셔널 회장, 조현상 효성 사장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모임을 만든 사람은 극동방송 이사장인 김장환 목사였다. 그는 "베이너는 공화당에 기부금을 가장 많이 내는 내 친구의 골프 친구인데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을 상·하원 합동 연설자로 초청했던 정치인"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베이너에게 "11월에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 대신 평택 주한미군 기지 캠프험프리스를 방문하도록 조언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미 동맹의 전략적 거점인 캠프험프리스는 여의도 면적의 다섯 배에 달해 해외 미군기지 가운데 최대 규모고 시설도 가장 좋다고 한다. 직접 눈으로 보면 한국이 한·미 동맹에 얼마나 정성을 쏟는지 실감할 것이다. 캠프험프리스 방문은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혼선, 북핵 제재 국면에서 한국의 대북 대화 움직임에 내심 불편해 하는 트럼프를 안도시킬 수 있는 처방이 될 수도 있다. 진보 정권의 고민을 보수 원로가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은 국민을 안심시키는 좋은 일이다.

북한의 핵 도발로 인한 한반도 위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촉발된 제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은 영변 핵시설 타격을 심각하게 검토했다. 미국 합참의장은 북한의 반격으로 개전 3개월 안에 사상자가 미군 5만 명, 한국군 49만 명, 민간인 100만 명 이상이며, 피해 규모는 1조 달러가 될 것이라고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수학박사인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은 레드라인을 넘은 핵활동을 즉각 저지하려면 전면전을 준비해야 한다는 강경론을 주도했다. 카터 전 대통령이 친구인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국 대사의 "제2의 한국전쟁을 막아 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받고 김일성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강경파 페리가 한반도 현대사에 다시 등장한 건 98년 11월이었다. 8월에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이 제기되고,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자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된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충격에 빠졌다. 임동원 외교안보수석은 '페리 팀'을 설득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한반도 냉전구도 해체를 위한 포괄적 접근전략'을 보고했고, 대통령은 동의했다.

98년 12월 서울로 날아온 페리를 만난 자리에서 김대중은 유럽에서의 데탕트를 통한 냉전 종식 과정을 언급하면서 북한에 대해서도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일괄타결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페리는 "내 생각과는 너무도 달라 무슨 소리를 하는지 어안이 벙벙했다"고 훗날 토로했다. 그러나 검토를 끝낸 다음 해 1월에는 "창의적이고 대담한 구상이며 올바른 방향"이라고 환영했다.

3월 초 페리의 '잠정적 대북 구상'을 보고받은 클린턴은 "어떠한 미국 대북정책도 한국 대북정책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먼저 한국에 가서 김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조언을 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렇게 해서 한·미·일 3국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상호 위협 감소를 통한 한반도 냉전 종식'이 '페리 보고서'의 핵심이 됐다.

94년 페리를 '전쟁광'이라고 불렀던 북한은 2000년 7월 김정일이 조명록 차수를 워싱턴에 보내기에 앞서 스탠퍼드대학의 페리를 만나게 함으로써 지지를 보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한·미 관계 사상 처음으로 한국이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대북정책을 주도했다"고 평가했다. 위기에서 대담하고 치밀한 준비로 이끌어낸 반전의 드라마였다.

지금의 상황은 강경파 페리를 상대했던 98년보다 훨씬 심각하다. 그런데 외교안보 특보와 국방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서로를 비난한다면 누가 우리를 믿을 것인가. 국민이 불안해 하는 위중한 상황에서 외교안보 라인을 적임자가 아닌 사람들로 가득 채우는 건 도대체 무슨 배짱인가. 98년 8월 미국은 금창리 시설의 위성사진을 갖고 서울에 와서 대북제재 착수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송민순 외교통상비서관은 "현장 확인 등 구체적 증거를 확보하자"고 버텼다. 두 차례의 현장조사가 실시됐지만 미국 강경파들의 기대와는 달리 핵시설은 나오지 않았다.

한·미 동맹을 굳게 지키면서 이런 당당한 결기를 보여주는 실력자가 있어야 미국이 존중하고 북한·중국·일본도 만만히 보지 못한다. 베이너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트럼프를 움직여 달라고 간청하는 김장환 목사의 충정이 가슴을 친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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