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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 인터뷰] 윤도현은 어떻게 KBS 라디오서 사라졌나

  • 원성윤
  • 입력 2017.09.26 09:55
  • 수정 2017.09.26 10:44

민일홍 KBS 라디오 PD

2008년 9월, 가수 윤도현의 'KBS 프로그램 하차'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당시 윤도현은 KBS 2TV '윤도현의 러브레터'KBS COOL FM '윤도현의 뮤직쇼'에서 동시에 하차했다. 하차는 TV와 라디오의 간부들이 그날 저녁 당시 소속사 대표와 이사를 따로따로 만나며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로부터 1년 뒤, '윤도현의 뮤직쇼'을 런칭했던 민일홍 PD는 뜻밖에 자신을 국정원 직원으로 소개하는 사람으로부터 의문의 전화를 한 통 받게 된다.

이후 2017년 9월, 민 PD는 JTBC 보도를 통해 나온 국정원 문건에서 "2010년 4월 라디오 제작자 지방 전보 발령 유도 대상"에 자신이 포함돼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러자 지난 9년간, KBS에서 일어난 석연찮은 일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 2008년 8월8일, 정연주 전 사장이 해임됩니다. 그리고 이병순 사장이 정 전 사장의 남은 임기를 채우는 보궐임기 사장으로 취임합니다. 이후 9월에 대대적인 인사를 하고 윤도현 씨가 KBS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를 하게됩니다. 라디오 '윤도현의 뮤직쇼'는 어떻게 없어졌습니까.

= 당시 윤도현 씨가 새 앨범 제작 관계로 스케줄을 비워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대타 DJ를 쓰기로 담당 피디와 부장이 얘기된 상황에서 '윤도현의 뮤직쇼'를 처음 런칭했던 전임 피디인 저와 이런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OOO 부장 : 진행자 윤도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민일홍 PD : 좋은 진행자다. 라디오에 적합하고, 지명도도 높고 잘한다. (공백이 불가피하다면 대타나 녹음 등으로) 배려해 줘야하지 않겠나?

OOO 부장 : (흔쾌히) 나도 윤도현이 좋은 진행자고, 배려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차 시킨다면 그건 오히려 채널과 우리 라디오의 손해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날, 부장은 전체 부서회의에서 윤도현 하차를 통보했습니다. 그래서 부장한테 '부장 스스로가 지켜야 할 진행자라고 얘길 해놓고 어떻게 하루도 안 돼서 입장이 바뀔 수 있나? 누구의 명령인가?'를 물으니 거기에 관해 얘길 안 하세요. 그냥 그렇게 결정됐다고만 하더라고요. 그때 뭔가 작동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만 했는데, 지금 와서 (국정원 문건으로) 명확해진 거죠.

- 당시 이상한 낌새가 있었습니까?

= 윤도현이 진행하던 (라디오와 TV) 두 프로그램의 하차 통보는 같은 날 저녁 동시에 이뤄졌어요. (저희 부장이 저에게 의견을 물었던 그 날 밤) 라디오 간부는 다음 기획(윤도현 소속사) 이사를 만나서 하차 통보를 했고요. 같은 시각에 TV 간부는 다음 기획 대표를 만나서 '윤도현의 러브레터' 하차를 통보했어요. 이건 단순한 프로그램 진행자 교체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지시를 받고 일사불란하게 이행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거죠. 당시에는 다들 "그런 일이 있었어"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최근 국정원 문건이 나오고나니 더 선명하게 보이는 거예요.

-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KBS 인사에 개입했다는 문건이 나왔습니다. 본인의 이름이 나왔다는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 사실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어요. 그러고도 남을 거라 생각은 했거든요. 왜냐면 부당인사 발령이 있기 전, 저희 라디오에선 근 1년 가까이 이명박 대통령 주례연설 반대 시위를 했거든요. 그때 제가 노조에서 라디오 중앙위원을 맡았었는데, 매일 아침 피케팅을 하고, 라디오 편성위원회를 요청하면서 대통령 주례연설을 받을 수 없다고 격렬하게 항의했어요.

그러다가 2009년 가을경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어요. 전화를 받으니까 본인이 국정원 직원이라고 해요.

민일홍 PD : 국정원 직원이 저한테 전화를 왜 하십니까?

국정원 직원 : 대통령 주례연설 관련해서 얘기를 할 게 있으니 좀 만납시다.

민일홍 PD : 제 전화번호 어떻게 알고 전화한 겁니까?

국정원 직원 : (침묵)

민일홍 PD : 당신을 만날 이유가 없습니다. 당신은 임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굉장히 불쾌합니다. 그리고 불법적 소지도 있는 것 같습니다.

국정원 직원 : (전화 끊음)

김제동씨는 국정원 직원을 직접 만났었다죠? 지금 생각하면 그 때 국정원 직원을 만나서 도대체 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했으면 어떨까 싶었네요. 하지만 멋지게 대처한 김제동씨도 집에 와서 다리가 풀렸다잖아요. 저도 전화를 끊고 나니까 굉장히 기분이 나쁘고 감시당한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더 기분이 나쁘고 실망스러운 건 당시 우리 라디오 간부들이예요. 정부 기관의 명령을 수행하면서 마치 라디오 조직을 살리는 것처럼 포장했거든요. 사람에 대한 실망감이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어쩌면 저럴까? 간부 이전에 같이 한솥밥을 먹었던 식구고 라디오 선밴데...

- 언론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KBS 라디오국은 철저하게 탄압받고 망가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측에 반기를 든 라디오 PD들이 지방발령을 받거나 한민족방송과 같은 한직으로 수년간 떠돌게 인사 조처를 했습니다. 이전에 없던 방식인데요.

= 지난 9년 동안 KBS 라디오가 많이 망가졌어요. 2008년 이전, 정연주 사장 때만 해도 1라디오는 시사 라디오 채널로 ‘안녕하십니까’라는 프로그램도 있었고, 낮에는 박인규 씨의 '집중인터뷰', 저녁에는 정관용 씨가 진행하는 '열린 토론' 등이 있었죠. 택시를 타보면 기사님들은 1라디오를 많이 들었어요. '정관용 씨의 열린토론 재밌게 듣고 있다' 이런 말도 자주 들었고요. 지금은 이런 KBS 라디오의 위상이 없어졌죠.

이렇게 된 데에는 사람의 문제가 가장 큽니다. 부당 인사발령으로 지방, 비제작 부서로 보내고 지방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잘 드러나지 않는 변방 부서에 박아놔요. 한번은 하도 답답했던 한 선배가 간부를 찾아가 인사 고충을 얘기했더니, 센터장 하는 말이 "그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라고 했대요. 당시엔 센터장의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 생각했던 선배가 이번 국정원 문건이 나온 뒤에 '그게 정말이었나?' 싶더래요.

- KBS 라디오가 존재감이 없어진 듯 합니다. 어릴 때를 떠올려보면 구둣방, 이발소, 택시 등에의 장소에서 1라디오가 항상 고정적으로 흘러나왔던 거 같아요. 어떤 방식으로 망가졌습니까.

= 저들은 꽤 전략적으로 접근했던 거 같아요. 1단계는 진행자를 솎아내더라고요. 진보=좌파라고 생각하고 마이크에서 떨어뜨려 놓는 작업을 했죠. 정관용 씨를 비롯해서 윤도현, 김구라 씨를 진행자에서 하차시키고 패널들도 김용민 씨를 비롯해 여러 진보적 인사들을 출연하지 못하게 했어요. 심지어는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기자들의 출연도 못 하게 했어요. 그 기자들이 취재한 기사를 이야기하는 데도 그래요.

2단계는 그래도 PD들이 어떻게 해서든 프로그램을 만드니까 시사 프로그램 잘하는 PD들을 비시사 프로그램으로 보냈어요. 그리고 비판적인 발언을 하거나 노조 활동에 적극적이면 외곽 부서로 보내거나 지방 전보 등의 조처를 하죠.

3단계로 가면 아이템에 대해서 세세하게 검열을 해요. 나중에는 아예 쟁점이 되는 시사를 다루지 못하게 했어요.

개인적으로 라디오는 사랑방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사랑방에는 사람들이 다 모이잖아요. 자기가 보고 생각한 걸 얘기하며, 서로 공감하고, 때론 대화 속에서 힘을 얻기도 하는데요. 생각해보세요. 어느 날 이곳 사랑방에 보기 흉한 스피커 하나가 들어온 거예요.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소리만 듣고 '너희는 얘기 하지 마!' 이런 거죠. 지난 9년간의 상황이 이렇지 않았나 싶어요. 더 사랑방에 사람들이 안 오게 되죠. 그게 지금 KBS 라디오 현실이라고 생각해요.

- KBS의 경우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면 여야 공방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계적 균형의 함정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우리 사회는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해요. 그런 것들을 정확히 드러내고 논쟁하고 서로 이해하고 조정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싹튼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가장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게 라디오 매체예요. 그런 측면에서 라디오는 민주적인 매체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한 사람의 이야기만 들려주면 이건 미디어가 아니라 스피커죠. 특히 힘(권력) 있는 사람과 힘없는 사람에게 똑같이 기회를 주는 기계적 균형은 형식상 공정한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왜냐면 권력자는 이미 자신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소통 채널을 확보한 상황이기에, 1:1의 기계적 균형이란 것은 오히려 기회주의적 불공정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냉철한 판단 없이 서로 다른 의견을 그저 공방(또는 논란)으로 희석하거나, 사회적 이슈를 회피하는 것은 스스로 언론의 역할을 포기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 KBS는 공식적으로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 간부들은 공식적으로 블랙리스트라는 말을 입에 담지도 않으려고 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특정인을 섭외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하거든요. '그게 블랙리스트 아니냐'고 하면 아니래요. 대체 그건 무슨 논리일까요?

- 라디오국 분위기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 보수 정권 이전까지만 해도 KBS 라디오는 가족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일은 치열하게 해도 일상에서는 참 친하게 지냈어요. 단결도 잘됐고요. 새 노조를 만들 때도 단일 구역상으론 가장 많이 합류했어요. 그렇게 끈끈한 조직이었어요. 근데 어느 날, 제가 있던 부서를 둘러보니까 입사 16년에서 25년 차의 중고 참만 가득한 거예요. 주니어, 시니어, 중고 참이 골고루 섞여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특정 계층만 한 부서에 모아 놓은 거죠. 그런데 1라디오에 가보면 태반이 모르는 사람이에요. '아니 회사 생활을 20년 가까이 했는데 어떻게 내가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 결국, 그 부서에서 일 할 만한 사람들은 바깥으로 내보낸 거죠.

- 그러면 거기 있는 사람은 누군가요. 혹시 MBC처럼 시용기자를 뽑은 건 아닐텐데요.

= 타 직종에 있던 분을 전직시키거나 지방에서 올린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온 분들은 아무래도 간부들의 명령에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문제가 있죠. 하지만 최근 들어 재밌는 현상은 그렇게 옮겨오신 분들도 간부들의 제작 자율성 침해가 갈수록 심해지니까 더는 못 참고 저희 새 노조로 가입하고 계세요.

- 간부들은 지금의 경쟁력 하락에 대해 뭐라고 합니까.

= 예전에 어느 라디오 간부가 그랬어요. KBS는 청취율 중요치 않다고. 방송사고만 나지 않으면 된다. 그럼 방송 잘 나가는 거 아니냐고. 정권의 스피커 역할은 충실히 하면서 청취자에 대한 생각은 1도 없는 방송. 그런 식으로 라디오를 끌고 왔으니 사랑방에 있던 청취자들이 다 떠나고 없는 거죠.

- 간부들은 KBS 안에서 어떤 식으로 승승장구를 했습니까.

= 국정원 문건이 나온 뒤에 생각해보면, 라디오에서 승승장구하는 분은 두 유형이 있는 것 같아요. 한민족방송 출신과 청와대 출입 이후 신분상승한 간부 유형이요. 한민족방송은 국정원하고 업무적으로도 꽤 관련이 돼 있거든요. 거기서 부장을 단 분들은 국장, 센터장, 나가서 계열사 임원에 KBS 이사까지 하신 분도 있어요. 당시에는 눈치를 못 챘는데, 국정원 문건이 나오고 보니 관련성이 상당히 높지않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또 하나는 청와대 출입 유형인데요. MB 라디오 주례 연설을 시작할 때 저희가 강력하게 반대하니까 청와대에서 형식 논리를 만들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라디오 현업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들였거든요. 그런데 한 분이 자원해 청와대를 들어갔다 오고는 오히려 대통령 주례 연설 담당자가 됐어요. 그 뒤론 부장, 국장, 센터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습니다. 지금 상황에선 그런 일들을 우연이라고 생각하는게 더 힘들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KBS 간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요.

= 20여년 회사 생활을 해오면서 느낀건데 KBS가 과거 국영방송의 역사가 있어선지 본인이 언론인이라기 보다 공무원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공무원 중에서도 '우리 사회'가 아니라 '정권'을 위해 일하는 잘못된 공무원이요. 민주화 이후 그런 생각은 사라졌을 거라 봤지만, 지난 9년간 그런 그릇된 언론관은 갖은 분들이 부활해 KBS를 망쳐왔어요. 그 결과가 뭡니까? 결국 청취자들이 외면하는 방송국이 됐어요. 세월호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보면서 이젠 깨달을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방송, 특히나 공영방송 KBS의 주인은 정권이 아니라, 시청자요 청취자인 국민이라는 것을요.

비록 사람이 자신의 세계관을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제발 잘못된 언론관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지금이라도 그 때의 과오를 고백하시고,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고대영 사장님은 고향같은 KBS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이제 그만 물러나주십시오.

= 원성윤 에디터

사진·영상 = 윤인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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